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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은 파도를 두 팔 벌려 맞는 곳, 서점

경기서적 책방지기 추천책

by 행복한독서 Jun 12. 2023
브런치 글 이미지 1

우리는 책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 

김영건 지음 / 216쪽 / 15,000원 / 어크로스



가만히 앉아 책을 읽으며 손님을 기다리는 주인의 모습을 상상하는 이들이 많지만, 꾸려가는 사람으로서는 동분서주해도 늘 시간이 모자라 영업시간이 훌쩍 지나 책의 고요를 온몸으로 느끼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어둡고도 밝은 밤이 잔잔하게 파도치는 곳. 서점들의 생김새는 달라도 일상은 비슷할 것이다. 


책과 책 사이에 손을 밀어 책을 꽂거나 가장 좋아하는 공간에 책을 세우거나 눕혀 진열하는 것도, 진득하니 앉아 한 끼 밥을 엉덩이 한 번 떼지 않고 먹는 것이 어려운 것도, 마음에 드는 신간이 입고되면 괜스레 설레어 한 번 더 보고 진열하기 위해 데스크 한쪽에 살짝 밀어두었다가 짬이 날 때 자세히 살펴보고는 갖다 두는 모습들이 그렇지 않으려나. 

그만큼 모두 책에 진심이라서 바쁘고 즐거운 사람들이다. 


서둘러 일찍 나왔음에도 나보다도 먼저 와 서점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손님들이 있는데 그럴 땐 다급해져 등에 땀이 밴다. 문을 열고 불을 켜고 컴퓨터들을 모두 켜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고 적막한 공기를 깨기 위해 음악을 틀고, 문 바깥에 배치되어야 할 집기류들을 꺼내 정렬한다. 지난밤 마감 청소가 잘되었는지 서가 사이를 다니면서 눈으로 빠르게 확인해보고, 함께 문을 열고 들어온 손님들을 한 사람씩 살핀다. 물을 한 잔 들이켠 뒤, 컴퓨터를 실행해놓고 계산대 앞에 흐트러진 것들이 없는지 확인해본다. 창밖으로 들어온 새 공기를 들이마시면 그제야 하루가 시작되는 것만 같다. 


서점에 있으면 온종일 책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오로지 책과 관련된 생각들로 가득 찰 수밖에 없다. 책을 찾는 손님들과 나누고 싶고 나누어야만 하는 대화들에도 모든 신경이 집중된다. 서점 그리고 책 한 권에는 많은 사연들이 파도처럼 밀려든다. 어느 누구의 손길이 닿아 서점을 떠나간 책인지 생각해보면 그 사연들을 하나하나 떠올릴 수 있다. 


“‘내가 이 책을 여기에 숨겨놓은 걸 대체 어떻게 발견했을까!’ 드물고도 어렵게 주인을 만났으면 그걸로 그만이어도 좋으련만, 나는 한 번의 탄복에서 그치지 않고, 기어코 그 책들을 다시 주문하고야 만다.” (44쪽) 


어느 날 손님이 반색을 하며 책을 가져와 기분 좋게 “이거 정말 팔려고 갖다놓으신 거예요?” 하며 계산하려 들면 흥분된 분위기에 휩쓸려 그날 저녁 재주문을 하고, 며칠 못 가 또 팔려나가고 하다 보면 어느새 조용한 스테디셀러가 되는 것만 같아 참 재미있어지곤 한다. 그렇게 책을 매개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서점이라는 걸 저자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에세이 속에 소개된 책들은 모두 책방의 주인을 닮아 보인다. 소개하려고 애쓴 흔적도 없이 자연스럽게 그의 독서생활문에 녹아들어 있는 기분이다. 


무수히 밀려드는 책의 파도를 즐기며 우리의 취향과 손님이 책을 보다 즐겁게 만나게 하는 정돈된 리듬의 진열을 가꾸며 오늘도 내일도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가기 위해 살아간다. 바다가 있는, 빌딩숲에 둘러싸이거나 유등이 밝혀주는 강변이 있는 도시에서, 단단한 성벽과 고즈넉한 연못이 있는 도시에서 저마다 책의 파도를 맞이하며 말이다. 


이유리_경기서적 책방지기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2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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