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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Jun 03. 2024

생명을 노래하는 붕붕어의 작정

작가가 들려주는 그림책 이야기

행복한 붕붕어

권윤덕 글·그림 / 48쪽 / 18,000원 / 길벗어린이


코로나19를 겪은 우리는 이제 ‘미래’를 ‘위기’와 연결하곤 한다. 내가 사는 세상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또 어떻게 하면 나의 심지를 세우고 살 수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 사람들은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누며 지혜를 쌓아 간다.

그림책 『행복한 붕붕어』를 구상하면서 ‘작정하다’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일을 어떻게 하기로 결정하다”라는 뜻이다. ‘결심하다’보다는 조금 더 행동으로 옮겨간 상태이다. 이제 일을 시작하기만 하면 될 것 같은 홀가분함이 작정하다에 있다.

붕붕어는 무슨 작정을 했을까? 붕붕어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자연에 대한 감각과 생명의 아름다움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나와 이웃과 자연에 도움이 되는 우리의 새로운 ‘작정들’에 대해서도 고민해 본다.

ⓒ권윤덕, 길벗어린이(『행복한 붕붕어』)

2019년과 2021년, 제주 어린이들과 자연을 주제로 그림책 만들기 수업을 기획 진행했다. 기후위기의 시대, 아이들과 어떤 이야기로 그림책을 만들면 좋을까? 무엇보다 자연을 존중하고 생명의 아름다움을 아이들의 마음속에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2021년 성산초 5, 6학년 수업에서는 바닷물고기를 소재로 삼았다. 갓 잡아 온 생선을 수협공판장에서 사와 아이들 책상 위에 놓고 관찰하고 그림을 그렸다. 이 수업을 시작하면서 내가 꺼낸 이야기가 “아이누 신화”였다.


“물고기는 기꺼이 자기 몸을 인간에게 내어 줍니다. 아이누족은 이런 동물이나 물고기, 식물을 손님이라고 불러요. 영혼의 손님들은 그들을 환대하는 자리에 앉아 인간이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직접 보고 들으면서 기뻐합니다. 사람들은 손님에게 노래를 불러 주고 그들의 살을 먹습니다. (…) 음악과 예절을 갖춘 환대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몇 번이고 거듭해서 다시 태어나고 또 우리에게 올 것입니다.” 

(『야생의 실천』 176쪽)


아이들은 물고기와 눈을 맞추며 물고기가 전하는 이야기를 들었고, 물고기를 환대하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다. 아이들의 하얀 화판에서, 붓끝에서 물고기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던 그때의 감동은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나는 나중에 아이들과 수업한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파랑을 조금 더 가지고 싶어요』를 출간하였다. 책에 발이 달린 물고기 사인을 그려주곤 했는데, 차츰 그 발 달린 물고기가 내 마음속에 들어앉았다. 그러다가 이듬해 붕어빵이 생각나는 겨울, 첫눈이 내릴 때 즈음 ‘붕세권’ 앱을 소개하는 신문기사를 보면서 발 달린 물고기와 붕어빵이 겹쳐서 떠올랐다.

발 달린 ‘붕붕어’는 환경오염 때문에 생긴 기형 물고기일까? 아니면 자연이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창조한 특별한 생물일까? 어떻게 해석하든 주제를 전하는 데는 차이가 없다. 그림을 그리면서 어려웠던 것은 환경오염을 연상시키는 기형 물고기와 맛있는 붕어빵의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연결하는 일이었다. 나는 환경오염을 고발하기보다 생명을 존중하고 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자 하였다. 오염되기 이전, 생명이 풍요롭게 번성하던 먼 옛날 푸른 강물의 그리움을 붕어빵 이미지에 담았다. 어려운 것이 또 하나 있었다. 붕붕어가 빵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자살로 읽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붕붕어를 사람들 마음속에 영원히, 생생하게 살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문제는, 만물에 깃들어있는 생명은 “카무이(신·정령)”의 다른 현상이라는 아이누족의 신화를 빌려오면서 해결할 수 있었다.

나는 색의 조화, 자유로운 필선, 곱고 섬세한 양감, 현대적인 패턴, 현실 세계를 넘어선 구도 등 매번 한국 채색화 도판을 보고 감탄하면서 그 감흥을 그림에 적용해 보려고 노력해 왔다. 이번 작품에서는 주인공 붕붕어가 인간 세상으로 올라오는 장면이나 자신의 작정을 실행하는 장면 등을 펼침면에 여러 칸으로 나누어 그렸는데, 이것은 4폭 혹은 8폭 병풍의 형식을 빌려온 것이다. 긴 세로 그림이 여러 폭으로 이어진 병풍은 전체적으로 통일된 구도 속에서 폭마다 변화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위에서 아래로, 좌에서 우로 그림을 읽어내는 재미가 있다.

구성의 틀을 잡았다 해도 선은 어떻게 긋고 색은 또 어떻게 칠해야 하는가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외곽선으로 사물 형태를 그리고 안을 색으로 메우는 방법은 정제된 선이 주는 아름다움이 크다. 대신 번짐이 갖는 풍성하고 편안한 느낌은 사라진다. 반면에 수묵화처럼 외곽선 없이 사물의 형태와 명암을 면으로 그리는 방법은 불화나 민화 등 전통 채색화의 섬세한 문양을 그려낼 수 없다. 그러면 이 두 방법을 한 화면에 결합할 수는 없을까? 선과 면, 평면과 입체, 문양과 명암 등 한 화면 안에서 이야기 흐름을 따라가며 변화를 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채색화 재료의 성질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했다. 분채와 아교를 활용해 채색의 순서와 방법들을 실험하면서 해결할 수 있었다.



권윤덕 작가는 1995년 『만희네 집』으로 그림책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2010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꽃할머니』부터 전쟁과 폭력, 가해와 피해의 문제를 그림책에 담아왔다. 『행복한 붕붕어』는 기후위기에 대해 질문하고 생명을 노래하는 책이다.


-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4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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