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린 가이드
김정연 지음 / 285쪽 / 15,000원 / 코난북스
스무 평 남짓 책방에서 책방 주인의 말은 제법 영향력이 있다. 책방 문밖으로 나가면 연기처럼 사라지는 입김이요, 책방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희박한 게 문제지만 말이다. 각설하고, 면전에서 이 정도 찬사를 늘어놓으면 궁금증이 동하는 게 당연지사다. 어떤 책인지 한번 거들떠보자는 손님에게 책을 건넨다. 그리고 책을 펼쳐본 손님이 “어? 만화네요”라고 말하는 순간, 심장이 콩콩거린다. ‘의외네요. 만화책이라니’가 말미에 생략되어 있지 싶어 그렇다.
나의 책방에서 만화란 주변부 존재다. 책방엔 “만화랍니다! 만화거든요!” 하고 자신만만하게 권할 수 있는 소수의 손님이 있고, 만화인 걸 알면 책을 내려놓고 살짝 민망한 표정을 짓는 다수의 손님이 있다. 그 관계는 역전된 적이 없다. 확실하게 선호하는 사람이 정해진 ‘장르’가 만화다. 책방에는 책을 골라달라는 청이 종종 있지만 내 경우 손님의 본래 독서 취향을 벗어나는 모험은 좀체 시도하지 않는다. 고전문학을 읽는 손님에게 유행하는 에세이를 권하지 않고, 자녀 교육서를 주로 찾는 분에게 예술 서적을 보라 하지 않는다. 애석하지만, 내가 쓴 책이라도 말이다. 그러므로 만화책은 “와! 만화다!” 할 독자를 찾지 못하고 입고 직후 주눅 든 채 책장에 꽂혀있기 일쑤다.
그러니까 거절당할 민망함을 무릅쓰고 『이세린 가이드』를 내민다.
라고 다다다 소개한 끝에
라고 재빨리 덧붙여서 책을 내놓는다. 손님이 만화라고 내치지 않고 책을 좀 살펴보면 계속 주절거린다.
이 책은 무거운 주제를 품고 있다. 음식 모형을 만드는 직업은 가상이 현실을 압도하는 세계를 은유한다. 주인공이 전문성을 발휘해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은 전 지구적인 기후 위기의 주범 중 하나인 플라스틱이다. 무심히 지나친 곳곳마다 플라스틱. 쌀은 논에서도 나고, 공장에서도 나고 있었다. 우리 세계는 가짜와 진짜가 온통 뒤섞여 구분되지 않는 곳이었다는 통찰이 깊이 깔려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음식 모형 제작자의 하루를 밑 재료로 농담과 잡생각, 가족 관계에서 얻은 깨달음이나 ‘오래 묵힌 원념’들을 정확한 양, 적당한 비율로 섞어 보기 좋게, 읽기 좋게 차려낸 만화다운 만화다. 그러므로 우리는 심각함에 머뭇거리거나, 진지함에 주눅 들지 않고 이야기 끝까지 질주할 수 있다.
입고한 『이세린 가이드』를 만화 칸에 꽂아두지 않고, 카운터 옆에 며칠째 두었다. 책방의 베스트셀러는 책방 주인이 지금 읽고 있는 책에서, 예약 도서를 꽂아둔 책장에서 생긴다. 베스트셀러가 되라고 아직 이 책의 자리를 정해두지 않는다.
이소영_마그앤그래 대표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1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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