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감각과 문화, 의미 나누는 그림책

선물하는 그림책

by 행복한독서

더운 날 추운 날 상관없이 즐기는 빙과류는 ‘붕싸’라 줄여 부르는 ‘붕어싸만코’다. 하루는 마트로 과자 사러 간다는 딸에게 붕싸를 주문했다. 아이는 아이스크림 종류에 따라 모두 다른 맛으로 네 개를 사다 주었다. 바닐라, 녹차, 흑임자까지는 좋았다. 장바구니 속 마지막 붕싸는 ‘불닭 소스’ 맛이었다. 포장지를 자세히 보니 이름도 다르다. 원래 이름 앞에 ‘멘’이 붙었다. 맛에 관한 한 실험과 도전을 즐기는 터라 마지막 주자를 택한다. 결과는 말 그대로 ‘멘붕’이었다. 혀가 아릴 정도로 매운맛의 붉은색 아이스크림이 궁금하다면 도전해보시길 바란다. 웬만해선 다시 도전하고 싶지 않은 ‘멘붕어싸만코’의 맛은 잊을 수 없을 듯싶다. 취향에 따라선 좋아하는 이들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양한 맛을 즐긴다는 의미에서 실험적인 맛의 음식들이 등장한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재료가 독특하거나 맛과 냄새, 외형적 특이성을 지닌 단일 식품들은 문화권에 따라 이상한 음식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전에 없었던 조합의 이른바 ‘괴식’의 등장은 조금 걱정스럽기도 하다. 인터넷 방송으로부터 시작한 ‘먹방’의 재미를 더하고 조회수를 늘리기 위한 퍼포먼스 같은 걸로만 보기엔 건강마저 염려되기 때문이다. 재미있어 따라 해보는 아이들은 ‘음식’을 어떻게 생각하게 될지도 의문이다.


아이들의 식습관과 식문화는 건강과 직결되므로 일찍부터 방향을 잘 잡아주는 게 좋다는 말은 너무 꼰대같이 들릴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먹는 일만큼 생존과 직결되는 것은 없다. 지금 먹는 음식이 우리 몸을 만든다. 해서 음식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다룬 그림책들을 골라보았다. 음식은 물론 어쩌면 다시 누리지 못할 식탁 문화에 관한 그림책도 있다. 논픽션이며 시각적 완성도도 높은 책들이다. 책을 보며 먹는 일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맛 즐기는 음식 감각

『음식! 무슨 맛으로 먹을까?』는 구성도 독특하고 세련된 조형으로 음식에 집중한 논픽션 그림책이다. 의외로 한국 독자, 아니 구매자에게는 썩 어필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16세기 이탈리아 궁정화가 아르침볼도를 기억하는 이라면 이 책은 표지부터 다르게 보일 것이다. 그로테스크하고 실험성 높은 아르침볼도의 그림들은 반짝인기를 끌었으나 17세기 이후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었고 그에 관해 제대로 알려진 바도 없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서면서 나타난 초현실주의에 영향을 준 선구자라는 해석과 재평가가 그를 다시 소환했다.


일러스트레이터 피아 발렌시스는 아르침볼도의 그림 중 과일과 채소 등 먹을 수 있는 재료들로 조합한 초상화를 그림책 표지에 적용했다. 맛을 느끼는 다섯 가지 감각으로 목차를 나누고 다섯 가지 감각에 색깔을 부여한 것도 남다르다. 인간의 맛에 대한 경험은 혀끝의 감각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눈으로 보고 냄새를 맡고 주변의 소리를 들으며 입안에 퍼지는 맛과 질감. 맛은 이 모든 오감이 모여 비로소 완성된다. 맛을 책으로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컬러를 활용한 점도 재미있다. 표지에 옛 회화를 불러왔다면 본문 설명에는 팝아트는 물론 익숙한 만화 캐릭터들도 접목했다. 그러니 설명 글이 너무 길다 싶으면 그림만 먼저 즐겨도 좋겠다. 음식을 즐기는 데 필요한 거의 모든 정보와 역사까지 감각과 문화의 접점을 잘 살린 수작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


한국 음식으로 음식과 맛을 즐기는 감각을 이야기한 작가들도 있다. ‘제철’ 음식을 소개한 『봄 여름 가을 겨울 맛있는 그림책』이다. 우리에게 사계절이 뚜렷해서 좋았던 건 철마다 그때가 아니면 만나기 힘든 먹거리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사시사철 구분 없이 먹고 싶다면 언제라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첨단 작물 재배 기술과 냉장 냉방 보존 및 체인형 유통 방식들은 제철 음식이란 말조차 무색하게 만들었다. 예전 같으면 꿈도 못 꿀 일이다.


