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넘치는 위트와 상상력

작업실에서 만난 젊은 작가 - 이갑규

by 행복한독서

누가 도시를 멋지게 만드는가. 주택가 한복판에 두 사람의 작가가 새로 둥지를 틀었다. 한 공간에 절반을 나누어 각각 한쪽씩 쓰고 나머지는 공동 공간으로 사용한다. 이 화실 겸 작가의 작업실이 들어서면서 동네가 달라졌다고 주변에서 말한다. 언제부턴가 우리네 생활은 남의 집 일에 간섭하거나 기웃거리지 않게 되었다. 그 대신 누군가가 나를 방해하는 행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조심스러운 사회가 되었다. 그러니 옆집에 누군가 새로 들어오면 경계심과 호기심을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이런 시절에 마치 갤러리처럼 깔끔한 모습으로 단장한 화가들의 작업실을 동네 사람들이 반기지 않을 리 없다. 사람들이 짐짓 모른 체하지만 흘깃거리며 만족해하는 표정들에서 두 화가의 어깨도 가볍지 않게 되었다.


그중 한 사람 이갑규 작가는 일산의 이곳으로 오기 전까지 다른 몇 곳에서 둥지를 틀었던 적이 있다. 김포 강정동에서는 텃밭도 일구는 일종의 전원형 생활을 했지만 돌아서면 정글처럼 풀이 돋는 자연의 위력에 결국 두 손 들고 나왔다. 하지만 그 속에서 『진짜 코 파는 이야기』를 완성하고 나왔다. 자신이 도시형임을 몸으로 받아들이며. 그렇지만 꼭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어디서든 환경을 바꿔 생활하는 게 그에겐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작은 공간에서도 가구와 집기들을 가끔 바꿔가면서 분위기를 환기하곤 한다.


이갑규작가.jpg ⓒ김지원


서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의정부에서 지낸 뒤 줄곧 서울서 생활해온 그에게 도시는 익숙한 공간이었다. 개구쟁이로 지냈다는 말은 늘 심심하지 않게 지냈다는 것으로 들렸다. 친구들에게 장난을 걸고 그 일이 들키면 벌서고 했는데 오죽하면 선생님이 성적표에까지 ‘까부는 아이’로 써놓았을까. 하지만 따분함을 못 견딜 정도로 장난기 많은 그의 성장기는 어떤 때 진짜 공식적인 결과로 나오기도 한다. 초등학교 2학년 무렵 사생 대회 때 축구하는 모습을 그렸는데 일등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경기하는 22명 모두 움직이는 모습을 다르게 그렸다고 했다. 실제로 상상력 이상으로 이런 표현을 도화지에 그릴 수 있다는 건 쉽지 않다.


어쩌면 장난기란 자유로움의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시절 미술대학을 가겠다고 생각했을 때 찾은 곳은 학교 미술부였다. 하지만 어떤 조직은 크거나 작거나 항상 위계질서를 앞세워 군대처럼 선후배 간 폭력도 행사한다.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림을 그리려고 들어갔는데 엄격하고 경직된 분위기가 전혀 맞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결국 조직 문화를 등진 채 스스로 진학을 위한 준비를 하고 결정하는 쪽을 택했다.


디자인을 공부한 뒤 만화를 하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수년간 입시학원 강사로 지내기도 하고 기업체 사보 등의 일을 했지만 생각처럼 만화계에 진입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 무렵 『과학소년』에 그림을 그렸는데 일주일 내내 작업해서 받은 액수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었다. 일한 대가에 비해 거의 생존 불가능한 조건이었다. 여기서 좀더 여건이 나은 학습지로 옮겨 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어서 전집용 그림책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때부터 점점 그만의 그림책을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그림책의 본질에 더 가까이 가기 위해 ‘어린이책작가 교실’에 들어가 글공부를 하면서 여러 사람들과 평가회를 갖는 것도 하나의 과정이었다. 아티스트북을 지향하는 곳에서 워크숍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이것 또한 자신에 맞는 취향은 아닐 듯싶어 방향을 바꾸었다.


작업실.jpg


중요한 것은 작가 자신만의 개성 있는 작업을 해나가는 것. 첫 창작 데뷔작이었던 『진짜 코 파는 이야기』는 이렇게 오랜 시간 담금질 끝에 선보였다. 배우 오디션을 통해 가장 코를 잘 파는 주인공을 선발하는 게 이 그림책의 목적이다. 여러 동물을 등장시켜 자신의 생김새대로 재능을 보여주는 동물들과 작가의 가족인 듯한 아이까지 저마다 가장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준다. 오로지 등장인물들만이 자신들의 코 파기 기교를 뽐낼 뿐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호기심을 놓지 못하게 이끌어가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지극히 개인적인 혼자만의 은밀한 행위를 오디션을 통해 뽑는다는 이 희한한 발상도 그렇고 사실은 당연하지만 비위생적인 이런 상황을 아주 짜릿하면서 위트 있게 끌어가는 것에 그저 빠져들 수밖에 없다. 말풍선 속의 중얼거림, 짧은 문장, 단어의 나열은 더 이상 덜어낼 수 없는 언어들이다. 간명함이 오히려 의미를 전달하는 데 훨씬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뒤이어 나온 『방방이』는 어쩌면 어른들에게 주는 선물 같은 그림책일지 모른다. 어디를 가든 어린이를 위한다는 공간에 아이들은 놀지만 함께 온 어른들은 마치 억지로 동원되어 나온 사람들처럼 각기 다른 시간을 무료하게 보낸다. 스프링과 그물망을 이용해 만들어진 ‘방방이’에서 다른 아이들과 솟구치며 놀던 하람이가 아빠에게 손짓을 하고 엉거주춤 망설이던 아빠가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 폴짝폴짝 뛰다가 그만 흥에 겨워 무법자로 변해버리는 장면은 무언의 도약처럼 보인다. 이어지는 다른 어른들의 항의와 함께 그들도 한 사람씩 뛰어들어와 이제는 아이들이 모두 쫓겨 내려오고 어른들이 방방이 위에서 방방 뛰는 모습은 이 작품 속에서 압권으로 꼽힌다. 처음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현실인 듯 판타지인 듯 거침없이 이끌어가는 작가의 화면 장악은 답답한 숨통을 트이게 하는 매력이 있다.


이처럼 완벽하리만큼 탄탄한 구성은 잘 그린 그림만으로 충족할 수 없는 그동안의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화, 영화, 문학, 전집 그림책 등 켜켜이 쌓인 결과물에서 비로소 나오기 시작한다. 만화의 서사가 바탕에 깔린 다음 작품이 몹시 기다려진다. 위트와 상상력의 작가 손에서 로봇이 어떻게 활약하는지.


정병규_어린이책예술센터 대표, 『우리 그림책 작가를 만나다』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19년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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