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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g Mar 04. 2022

누나

    누나는 나보다 한 살이 많다. 2월생이라 학교에 일찍 들어가 학년은 2개가 높다. 겨우 1년 6개월 빨리 태어났을 뿐이지만 '누나'라는 호칭이 주는 무게감은 적지 않았다. 자라면서 항상 나보다 먼저 모든 걸 겪어야 하는 누나에게 심적으로 많이 의지를 했던 것 같다. 국민학교 입학, 중학교와 고등학교 진학 그리고 대학입시.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원하든 원치 않든 언제나 내 앞에서 겪어 냈다. 집안의 첫째이기에 모든 것이 처음이라 힘들었을 누나 덕택에 내 어린 시절 삶은 아무래도 수월할 수 있었다. 누나를 통해서 내 앞날을 예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첫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재수를 선택했던 누나는 많이 안쓰러워 보였다. 실패를 처음 겪는 누나의 모습, 그리고 자녀의 실패를 또 처음 겪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재수는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던 재수 시절, 누나는 죄인이라도 되는 듯했고 두 번째 입시에 성공해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마음껏 어깨 한 번 펴지 못하고 아버지의 눈치를 봤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내가 보는 누나는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담대한 사람이었다. 닥친 난관이 있어도 휘청거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묵직하게 헤쳐나가는 개척자. 우유부단하여 결정을 쉽게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나와 비교해 볼 때 누나는 어느 길을 가야 할지 잘 알고 거침없이 나아가는 사람 같았다. 아버지 다음으로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함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였다.


    누나가 암이란다. 1년 전 가슴에 통증과 이물감을 느껴 내원을 해 검진을 받았고 유방암 2기 진단을 받았다. 수술 전 호르몬 조절을 통한 치료를 병행하여 크기를 줄이는 처치를 먼저 시행하기로 하였고 1년 동안 약을 먹으며 경과를 지켜봤다. 이 약의 부작용이 만만치가 않다. 자궁에 문제가 생기고 살이 많이 찔 수 있다고 했다. 어머니의 철저한 식이 조절로 몸무게는 오히려 줄였지만 자궁 쪽엔 부작용이 생겼다.


    며칠 전 누나는 수술대에 올랐다. 암을 제거하고 자궁의 근종과 물혹을 떼어내는 협진 수술이었다. 수술 준비부터 회복까지 5시간 정도 될 것이라 안내를 받았지만 수술은 7시간 넘도록 끝나지 않아 우리 가족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불안한 마음에 잠도 못 이루고 기다리다 새벽 한 시쯤 수술이 끝나고 회복실로 옮겼다는 어머니의 카톡을 받았다. 너무도 감사한 카톡이었고 비로소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누나는 대학시절에도 큰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수술 후에 내부 조직에 유착이 발생하여 이번 수술이 예상보다 어려워 시간이 더 걸렸다는 사실을 후에 알게 되었다.


    수술 후 3일 정도 입원 치료를 하고서 퇴원을 했다. 입원했던 일주일 정도의 시간을 엄마는 보조침대에서 잠을 주무시면서 누나 곁을 지키셨다. 코로나로 보호자는 지정 1인만 있을 수 있고 면회도 불가능한 이 안타까운 상황에서 가장 가까이에서 더 맘 졸이며 눈물의 기도로 불안한 마음을 달래셨을 엄마. 무사히 끝난 수술과 퇴원은 엄마에게 주는 가장 큰상이었을 것 같다.


    처음 누나의 암 소식을 접했을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매우 막막했다.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다. 친척도 아닌 친누나에게 이런 비극이 닥칠 거라 생각해 본 적이 없던 터라 감정은 미처 현실을 따라오지 못했다. 그저 믿기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나에겐 누나이지만 누나가 자녀인 부모님의 입장은 달랐다.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이었고 누군가를 원망해야 했고 왜 이런 일이 내 자식에게 일어나야 하는지 따져 물어야 했다. 부모님의 모습이 내게 감정이입이 되고서야 감정의 동요가 시작되었다. 내 큰딸이 만약 아프다면......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가정이었고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이 밀려들어왔다. 동생으로서 느끼는 감정이 부모로서 느끼는 감정과 이렇게나 다를 수 있을까? 누나의 무사 퇴원은 부모님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값비싼 선물이었음에 틀림없다.


    앞으로 회복의 과정이 남아 있다. 가입했던 보험에서 암진단비 받았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밥을 샀던 누나가 이제는 온전히 회복되었다는 얘길 듣고 크게 감사의 한 턱을 낼 수 있는 날이 기어이 오고 말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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