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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밤토끼 Jun 11. 2022

책임 있는 카페인 섭취가 필요한 이유

지속 가능한 커피 이야기(3)

10년 전까지만 해도 집이나 사무실 탕비실에 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는 장비가 있는 곳은 드물었던 것 같다. 간단한 핸드드립 도구와 커피 메이커가 있는 탕비실을 만나기도 했지만 내가 만난 탕비실의 커피 도구들은 대부분 오랫동안 방치된 상태였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도처에 카페가 있고, 인스턴트커피가 종류별로 상비되어 있었으니 사무실에서 마시는 커피 한잔에 부지런할 필요는 없었다. 더군다나 일터에서 마시는 커피는 군용 식량과 다를 바 없으니 맛과 향미를 따져가며 커피 취향을 고집할 여력도 없었다.   


2010년 한국네슬레에서 '네스카페 돌체구스토'를 출시한 이후 네스프레소의 캡슐 커피 머신은 집과 사무실의 필수가전으로 등극했다. 2014년이었던가. 내가 일했던 일터에도 네스프레소 커피 머신이 생겼다. 자그마한 크기에 자리를 많이 차지하지도 않고, 청소나 세척에 손이 덜 가니 세상 이렇게 편할 수가 없구나 싶었다. 알록달록하고 앙증맞은 커피 캡슐이 꽤나 예뻐 보였고, 알록달록한 색상 덕에 이것저것 마셔보고 싶다는 유혹도 쉽게 생겼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된 이후에는 홈바가 유행하면서 에스프레소 머신과 그라인더, 갖가지 드립 도구들이 불티나게 팔렸다. 그 덕분인지 커피전문점에서나 보던 하이엔드급 에스프레소 머신 브랜드에서도 홈카페족을 겨냥한 머신이 출시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폐업하는 카페들도 많았지만 2020년, 2021년 우리나라의 커피 수입량이 증가* 했다고 하니 한국인의 커피 사랑은 엄청나다.

* 2020년 커피 수입량 17만 6천 톤(전년대비 5.36% 증가), 2021년 수입량 18만 9천 톤(전년 대비 7.27% 증가)_출처 : 관세청


나도 2021년부터 아토모스(ATOMOS)를 운영하며 뉴욕과 예테보리에서 커피를 수입하고 있으니 커피 수입량 증가에 깨알같이 일조하고 있다.




호주 기후학회(TCI)는 2080년 커피가 멸종될 것이라 경고했고, 영국 왕립식물원 큐가든(Royal Botanic Gardens, Kew)에서는 기후변화, 삼림 벌채, 곰팡이 병원균 및 해충 확산으로 야생 커피 종의 멸종 위기에 처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그래서 앞서 게시했던 "고작 커피 한잔" 과 "멸종 위기의 커피, 생존 위기의 농부들"에 이어 커피의 위기와 커피로 인한 지구 환경의 위기에 대해 조금 더 글을 써보려고 한다.


열대림 벌채 후 조성되는 커피농장


커피 생산국에서 커피는 그 나라의 ‘가장 큰' 수출품에 해당한다. 이들 국가는 대부분 적도 부근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열대림을 갖고 있다. 전 세계의 엄청난 커피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이들 국가들은 지구 상에서 생물학적으로 가장 풍부한 육상 생태계인 열대림을 벌채한다(정확히는 커피를 포함한 농업이 열대림 벌채의 80%를 주도).


열대림이 벌채된 곳에는 커피농장이 조성된다. 얼마 전 방영했던 <지구인 더 하우스>에서는 이 내용을 다룬 적이 있다. 열대림을 벌채하는 것만으로도 탄소 흡수원이 감소하는 것이니 지구 전체의 기후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


사진 : 지구인 더 하우스(9회) 캡쳐


생물 다양성 훼손과 살충제 의존도 향상


열대림 벌채 후 단일재배 방식으로 조성되는 커피농장은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킨다. 기본적으로 열대림에 살고 있던 다양한 동·식물이 사라지거나, 갈 곳을 잃음으로써 생물 다양성이 훼손된다. 특히 산림 조류의 경우 삼림 벌채로 인해 서식지가 파괴되어 전 세계 조류 중 14%가 멸종 위기에 처해있으며, 이 중 대부분은 열대 우림에 살고 있다(Evan, 2015).


현재의 커피산업에서 커피를 선택한다는 것은 전 세계 열대 지역의 생물 다양성에 영향력을 발휘함을 의미한다. 내가 지금까지 마신 커피를 생각하면 내가 알지 못했던 나의 책임과 영향력은 꽤 무겁고 크다.


