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것들은 다 바다에 있다

by 행복한독서

동쪽의 밥상

엄경선 지음 / 240쪽 / 15,000원 / 온다프레스



2020년은 삼시 세끼 먹는 일로 보냈다. 먹고 치우고 다시 만들고, 장보기가 쉴 틈을 주지 않고 이어졌다. 격리, 실직, 폐업으로 고통받은 이들 앞에 부끄러운 엄살이겠으나 마땅히 누려온 자유를 잃고 원초적인 노동에 얽매여 있다는 갑갑함이 불쑥 치밀었다.


그러던 한 해 끝자락에 이 책 『동쪽의 밥상』을 만났다. 속초에서 나고 자라, 속초에 사는 저자가 동해의 슬하에서 태어난 먹을거리에 대해 썼다니. 해산물 진수성찬으로 대리 식도락을 즐기리라 생각하며 냉큼 책을 잡았다. 1장 제목만 보고도 침이 꼴깍 소리를 내며 넘어갔다. “그 향이 사흘이 지나도 가시지 않았다더라.” 대체 무슨 진미를 두고 한 말인가 궁금해 마음이 바빴다.


저자는 가자미, 오징어, 청어 얘기를 백석의 시와 버무려내고, 동해에 외가가 있었다는 허균을 빌어 표태(표범의 태반) 같은 희귀한 음식 얘기를 한다. 다산 정약용이며 성호 이익, 육당 최남선이 거들고, 가수 한대수와 강산에가 명태를 노래한다. 온 세상이 동해의 맛을 찬미하고 있었다.


동쪽의밥상내지ⓒ김준연.jpg ⓒ김준연


해변에 ‘울’을 친 오징어 말리는 풍경을 애국가 배경 화면으로나 보았으니, 동해안 사람들이 그해 처음 나온 손바닥만 한 산오징어를 맛보는 즐거움을 짐작조차 못 하겠다.

그래도 “싱싱한 양미리에 굵은 소금을 적당히 뿌린 뒤 불에 올려놓고 젓가락으로 한두 번 뒤척이면 노릇노릇” 구워지는 모습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옳지! 기름이 살짝 배어나오면 그대로 입안에 넣는 거다 하고 어느새 따라서 맛을 그리고 있다. 과연, “최고의 맛은 바다에서 나오는 법”이라고 연신 끄덕이게 된다.

맛도 바다요, 풍류도 바다다. 어째서 평생을 서울 언저리에서 살고 있는가. 눈앞에 가득한 아파트 병풍을 버리고 당장 동해로 달려가고 싶다.


그런데 고작해야 일 년에 몇 번 관광객으로 바다를 찾는 이가 짐작하지 못할 일은 따로 있다. 요사이 택배 물량이 폭주하는 양미리나 금값 대접을 받는 도루묵이 천덕꾸러기였던 시절이 멀지 않다. 1960~70년대 잡히라는 명태 대신 도루묵이 그물에 걸리면, 머리에 뾰족한 가시가 있는 도루묵을 떼다가 손가락을 찔려 생손을 크게 앓았다거나 그물에서 떼어낸 도루묵도 사 가는 이가 없어 어부들이 영 반기지 않았다는 얘기 등이다. 도루묵이니 양미리가 너무 많이 잡히면 거름으로 쓰려고 밭에 파묻었다니!


이 책은 동해안 ‘맛집’ 안내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완성된 요리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말하는 책이다. 큰 멀기(파도)가 이는 시퍼런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아 오는 힘들고 고된 어부의 일을 생각하게 하고, 흔하던 청어가 사라지고 귀하던 대구가 흔해지고 명태 씨가 마르는 변덕스러운 바다이니 지금 흔한 것이 언제든 귀해질 줄 알라는 일침을 날린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가 ‘동해의 맛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동쪽의 바다, 물고기, 사람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냉동실에는 가시까지 다 발린 채 진공포장된 생선이 들어있다. 바다의 비린내를 감쪽같이 감춘 모양새다. 비록 오늘의 밥상에 올릴 것이 이 비닐 속 생선뿐일지라도 바다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어부의 수고로움이 없었다면 맛볼 수 없음을 기억해야겠다. 이 책을 옆에 두고서.


이소영_책방 마그앤그래 대표, 『화가는 무엇으로 그리는가』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1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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