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에서 만난 젊은 작가 - 이기훈
“착하고 명랑하나 산만하다.”
어린 시절 그의 가정통신문에 선생님이 써놓은 글이었다. 하지만 그는 어렸음에도 스스로 ‘독특하고 창의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 산만한 아이가 자라서 상상력 없이는 절대 할 수 없는, 글 없는 그림책을 연이어 출간하며 외국의 출판계까지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다.
이 작가의 작업실은 시립도서관이다. 처음 떠오른 생각은 수험 공부하는 사람들 틈에서 화구를 펼쳐놓고 또는 노트북을 열어놓고 그림을 그리는 작가. 이렇게 상상했다. 상상은 대체로 틀리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아담한 작업실이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옹색함보다는 치열함이라고 해야 맞을 듯했다. 휴관일만 빼고 정시 출퇴근하면서 2절 크기의 화구 가방에서 펜과 먹통, 작은 접시, 종이 등 그릴 수 있는 도구와 재료들을 꺼내고, 마치고 갈 때는 또 순서대로 챙겨 담아 갈 것이었다.
시립도서관 3층에 분리된 두 개의 공간 중 삼십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열람실 개방형 테이블에서 촉이 가는 펜으로 아주 섬세하게 그리는 일. 번거로운 것처럼 보이는 이런 방식은 이미 그에게 아주 오래된 익숙한 일이었다. 누군가로부터 어떤 시선을 느끼며 일하는 것은 그만큼 자신에게 가하는 통제와 채찍과 같은 거라고 얘기해주었다.
북으로는 치악산, 동쪽 소백산, 남으로 월악산에 빙 둘러싸인 인구 십삼만 명의 소도시에서 작가는 충분히 바쁘고 한 치 틈도 없이 가족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작은 도시는 서울에 견주어 여러 가지 점에서 좋다고 했다. 이동하는 데 드는 시간 낭비가 없고 주거와 여러 가지 면에서 소비를 덜한다. 무엇보다 그는 작가 이전에 세 아이의 아빠로 역할을 다하려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등교와 방과 후 보살핌과 퇴근 후에 아이들과 잘 노는 가장이 되려고 무척 애쓰는 생활인이었다. 어떻게든 육아라는 힘든 일을 부부가 함께 나누어 맡으려는 미안함에서 그렇다지만 사실은 그에게 그림책 만드는 일과 육아는 별개가 아니라 하나의 일처럼 보였다. 이곳은 작가의 가족이 살기에 아주 적당한 보금자리였다.
어렸을 적 단양에서 살 때 그나마 이 작은 도시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이 세상에 가본 곳 중에서 가장 크고 번화한 도시였다. 그러다 정말로 초등학교 6학년 때 이사를 오게 되었다. 그런데 도시의 친구들은 놀이가 없었다. 아니 노는 것을 모르는 게 더 정확한 표현처럼 학교 수업이 끝나면 거의 모두 학원으로 가버리거나, 오락실에서 테트리스나 갤러그로 시간을 보내는 게 일과였다. 시골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나무로 집을 짓거나 여러 가지 모형들을 만들고 놀던 때와는 딴판이었다. 하지만 도시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자연물로 뭔가를 만들었던 일들이 나중에 학교 방학 숙제라든가 필요한 시기에 어떤 조형감으로 나타나리라고 예상치 못했다. 손으로 만들던 일은 자연스레 만화 그리기로 이어졌다. 당연히 집에서는 공부를 열심히 하리라 생각했지만 실상은 누구의 방해도 없이 만화 그리기에 빠져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께 그림을 그리겠다고 말씀드리자 화가가 꿈이었던 아버지는 흔쾌히 허락하셨다. 이때 담임선생님도 큰 힘이 되었다. “여기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군지 알아?” 선생님은 학급 친구들 앞에서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질문을 했고 “바로 꿈이 있는 기훈이야”라고 공개적으로 말씀하셨다. 이런 격려까지 이어지면서 실제로 그는 뿌듯할 정도로 행복했다.
그런데 다음 해 학생들의 진로를 함께 염려해주시던 선생님이 비가 내리던 9월 무렵 뜻밖의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셨다. 모두 큰 충격에 휩싸였다. 반 친구들 모두 장례식장에서 엎드려 울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고 말한다.
가장 큰 버팀목이었던 선생님과의 이별을 뒤로하고 얼마 남지 않은 미대 입시를 위해 의무적으로 해야 했던 석고 데생에 몰입했다. 다행히 대학에서는 싫어하는 석고 데생을 하지 않을 자유가 있었다. 좋아하는 만화만 실컷 그릴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청춘을 바쳐 일한다는 게 이런 걸까? 아침 8시~9시경에 아파트 같은 원룸 기숙사에서 학교도서관으로 갔다가 밤 11시까지 작업하다 들어오는 일이 흔했다. 그때의 끈기와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져 도서관을 작업실처럼 쓰는 ‘도서관 작가’가 되었다.
그의 작품 상상력은 특별한 곳에서 나오지 않는다. 집안에서 함께 어울려 노는 아이들의 칭얼거림. 싸우는 소리 등 일상의 평범한 모습이 고스란히 그림 속으로 들어온다. 산이 좋아 늘 제천의 진산인 용두산을 자주 오르는 것도 빠질 수 없는 일과 중 하나이다. 언젠가 소백산 정상에 올라 구름에 휩싸였을 때 말할 수 없는 경외감과 어떤 공포감을 함께 느꼈다고 했다. 공간에서의 무한대를 경험한 작가의 정신세계는 도서관 작업실에서 탄탄한 구성과 완벽한 연출의 밑거름이 되었을 수 있다. 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인 의림지가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이곳 역시 작품 속 상상력의 저수지가 되기도 한다.
의림지에 떠있는 오리배가 실제로 『알』에서 동물들이 바다로 흘러갈 때 탄 오리배로 등장하거나 고래가 물 밖으로 몸을 솟구쳐 물을 뿜는 장면 같은 역동성은 모두 관념의 상상물이 아닌 작가가 보고 겪고 느낀 이미지가 화폭으로 옮겨진 것이다.
글 없는 그림책은 아이들이 더 폭넓게 받아들인다는 걸 작가는 잘 알고 있다. 어른들은 『알』에서 “딸은 어디 갔느냐. 왜 돌아오지 않는가?”를 궁금해하고, 이 작품의 결말이 비극적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작가는 글 없는 그림책에 풍부한 서사가 있음을 확신하면서 또 다른 야심작을 품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는 가정통신문의 문장을 바꿔야 할 것 같다.
라고.
정병규_어린이책예술센터 대표, 『우리 그림책 작가를 만나다』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19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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