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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자냥 Jul 13. 2021

두 발이 이끄는 고독과 자유의 기쁨

토르비에른 에켈룬, <두 발의 고독>


걷기는 일상이다. 그렇기에 그 행위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그 일상의 행위에 이제까지와는  다른 의미가 생기기도 한다. <두 발의 고독>의 저자 에켈룬 또한 걷는다는 행위에서 특별한 가치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그가 뇌전증을 앓기 전까지는……. 그러나 그는 뇌전증 진단으로 운전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어쩔 수 없이 걷는다. 집 가까이를 산책하던 그의 발걸음은 점차 반경을 넓혀 남반구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북반구 아이슬란드에 이르기까지, 도심에서 야생의 황야지대,  태양이 작열하는 스텝지역, 열대우림, 용암이 끓는 화산 꼭대기, 그 어렵다는 맹그로브밀림, 산등성이, 초원지대 등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다양한 곳을 걷고 또 걷는다. 그렇게 걸으면서 그는 두 발이 선사하는 자유와 고독의 세계를 새로이 발견하고, ‘길’에서  남다른 의미를 깨닫는다. 


나 또한 에켈룬처럼 걷기의 매력을 알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걷기를 싫어했다. 그러나 저자처럼 나 또한 어쩔 수 없는 필요성 때문에 걷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도 지적했듯이 걷기는 허리 통증을 줄여준다. 디스크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허리 디스크 때문에 걷기 시작했는데, 이제 걷기는 내 일상이다. 걷지 않는 날은 무기력하고 무언가 중요한  것을 빼먹은 듯하다. 회사에서도 점심을 먹고는 산책에 나선다. 동행은 없다. 혼자 그렇게 30분쯤 걷고 돌아오면 오전의 업무가 정리되고, 오후를 다시 보낼 기력이 되살아난다. 허리 통증이 가라앉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도심 걷기는 누군가로부터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할 수 있는 활동이다. 에켈룬이 말했듯 ‘시내를 걸어 다니면서 가장 좋은 점은 주변으로부터 아무런 주목도 받지  않는 다는 것’이고 점심 내내 나는 그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덕분에 그 짧은 걷기를 통해 육체와 정신적으로 새로운 리듬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렇다고 늘 같은 길을 걷지는 않는다. 어제는 저 길을 거닐었는데, 오늘은 이 길로 가볼까?  내일은 저쪽 길이 어떨까? 걷기 전에 궁리를 해본다. 궁리 없이 걷다가 새로운 발견을 하기도 한다. 도심인데도 이 길은 꽃이  흐드러져있고, 저 길은 소나무가 많으며 가을이면 또 어떤 길은 유독 나뭇잎이 노랗게 물든다. 운이 좋으면 사람이 뜸한, 그래서  분위기가 한결 좋은 카페를 발견하기도 한다. 비단 장소의 발견뿐만이 아니다. 걷다보면 생각에 잠기고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글이 쓰고 싶어진다. 그렇게 쓴 글에서 뜻밖의 사유의 흔적을 만나기도 한다. 주중의 도심 산책은 주말이면 집 근처 공원이나 집 뒤의  작은 산, 더 나아가 둘레길, 한강 주변 산책으로 확장된다. 에켈룬이 점차 더 넓은 세계로 자신의 발걸음을 옮긴 것과 마찬가지이다. 비록 나는 저차처럼 세계 곳곳에 내 발자국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언젠가는 나도 그러리라, 하는 꿈을 마음에 새겨본다.  


걷다 보니 그처럼 좋아했던 자전거도 멀리 하고 있다. 에켈룬이 달리기보다 걷기를 좋아하는 이유와 비슷하다. 걷기는 언제나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하며 어떤 일에도 서두르지 않는다’는 안온하고 느긋한 느낌을 선사한다. 속도 경쟁에 지친 현대인에게  느긋하게 홀로 걷기는 최상의 휴식이자 가장 좋은 치유임을 <두 발의 고독>은 알려준다. 어디 그뿐인가, 내가 걸었던 모든 길은 이미 앞서 누군가가 걸었던 길임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길들과 길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많은 사람들이 걸어 다닌 행동이 모여 만들어진 것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길을 나서면 언젠가는 집으로 돌아와야 하듯이, 떠남이 있으면 돌아옴이 있고, 출발이  있으면 도착이 있으며 시작과 끝, 그리고 결국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와 탄생과 소멸로 이어지는 인간의 삶 그 자체를 돌아보게 한다. 위대한 탐험가는 늘 길을 잃었고, 잃음으로써 더 큰 발견을 했다는 저자의 말은 길 잃기의 가능성 자체가 닫혀버린 현대인에게  길 잃을 자유와 실패할 자유, 거기서 새로운 가능성을 꿈꿀 용기를 북돋워주기도 한다. 걷기를 예찬하는 책은 많다. 그러나 오롯이 두 발이 이끄는 고독과 자유의 기쁨을 이토록 매혹적이면서도 담담하게 써내려간 기록은 흔치 않다. 오늘은 또 어떤 길을 걸을까, 설렘으로 다시 운동화 끈을 조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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