반면, 산림을 벌채한 뒤 조성되는 커피농장은 그늘 부족으로 뜨거운 태양열을 견디지 못해 늘 수분이 부족하고 해충 문제를 겪는다. 이 문제는 큐가든이 야생 커피 종의 멸종 원인으로 지적한 곰팡이 병원균과 해충 확산과도 유사하다. 생물다양성이 훼손된 생태계에서 해충이 확산되면 커피농장은 살충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고, 대량의 살충제로 인해 또다시 생태계 파괴가 일어난다.   




 커피 한 잔의 물 발자국 125㎖


Water Footprint Network에 의하면 커피 한 잔(125㎖)의 물 발자국은 140ℓ로 이는 8분 동안 샤워하는 두 번의 물보다 많은 양이라고 한다. 물 발자국은 어느 제품이 생산되기까지 원료 취득-제조-유통-사용-폐기에 이르는 전 과정에 사용되는 물의 총량 및 물과 관련한 환경 영향을 정량화한 개념이다. 즉, 한 사람에게 커피가 도달하기 이전부터 이후 과정에서 사용되는 물의 양을 의미한다.


아마도 그늘이 없는 곳에서 재배된 커피는 수분이 부족하여 재배되는 과정에서 많은 양의 물이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수확된 커피 체리는 물을 사용해 세척되니 커피 생산 과정에서 많은 물이 사용된다. 마지막으로 에스프레소 머신의 구조와 작동 원리를 생각해봤을 때 손님이 건네받는 에스프레소에는 보이지 않는 물 사용이 크다.


또한 해충 문제로 많은 양의 살충제가 사용되었다면 커피 재배와 수확 과정에서 발생한 오염수는 커피 농장 인근의 하천이나 식수로 유입되어 동·식물과 사람에게 질병이나 사망을 일으킬 수 있다.


 커피 한 잔의 탄소발자국 0.28kg


적도 부근의 남반구 지역에서 커피는 주로 재배되지만 이것을 소비하는 인구의 대부분은 북반구 사람들이다.

그리고 커피를 즐겨마시는 사람들의 입 맛이 날로 고급화되고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수확한 커피를 신선하게 운송하고, 맛있게 가공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투입될지 조금은 예측 가능하다. 대부분의 산업이 그렇듯 커피산업에서도 석유에너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탄소배출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커피가 수확되면 세척과 가공을 위해 생산국 내에서 운송이 일어나고, 그 후에는 생산국에서 소비국으로의 운송이 일어난다. <지구인 더 하우스>에서도 커피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의 대부분은 운송과정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생산국에서 생두 대신 로스팅된 원두를 수출·입 한다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세계 곳곳에 위치한 수많은 로스터리와 커피의 신선도(로스팅 날짜)를 생각하면 현실성 있는 대안인지는 갸웃하게 된다. 취향에 맞는 맛있는 커피를 마시면서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생산-가공-유통-소비 과정 곳곳에서 다양한 대안이 만들어지고 실천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 : 지구인 더 하우스(9회) 캡처


영국 유니버시티 컬리지 런던(UCL)의 분석에 따르면 에스프레소 한 잔의 탄소 발자국은 약 0.28kg이라고 한다.

만약 에스프레소에 우유가 더해지면 메뉴(플랫화이트, 카푸치노, 라테)에 따라 탄소 발자국은 0.34kg ~ 0.55kg으로 늘어난다. 우유로 인해 탄소 발자국이 증가하는 것은 기후위기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소 축산의 문제에 기인한다. 영국 가디언지에 따르면 하루에 라떼 3잔을 마실 경우 배출되는 탄소가 유럽을 반 바퀴 비행하는 것과 같다고 하니 적지 않은 양이다.


또 하나 커피의 탄소배출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끓는 물과 에스프레소 머신이다. 커피를 추출할 때 뜨거운 물은 기본적으로 필요한데 물을 끓이기 위해서는 전기나 가스가 사용된다. 에스프레소가 일정한 맛으로 추출되기 위해서는 머신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머신 안에는 늘 뜨거운 물이 담겨 있는데 물의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전기에너지가 사용된다.




마지막으로 소비과정에서 발생하는 일회용품 문제도 심각하다. 일회용품이나 환경오염의 책임을 커피 산업에만 따질 순 없지만 내가 선택한 커피 한잔이 끼치는 영향력과 품질 높은 커피를 앞으로도 마시고 싶은 나로서는 책임 있는 카페인 섭취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반가운 것은 좋은 품질의 커피 취급하는 세계의 다양한 로스터리와 카페들이 지속 가능성을 고려한 방식으로 커피를 소비자에게 제공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커피 문화를 선도하고 있으니 그들을 지지하고 우리 부부가 운영하는 아토모스도 보다 다양한 실천을 해나가고 싶다.


(* 다음 글에서는 지속 가능한 커피를 실현하기 위해 실천되고 있는 방법에 대해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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