봄여름가을겨울.jpg ⓒ웃는돌고래(『봄 여름 가을 겨울 맛있는 그림책』)


이 그림책은 그 계절이 아니라면 만나기 힘들었던 음식들을 소개하고 다양한 맛 표현의 변주를 경험하게 한다. 먹음직스러운 쑥버무리와 도토리묵과 오이냉국 들은 남성훈 작가의 손끝에서 단정한 질감의 그림으로 더 먹음직스럽게 살아난다. 장면마다 향긋하고 구수하며 새콤달콤한 맛의 느낌이 고스란히 담겼다. 해쑥 향을 그대로 품은 쑥버무리 한 조각을 못 먹고 지나버린 봄은 무언가 허전하다. 그 맛을 경험해보지 않은 아이라면 그런 아쉬움조차 없을 것이다. 도토리가 묵이 되기까지 얼마나 길고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지 지켜본 적이 없다면 알 방법도 없다. 물론 그림책에 그 모든 걸 다 담을 수는 없다. 원재료와 완성된 음식을 나란히 배치한 장면을 보며 그 과정을 기억해내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지금이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싶다. 기억을 되살려 아이들에게 들려주자. 그렇게 알게 된다면 음식을 그냥 먹게 되진 않을 것이다. 다양한 맛을 표현하는 우리말 단어들을 양껏 만나게 되는 건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다.


다양한 식탁으로의 초대

『오늘의 식탁에 초대합니다』는 다국적의 사람들이 요리하는 과정을 차례로 보여준다. 아랍 인도 중국 멕시코 스페인 일본 등 나라별 일상 요리 레시피도 함께 제공된다. 등장인물들이 음식을 만드는 동안 독자들은 펠리치타 살라가 연출한 장면을 보며 각 나라의 특징적인 문화를 살피면 된다. 정성껏 그린 재료들을 보는 재미도 있다. 재료는 여섯 가지를 넘기지 않는다. 완성한 요리는 다 함께 한 식탁에 모여 나눠 먹는다. 알고 보니 그들은 모두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이었다. 함께 식사하며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되는 건 당연하다. 요즘이라면 불가능한 풍경이어서 더 좋다. 포크만 들고 의자 하나만 놓으면 그들 안에 녹아들게 될 그런 식탁 문화가 이젠 어색하다.


오늘의식탁에초대.jpg ⓒ씨드북(『오늘의 식탁에 초대합니다』)


작가가 그런 조합을 만들었을 때만 해도 이토록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받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것이 의도된 설정이어도 기억 속 따스함은 그대로여서 언제라도 그런 날이 빨리 오기를 기원하게 된다. 이 책과 함께 꼭 보아야 할 식탁 이야기 그림책이 있다. 베카 스태틀랜더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자유로운 식탁 문화와 다양성을 보여주는 『위대한 식탁』이다. 원한다면 누구라도 식탁에 초대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장면은 쓸쓸한 기분마저 들어도 그 정서를 잊지 않기 위해 함께 보면 좋겠다. 또 지금부터라도 노력하자는 마음으로 다음 문장을 새겨읽었으면 한다.

“어디서나 땅은 넉넉히 내어주고 사람들은 정성껏 심고 가꾸지요.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의 아이들도 풍성한 지구를 나눠가질 수 있도록.”


생명과 죽음을 생각하며

『고마워, 죽어 줘서』라는 제목이 아이들 일상에 좋지 않은 방식으로 활용될 것이 신경 쓰여 이 책을 선택하지 않겠다는 학부모와 교사가 있었다. 이 책 때문에 밥 먹이기가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도 있었다. 그러니 더욱 이 책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인류가 식자재로 소비한 수많은 생명을 대상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아이들과 함께 읽어야 한다. 소시지와 삼겹살과 생선구이도 식탁에 오르기 전까지는 하나의 생명이었음을 아는 일은 중요하다. 살아가기 위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생명을 취한다는 사실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자원이 순환하고 또 다른 생명을 살게 하는 일임을 조금이라도 더 일찍 알게 된다면 좋겠다. 살아있는 모든 것을 귀하게 생각할 수 있는 아이로 키우는 건 지금 이 시대에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사실적이고 직접적인 표현이 아닌 단순한 형태와 색채로 주제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쓰카모토 야스시의 그림도 인상적이다. 생명과 죽음을 다루는 그림책으로 이만한 전달력을 지니기도 힘들 것이다.

고마워죽어줘서.jpg ⓒ나린글(『고마워, 죽어 줘서』)


다시 시원한 아이스크림으로 돌아온다. ‘멘붕싸’에 감탄하며 좋아하게 된 분이나, 그 맛에 깜짝 놀라 그런 조합의 모든 음식에 의혹을 품게 된 사람 모두 기본적으로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건 같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니 아이스크림의 역사와 문화를 이야기 속에 잘 꾸려낸 피터 시스의 그림책 『아이스크림 여행』에서 제대로 알아보자. 여름의 기록을 할아버지와 공유하는 주인공 조는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공부하며 보낸 이야기를 편지에 담는다. 다양한 학문 안에서 저마다 다른 접근으로 아이스크림을 탐구하는 동안 여름방학도 지나고 주인공도 자란다. 관심 있고 좋아하는 주제 하나를 입체적으로 탐색하는 방식은 아이들에게 잊지 못할 경험이다. 그것이 먹을 수 있는 무언가라면 더 좋겠다. 피터 시스는 쉽지 않은 주제를 어렵지 않은 글로 정교하고 치밀한 그림 안에 표현해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받았던 작가다. 『아이스크림 여행』도 글에 없는 그림의 이야기를 찬찬히 살피며 읽어보자.


김혜진_그림책보다연구소 소장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1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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