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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Jun 05. 2024

창의적 노년에 대한 밑그림

오십의 인사이트

남경아 지음 / 320쪽 / 19,800원 / 서해문집



베이비부머 세대는 특이한 호칭이다. 전후 세대, 한글세대, 신세대, 서태지 세대, X세대, IMF세대, 월드컵 세대, 밀레니얼 세대, MZ세대, N포 세대, 코로나 세대처럼 문화적 특징이나 시대적 경험을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출생 인구수가 많았다는 것만으로 규정되고 명명된 세대인 것이다. 그 두꺼운 인구층이 어느 연령대였는가에 따라서 사회의 성격이 바뀌어왔다. 그들이 젊었던 시절에는 성장의 동력이었고 민주화의 주역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이 대거 노년 세대로 진입하면서 새로운 과제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우선 급증하는 복지 수요와 돌봄의 부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가 절박하다. 젊은 세대와의 형평성을 맞추는 연금 개혁도 긴요하다. 

하지만 베이비부머 세대는 단지 부양의 대상만은 아니다. 그들은 그 윗세대와 다른 노년을 영위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생애주기가 길어지는 가운데, 베이비부머 세대는 스스로 아직 젊다고 생각하는 세대로서 소비시장의 주류가 되었다. 그리고 계속 일하고 싶고 일할 수 있고 일해야 하는 세대다. 그래서 신중년, ‘액티브 시니어’ 50플러스, 욜드(Young Old) 등 여러 이름들로 호명된다. 우리가 맞이하는 초고령사회는 노년 인구의 증가와 함께 노년의 라이프스타일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암시한다. 『오십의 인사이트』는 그런 흐름을 두루 조망하면서 지금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입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안전산행지원단, 「2023 보람 일자리 우수사례집」중  ⓒ서울시50플러스재단

중장년 담론과 관련 정책은 2000년대 중반부터 전개되어 왔는데, 이 책은 태동기(2006~2010), 시작기(2011~ 2015), 확장기(2016~2022), 새로운 물결(2022년 이후)로 구분한다. 저자가 보기에 그 과정을 통해 확인된 것들이 있다. 

신중년을 문제가 아니라 자원으로 바라보면서 전 생애적 및 전 세대적 관점과 창의적 나이듦이라는 비전으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 지속적 수입뿐 아니라 개인적 의미와 성취, 사회적 영향과 가치 모두를 만족시키는 일자리를 많이 확충해야 한다는 것, 개개인이 삶의 중심을 새롭게 설정하고 사회적 관계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그런 목적이 달성되려면 당사자들에게 시간적 여유가 주어져야 한다. 전환기를 맞아 스스로 충분히 진로를 탐색하고 설계할 수 있는 ‘갭 이어’(무대 뒤에서 조용히 잠시 멈춘 채 새로운 큐사인을 기다리는 시간)를 말한다.

숨 가쁘게 달려온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자신과 주변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장차 해야 할 일들을 찾아낼 수 있는데, 자신의 사회적 자원과 다양한 지원 시스템들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저자가 현장에서 만났던 여러 사례 중 새로운 분야에서 소득 활동과 보람을 함께 찾은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자신이 적절한 시기를 정해서 계획적·자발적으로 퇴직했다는 점, 구체적 기술을 습득하려고 노력했다는 점, 민간이나 공공기관에서 하는 체계적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새로운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었다는 점, 공공의 제도적 지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점 등이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의 시니어모델들

50플러스 세대의 인생 이모작 구상에서 또 한 가지 필요한 것은 공간이다. 동료 시민들이 편안하게 머물면서 서로 어울리고 스토리와 경험을 공유해 가는 제3의 장소를 말한다. 공간이 왜 중요한가. 노화에 대한 불안을 함께 다스리며 전환을 준비할 수 있도록 공동체적 접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과 ‘배움’과 ‘관계’가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 어우러지는 사람들 사이에 긴밀한 유대가 새로운 학습과 관계를 통한 사회 공헌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폐쇄적이고 자기 만족적인 활동으로 전락하지 않고 세대와 지역, 계층 등 집단의 경계를 뛰어넘어 관계를 이어가는 교량적 사회자본으로 형성되도록 하는 것이다. 

책의 표지에는 ‘세대 연결자’라는 단어가 쓰여있는데, 생애 과정에서 많은 것을 누려왔고 지금도 경제적, 정치적 자산이 비교적 많은 베이비부머 세대는 아래 세대의 웰빙에도 일정하게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외국의 사례들이 참고가 된다. 연장자들이 젊은 세대에게 조력자가 되어 지속적으로 도우면서 모두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미국의 ‘제너레이션 투 제너레이션’ 캠페인, 예술을 활용한 세대 통합 프로그램 영국의 ‘매직 미’, 학생들이 자신 있는 과목을 강좌로 개설해서 지역의 시니어들에게 가르쳐주는 독일의 ‘시니어 학교 부엉이’ 등이 책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저자는 일거리나 일자리를 찾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으로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를 지목한다. 시니어 단체들을 들여다보면 말로는 다 될 듯하지만 실행력이 없다고 하는데, 비대해진 에고를 극복하는 것은 협업의 필수적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노년에 다가갈수록 자기를 객관화하면서 스스로를 낮춰야 하고 더 나아가 사회적 쓸모가 없어지는 ‘무용한 삶’까지 수용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정직한 자아 성찰은 커뮤니티의 즐거움과 일의 효율을 증진시킬 뿐 아니라, 인생 자체의 품격과 깊이를 더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창조해 나갈 새로운 노년의 삶은 개인뿐 아니라 역사와 문화의 전환을 이뤄낼 수 있다. 『오십의 인사이트』는 이 밑그림을 다채롭게 그려주면서 예리한 통찰들을 일깨워준다.


김찬호_성공회대 초빙교수, 『베이비부머가 노년이 되었습니다』  저자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4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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