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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Jul 03. 2024

‘현장’에서 길을 만든 여자들의 삶과 노동

나, 블루칼라 여자

박정연 글 / 황지현 사진 / 232쪽 18,000원 / 한겨레출판



‘화물 노동자, 용접 노동자, 먹매김 노동자, 형틀 목수, 자재정리·세대청소 노동자, 레미콘 운전 노동자, 철도차량정비원, 자동차 시트 제조 공장 노동자, 주택 수리 기사, 빌더 목수’에 이름이 묻힐까, 김지나, 김신혜, 김혜숙, 신연옥, 권원영, 정정숙, 하현아, 황점순, 안형선, 이아진을 꼭꼭 눌러 써본다. 자기 이야기를 한껏 세상에 나누어준 여자들이 고맙다.


김지나는 8년 차 트레일러 기사다. 부산에서 수출입 컨테이너를 나른다. 전업주부였다가 구직에 나섰는데 사촌 동생과 친구 남편이 화물 일을 해, 자신도 하면 되겠구나 생각했다. 자격증은 단박에 땄지만 초보에 여성이라는 사회적 편견으로 취업 자체가 힘들었다. 그래도 버텨, 이제 어떤 젊은이들은 지나 씨를 본보기 삼아 운전대를 잡는다. 부당한 일을 바꾸려, 화물연대 부산서부지부장이 됐다.


김신혜는 13년 차 플랜트 용접사다. 여성으로는 충남 서산 최초다. 화기감시자로 일할 때 용접 작업을 보면서 질문이 생겼다. 용접사가 “그래 한번 해봐. 당신도 할 수 있어”라며 건설노조의 건설기능학교를 알려줬다. 화기감시자 동료가 “내가 네 나이면 당장이라도 시작한다”며 응원했다. 그때 신혜 씨 나이 마흔. ‘여자가 무슨 용접을 하냐’는 편견에 기죽지 않고 실력을 쌓아 솜씨 좋은 기술자가 되었다.


김혜숙은 8년 차 먹매김 노동자다. 이전 20년은 식당에서 일했다. 61세에도 현장에서 부르면 반드시 나가고 어떻게든 공사 끝까지 살아남는다. 남자들한테 욕먹으면서 일을 배웠던 터라, 혜숙 씨는 현장에 오는 여자들한테 기준선을 잡는 방법부터 먹줄을 튕기는 노하우까지 다 가르쳐준다. 그래야 여자들이 현장에서 살아남으니까. 자기가 당한 설움을 다른 여자들은 당하지 말라는 연대와 나눔이다.

먹매김 노동자 김혜숙 ⓒ박정연

신연옥은 7년 차 형틀 목수다. 공장에서 단기 알바를 하던 때, 동료의 남편이 건설 현장에 여자가 있다고, 건설기능학교가 있다고 알려줬다. 그래서 동료와 가서 목수 일을 배웠다. 연옥 씨는 집에서도 위축되곤 했는데 일하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성희롱 언사에는 “함부로 말씀하시면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사측이 자신을 아줌마나 여사님이라고 부르면 “반장이라고 불러달라”고 시정한다. 그리고 52세 연옥 씨는 형틀 목수팀의 여자 반장을 꿈꾼다.

형틀 목수 신연옥 ⓒ황지현

권원영은 4년 차 자재정리·세대청소 노동자다. 학원강사와 자영업, 단체 활동을 하다 42살에 이 일로 넘어왔다. 원영 씨는 2030세대에게 위험하지 않고 안전하게 일하며, 자부심을 갖고 보람을 느끼는 일터를 만들어주고 싶다. 경기도 한 현장에서 작업반장을 맡은 것도, 스스로 롤모델이 돼 여성 관리직 제로 상태를 깨뜨려 보겠다고 수락했다.


정정숙은 26년 차 레미콘 운전기사다. 그보다 앞서 4년간 택시를 몰아 부산 지리가 훤했다. 어느새 칠순, 차가 버텨줄 때까지는 계속 일하고 싶다. 어릴 때는 당돌하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어른이 되고 생활하면서 당당하게 사는 방법을 알았다며, 각자의 자리에서 주눅 들지 말고 당당하게 일하자 한다.

레미콘 운전 노동자 정정숙 ⓒ황지현

하현아는 21년 차 철도차량정비원이다. 코레일 서울 차량 사업소에서 4조 2교대로 근무하며 ITX새마을과 무궁화호 열차를 정비한다. 직원 180명 중 여성은 7명. 남성들 틈에서 살아남아 계속 이 일을 하는 자체로도 자부심을 느끼고, 오래 일해 일터가 편하고 익숙하지만, 현아 씨는 이곳이 평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평등한 일터가 되려면 더 많은 여성이 이곳에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철도차량정비원 하현아 ⓒ황지현

황점순은 25년 차 자동자 시트 제조 공장 노동자다. 35살에 입사했는데, 여자들은 진급 없이 평사원으로 근무하다 평사원으로 퇴직했다. 12시간 맞교대 근무를 하면 얼굴이 아주 노래졌다는데, 주간 2교대 8시간 근무로 바뀐 지가 10년 전쯤이라니, 15년 맞교대를 버틴 것만으로도 점순 씨의 삶은 대단한다. 오래 일하려면 자존심보다는 자부심을 갖고 일해야 한다고, 자존심만 있으면 상처받아서 스스로 그만두기도 한다며,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고 멀리 보면서 오래오래 일했으면 좋겠다는 그이 말은, 아무래도 무수한 밤샘 노동이 만들어냈겠다.


안형선은 5년 차 주택 수리 기사다. 여성 수리 기사가 방문하는 마음 편한 집수리 서비스-라이커스 운영사의 대표 겸 기술 워크숍 강사이기도 하다. 형선 씨는 라이커스 사업으로, 경험이나 요령이 부족해서 하지 못하는 일도 ‘여성이라서 못하는 것 아니냐’며 성별 탓으로 돌리는 세상을 바꾸고자 한다. 사업이 성공하지 않는다 해도 자신들의 발걸음 자체가 세상에 레퍼런스(참고 자료)가 될 거라고 믿는다.


이아진은 5년 차 집 짓는 빌더 목수다. 건축학과 대학생이며 유튜브 채널 크리에이터다. 아진 씨는 주택 공사 현장에서 “못 들지? 앉아 있어”라는 말이 듣기 싫어 근력운동을 해 끝내 40킬로그램 합판을 들었다. 10대 때부터 자기가 걷고 싶은 길을 숙고하고 찾아 나서고 실천해 왔다.


책을 읽고 나면 무어라도 해 봐야겠다는 마음이, 용기가 생겨난다. 더 어린 여자 친구들부터 더 나이 많은 여자들까지, 그리고 더 어린 남자들부터 더 나이 많은 남자들까지 ‘현장’에서 일하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담긴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프롤로그에서 작가가, 그리고 본문에서 안형선 씨가 말한 대로 이들의 삶과 노동이 누군가의 삶과 노동에 레퍼런스가 되어줄 거다.


박수정_르포작가, 『여자, 노동을 말하다』 저자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4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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