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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얼 Sep 18. 2023

물 - 루미(1)

사랑의 규칙 40가지 - 번역 (26)

제2부. 물 

흐르며 변화하여 가늠할 수 없는 것       

          

루미      


콘야, 1244년 10월 15일     


황홀한 모습으로 밝게 빛나는 탐스러운 보름달은 하늘에 걸린 거대한 진주 같았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고 달빛이 넘쳐흐르는 뜰을 내다보았다.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도 요동치는 내 가슴과 떨리는 손을 진정시켜주지는 못했다. 

“에펜디, 당신 안색이 창백해요. 또 그 똑같은 꿈을 꾼 거예요?” 아내가 속삭였다. “물 한잔 갖다 줄까요?” 

나는 아내에게 걱정 말고 다시 자라고 말했다. 그녀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가 꾸는 꿈은 우리 운명의 일부분이며, 그 꿈들은 신이 정하신 길을 따라가게 된다. 게다가 최근 40일 동안 매일 밤 같은 꿈을 꾸고 있는 데에는 틀림없이 이유가 있는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 꿈의 시작은 매번 조금씩 다르다. 아니, 어쩌면 시작은 하나인데 밤마다 내가 그 꿈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달라질 뿐인지도 모르겠다. 이번 꿈에선 내가 카펫이 깔린 방, 친숙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전에 가본 적은 없는 그런 장소에서 쿠란을 읽고 있었다. 내 바로 맞은편에는 어떤 데르비시가 얼굴에 베일을 쓰고 앉아있었는데 키가 크고 말랐으며 자세는 꼿꼿했다. 그는 다섯 개의 초가 타오르고 있는 촛대를 들고서 내가 글씨를 잘 볼 수 있도록 비춰주고 있었다. 잠시 후에 내가 읽고 있던 구절을 그에게 보여주려고 고개를 든 순간, 내가 촛대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그의 오른손이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경악한다. 그는 손가락 하나하나가 불타고 있는 손을 나에게 내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공포에 질려 허둥대며 물을 찾아보지만 어디에도 물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불을 끄려고 입고 있던 망토를 벗어 그 데르비시에게 덮어 씌운다. 그러나 내가 망토를 다시 들췄을 때, 그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타고 있는 초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다음부터 꿈의 내용은 언제나 똑같다. 나는 집안 구석구석을 전부 뒤지며 그를 찾으러 다닌다. 그리고 뜰로 달려 나온다. 장미꽃이 만발하여 밝게 빛나는 노란 색채의 바다와 같은 그곳에서 나는 사방으로 그를 외쳐 부르지만, 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돌아와, 나의 소중한 친구,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그러다 마침내 뭔가 불길한 직감에 이끌리듯 우물로 다가가 저 아래 고여있는 어두컴컴한 물속을 유심히 내려다본다. 처음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잠시 후 달빛이 쏟아져 내리면서 밤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뜰 안이 환해진다. 바로 그때 우물 속 깊은 바닥에서부터 이제까지 한 번도 존재해 본 적 없는 슬픔으로 나를 바라보는 두 개의 검은 눈동자를 발견한다. 

“그자들이 그를 죽였어!” 누군가 소리친다. 아마도 나일 것이다. 처절한 고통의 심연에서 울려 나온 나 자신의 목소리일 것이다. 

울부짖고 또 울부짖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아내가 나를 꽉 붙들어 자기 가슴에 끌어당기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묻고 있다. “에펜디, 당신 또 그 꿈을 꾼 거예요?”      


아내 케라가 다시 잠든 후, 나는 살며시 일어나 뜰로 나갔다. 거기서 순간적으로 나는 여전히 생생하고도 무서운 꿈을 꾸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밤의 고요 속에서 우물을 보자 등골을 타고 차가운 전율이 흘렀지만 그 곁에 앉을 수밖에 없었고 어둠 속에서 나무들 사이로 부드럽게 바스락거리는 바람의 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앉아있자니 문득 차오르는 슬픔이 느껴졌다. 이유는 설명할 수 없었다. 내 아내는 완벽하고 충실했으며, 나는 내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세 가지의 복, 지식, 덕,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신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능력을 받았다. 38세의 나이에 나는 내가 원할 수 있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신에게 받았다. 설교자이자 법학자로 훈련받았고, 예언자, 성인, 학자들이 천차만별로 누구는 아주 약간, 누구는 많이 받기도 하는 지식—‘신성한 직관의 과학’을 전수받았다.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가르침을 받고 우리 시대 최고의 스승들로부터 배우면서, 이것은 신이 나에게 내려주신 의무라는 믿음으로 나의 깨달음을 더욱 깊게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나의 오래된 스승이신 세이예드 부르하네딘은 내가 ‘신께서 사랑하시는 자’라고 말해주곤 했는데, 그건 내가 신의 뜻을 신의 백성들에게 전하고 그들이 참과 거짓을 분별하도록 돕는 영광스러운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수년에 걸친 오랜 기간 동안 나는 마드라사(이슬람 교육기관)에서 배우며, 다른 샤리아(이슬람 최고 율법) 학자들과 신학을 논하고, 제자들을 가르치고, 법률과 하디스(이슬람교 전통)를 연구하고, 도시에서 가장 큰 모스크(예배당)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설교를 했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내가 가르친 학생의 수를 다 셀 수도 없게 되었다. 사람들이 나의 설교 실력을 칭찬하며 그들이 길을 잃어 누군가 인도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던 바로 그 시기에 나의 말이 그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얘기해 줄 때 나는 기뻤다. 

내 곁에는 사랑하는 가족, 좋은 친구들, 충성스러운 제자들이 있으니 얼마나 큰 복인가. 살아오는 동안 가난이나 결핍으로 고통받아 본 적도 없다. 물론 첫 번째 아내를 잃었을 때는 엄청난 비탄에 빠졌었기에 다시는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케라 덕분에 나는 다시 사랑과 환희를 느낄 수 있었고 두 번째 결혼을 했다. 나의 두 아들은 모두 잘 자라주었고, 여전히 그들 둘이 서로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면서 나를 놀라게 하곤 한다. 그들은 똑같은 토양에 똑같은 씨앗을 심고 똑같은 영양분을 주어 나란히 길렀지만 완전히 다른 꽃을 피우면서 영판 다른 종류가 되어버린 식물 같았다. 나는 두 아들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또한 독특한 재능을 가진 나의 수양딸도 그에 못지않게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사생활에서나 사회적으로나 나는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왜, 무슨 이유로 날이 갈수록 내 안의 이 공허함은 더 깊어지고 커져만 가는 것일까? 그것은 질병처럼 나의 영혼을 갉아먹으며, 어디를 가도 쥐처럼 조용히 따라다니며 걸신들린 듯 내 존재를 잠식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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