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처 몰랐던 커피 산업의 변화(2)
대학 졸업 후 10년이 넘는 나의 사회생활은 비영리단체에 국한된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며 사회복지, 커뮤니티 형성, 도시재생 등 해외의 비영리단체와 행정조직이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추진한 혁신 프로젝트와 정책 사례를 서칭 하는 것은 일상 과업이었다.
스페셜티 카페 겸 제로 웨이스트 스토어 아토모스를 운영하게 되면서 나에게 쌓인 가장 큰 자산은 '의식의 확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일 경험과 네트워크가 비영리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영리를 추구하는 조직이나 브랜드에 대해 다소 편협한 인식
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기부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공모사업)은 익숙했지만 기업 이미지 메이킹과 절세를 목적으로 하는 검은 속내라고 생각했던 측면이 컸다.
문제 해결에 영리냐, 비영리냐는 중요하지 않다
매장 운영을 하면서 의식이 확장될 수 있었던 계기는 지속 가능성에 대한 책임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브랜드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스페셜티 커피 로스터리&카페들이 커피 산업에서 존재하는 환경, 불평등 문제에 대응하는 모습은 문제 해결의 주체는 누구나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었다. 그리고 이들이 그저 착하기만 한 로스터리가 아니라 전 세계 커피 애호가들이 알만한 높은 품질의 커피를 취급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업계의 변화를 견인하는 힘이 상당하지 않을까 추측된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커피 농부와 커피 생산국의 지역사회 변화를 지원함으로써 커피의 지속 가능성을 만들어가고 있는 해외 로스터리들의 놀라운 활동을 소개한다.
흔히 카페에서 커피 맛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로 이야기되는 것은 원두, 그라인더, 에스프레소 머신, 바리스타(역량) 일 것이다. 이 중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을 원두라고 말한다면 어느 누구도 이견이 없지않을까. 셰프들이 최고의 재료로 요리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로스터와 바리스타는 최고의 원두를 다루길 원한다.
그렇다면 최고의 원두가 탄생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높은 품질의 원두를 취급하는 로스터리&카페들은 커피 품질의 일등공신으로 커피 농부와 생산국의 기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커피 재배 역량이 농부들에게 축적될 수 있도록 하고 그들이 속한 지역사회의 생활환경이 변화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커피 농부들과 함께 하는 기후 적응 워크숍
Counter Culture Coffee(카운터 컬처 커피)는 1995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설립된 로스터리이자 트레이닝센터로 스페셜티 커피 문화를 이끈 대표적인 업체이다. 카운터 컬처는 설립 이후 지속 가능한 커피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진행해오고 있다. 그들의 여러 가지 활동 중 나의 눈길을 끈 것은 기후 적응 워크숍이다.
*농부들이 참여하는 기후 적응 워크숍이 진행되는 이유는 이전 게시글인 <멸종 위기의 커피, 생존 위기의 농부들> 정리되어 있다.
커피 생산과 농부의 생계에 절대적 영향력을 끼치는 기후 변화와 관련하여 카운터 컬처는 듀크대와 협력하여 워크숍 툴킷을 만들고,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솔루션을 도출하는 참여형 워크숍을 지원한다. 워크숍에 참여하는 농부들은 기후 변화가 자신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고, 솔루션에 대한 아이디어를 생각하여 적용 타당성을 고려하여 솔루션의 우선순위를 정한다.
나의 경우 온갖 비영리단체에서 진행하는 워크숍은 지겨울 정도로 익숙하지만 로스터리가 대학과 협력하여 진행하는 워크숍은 너무나 생경한 모습이다.
커피 생산국의 이니셔티브를 돕는 Seeds Program
카운터 컬처에서는 커피 농부가 지역사회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있도록 Seeds Program을 운영하고 있다. 카운터 컬처는 매년 판매되는 커피의 1파운드당 0.01달러를 할당하여 프로젝트 기금을 마련한다. 쉽게 말해 카운터 컬처 커피를 구입하는 사람은 자동적으로 커피 생산국에게 기부를 하게 되는 것과 같다. 카운터 컬처는 해당 프로그램을 2018년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 286,000달러(한화로 3억 4천만 원) 이상을 마련하여 머피 생산자와 조직을 지원했다.
Seeds Program을 통해 진행된 프로젝트는 과테말라, 콩고, 에티오피아, 콜롬비아 등 카운터 컬처가 생두를 직접 거래하고 있는 커피 생산국에서 지속 가능성과 관련한 다양한 이슈로 추진되었다. 커피 재배를 위한 농업교육, 생물 다양성 보존을 위한 프로젝트, 문해력 교육, 커피 이외 작물 재배와 양봉 자금을 지원하여 가계소득을 다각화하는 활동 등이 이루어졌다.
여성 농장 프로그램 : 전체 구매 커피량의 1/2을 여성 농장에서
영국 런던의 Caravan Coffee Roasters(카라반 커피 로스터즈)는 스페셜티 커피를 취급하는 로스터이면서 지속 가능성을 지향하는 업체이다. 환경보호를 위해 1% for the Planet에 기부를 하며 커피 산업에 존재하는 젠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Female proude program'이라는 이름으로 두 가지 목표를 갖고 있다. 첫 번째는 구매하는 생두의 절반을 여성 농장주와 거래하는 것, 두 번째는 여성 농장주에게 구입하는 생두 1KG 당 10p를 기금화하여 커피 생산지를 지원하는 것이다.
이들이 여성 농장주와의 거래에 할당량을 부여하는 이유는 전 세계 커피 생산과 관련한 노동의 70%를 여성이 수행하지만 농장주가 여성인 경우는 전체의 20~30%에 불과하고, 소득, 기회, 안전 및 교육 부분에서도 여성 농부는 열악한 위치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카라반의 경우 소비자에게 원두를 판매할 때 특정 원두를 구입할 경우 일정 금액을 기부하는 활동도 하고 있기도 하다. 일종의 지정후원과 같은 개념으로 볼 수 있을 듯한데, 예를 들어 코로나19로 위기에 처한 커피 농부를 돕기 위해 Maria Ramirez의 원두가 판매되면 일정 금액을 COVID19 Farmer Relief 기금으로 마련하거나, LGBT+ 의 인권과 평등을 지지하기 위한 Special Bru가 판매되면 봉투 당 1파운드를 LGBT+ 단체에 기부하기도 했다.
코이카(KOICA)나 국제협력기구에서나 보던 프로젝트와 기금활동이 의식있는 로스터리들에 의해 진행되고 있고, 이들의 활동 영역이 예상치 못한 수준으로 넓어 나에겐 충격을 줬다. 높은 품질의 커피를 추구하면서 높은 수준의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고 있는 업체들을 보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선도자들은 어느 영역에나 존재하고, 어느 삶 속에나 가능하다는 것에 역시 사회는 진보하고 있다는 기쁨을 느낀다.
참고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