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인 첫째 딸의 부모참관 공개 수업이 있었다. 공개 수업 과목이 여럿이었는데 그중 대부분은 아내가 참석을 했고 음악 수업은 내가 참석을 했다. 큰딸은 음악 수업 대부분의 시간 동안 집중하지 못하고 옆에 친구와 계속 떠드는 산만한 모습을 보였고 선생님이 수업을 진행하는 중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친구와 계속 장난을 주고받으며 둘만의 시간에 빠져 있었다. 부모로서 선생님에게 죄송스럽기도 하고 공개 참관수업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모습을 보이면 평상시에는 얼마나 수업 태도가 나쁠까 걱정되며 속이 상하였다.
참관 수업을 보고 온 우리 부부는 걱정과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아이 왜 이리 수업 시간에 산만한 걸까? 아내도 나도 수업 시간에 산만했던 기억이 없었다. 누굴 닮은 거야? 수업 시간은 당연히 집중하고 떠들지 않아야 하는 건데 우리 딸 어떻게 하면 좋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중고등학생이 되면 학교 수업이나 제대로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그러다 며칠 후 책장에 아내와 나의 대학 졸업 앨범과 결혼식 앨범이 망가지기 쉽게 꽂혀 있는 걸 발견하고 적당한 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 책장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내 국민학교 5~6학년 시절 일기를 발견했다. 몇 년마다 한 번씩 이렇게 발견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읽곤 했다. 이번에도 옛 추억을 떠올리며 일기장 첫 페이를 열었고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다 읽었다.
내가 나를 참 미화시키고 있었구나. 사람은 실로 망각의 동물이구나. 일기에는 나 스스로 수업 시간에 친구들과 장난치거나 떠들지 않고 집중하여 공부해야 한다고 다짐하는 내용도 여러 번 등장하였고 선생님들이 일기 말미에 간간히 적어 놓은 산만한 내 수업태도와 떠들고 장난친 태도들에 대해 지적하는 글귀들이 적혀 있었다. 내 민낯이 갑자기 드러나며 큰 딸에게 많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국민학교 고학년인 5~6학년 때 나도 못했던 걸 이제 겨우 3학년인 아이에게 내가 바랬다니. 미안한 마음과 함께 안도감도 함께 들었다. 우리 딸이 못하는 게 아니구나. 아직 어려서 그런 것이고 어릴 때 어찌 보면 당연한 모습일 수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 배려 못하고 공감력도 부족한 것 같아 이기적이라고 아이에게 한 바가지 잔소리를 쏟아붓고 차분하지 못하고 산만한 모습에 못마땅하여 잔소리 늘어놓던 아빠의 모습을 바꿔야겠다. 아이가 더디지만 변하고 바뀌며 성장할 테니 그 모습을 기대하며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줄 수 있는 아빠로. 한 마디 혼냄 대신 한 번 더 허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