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책읽는사회문화재단 독서동아리지원센터가 ‘모두를 위한 독서동아리’ 사업을 진행했다. 독서동아리 경험이 거의 없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책을 읽고 즐겁게 이야기 나누어보자는 취지였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떠오른 칠곡의 시니어들과 작은도서관에서 독서동아리를 한번 해보기로 했다.
경북 칠곡군에 있는 해봄도서관은 경로당이 있는 골목 안에 있다. 지역 특성은 초중고, 지천면사무소, 창고형 공장이 밀집해 있고 노인 인구가 대다수다. 일단 도서관에서 시니어 독서동아리를 한다는 소문부터 내기로 했다. 커다란 종이에 독서동아리 모집 공고를 써서 도서관 앞 골목에 붙였다. 마을회관과 경로당에는 직접 가서 알렸다. 큰길가에는 시니어독서동아리를 한다는 현수막을 크게 내걸었다. 한 달의 모집 기간이 지나 드디어 4월 사전 모임을 했다. 코로나 이후라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왔다는 분들이 많았다.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고, 독서동아리 이름과 모임일을 정했다. 독서동아리 이름은 ‘월독해봄’. 월요일에 만나 해봄도서관에서 독서모임을 한다는 의미다. 모임 일은 매월 두 번째 월요일 7시, 동아리원은 총 열 명이었다.
“그림책이라고? 내 평생 왼손으로 이름 써보긴 처음이다!”
모임 때마다 그림책을 한 권씩 읽고 소감을 나누었다. 그중에서도 『왼손에게』라는 그림책은 모두에게 낯선 경험을 안겨주었다. 오른손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쓰던 내 이름, 왼손으로 한 글자씩 떨면서 쓰다 보니 기분이 이상하다고 한다.
『우리 동네 한의사』 권해진 작가와의 만남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나이 들면 아픈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닌데, 막상 병원 가면 의사와 5분 이상 이야기 나눌 기회조차 없다. 그 의사 선생님과 만나 아픈 곳도 말하고 약해진 마음도 위로받고, 한방차도 한 잔씩 마시면서 일상에서 건강을 지키는 여러 방법도 배웠다. 『우리 동네 한의사』 책은 곁에 두면서 몸과 마음이 아플 때마다 봐야겠다고 한다.
시니어 독서동아리에서 함께 읽고 나눈 책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인생의 역사』 『한국 작가가 읽은 세계문학』이고, 따로 읽고 소개받은 책은 『만화로 보는 결정적 세계사』 『편견』 『일리아스』 『고래』 『팔순 치매 옥자씨』 등이다.
‘꼰대가 되지 말자!’는 목표를 정하고 개인적인 질문, 정치 이야기, 가부장적 발언, 차별적 편 가르는 말과 행동을 금지하기로 약속했다. 모임이 계속될수록 금지하는 약속은 늘어났고 말하기가 불편해졌다고 한다.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말하거나 행동해야 해서 불편하긴 했지만 점점 더 나은 사람이 된다고 느꼈다고 한다.
처음 시작할 때 마음은 가벼웠는데 점점 사람들과 함께하다 보니 마음이 더해져 깊어졌고 이 사람들과 무언가 하고 싶은 것이 자꾸 많아진다고 했다. 혼자 읽는 거라고 생각했던 책을 같이 읽으니까 다른 책도 같이 보게 되고, 계속 보게 된다고 했다. 책을 읽다 보니 할 이야기도 많아졌다고 한다. 또 젊었을 때 읽었던 책을 다시 읽으니 그때와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되고 나이 들어도 좋은 게 있음을 느꼈다고 했다.
소일거리로 작은 도서관을 들락거렸지만 정작 책 읽고 이야기를 나눌 생각은 해보지 못했던 마을의 시니어들, 회차마다 그림책과 책, 계절 간식을 소담하게 나누며 책과 인생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마다 살아온 세월이 길어서인지 아주 많이 달랐다. 하지만 만날수록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이해하며 함께하고 싶은 마음들이 커졌다. 또 독서동아리의 경험이 다양한 관심으로 뻗어간다. 낭독의 경험이 낭독 독서동아리로, 색색의 예쁜 펜으로 서툰 그림을 그려본 경험이 그림 동아리로 싹튼다. 시니어와 함께하면서 힘든 점도 있었지만 더 많은 배움이 남았다. “질문하고 배워라. 그리고 즐겨라.”
현재 해봄도서관에서는 월독해봄에 이어 화독해봄을 진행하고 있다. 매월 두 번째 화요일 7시에 만나서 낭독과 필사를 기본으로 한다. 매달 다양한 활동을 곁들여 하는데 맨발 걷기, 그림 그리기, 블록 만들기, 인문학 강의를 청해서 들었다.
시니어 독서동아리 장소는 도서관, 동네 카페, 북카페, 책방, 공방 어디든 좋다. 하지만 좌식보다는 입식을 권한다. 책은 시작 책만 정하고 모임을 하면서 나눈 이야기를 모아서 다음 책을 정하면 좋다. 함께 정한 책은 책임감을 느끼며 읽는다. 읽어 오기가 힘들다면 모여서 소리 내어 읽는 낭독 모임으로 시작해도 좋다.
모임 시기나 횟수는 주 1회면 3개월, 월 1회면 6개월, 시작과 끝을 정해 시작하고 언제나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게 열린 모임이 좋다. 모집은 현수막과 전단이 필수. 입소문과 SNS로 꾸준하게 알리면 추가 모집은 걱정 없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모임에 대해 궁리를 해야 한다. 여는 그림책을 잘 고르기만 하면 그날은 걱정 없다. 소소하지만 새로운 배움과 기록이 아주 중요하다.
‘도서관으로의 초대 & 환영 파티’로 시작하면 좋다. 도서관 공간도 둘러보고 대출증도 만들고 원하는 책을 찾고 이용하는 방법을 알려주어야 한다. 시니어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도서관은 나와 전혀 별개의 장소이고 내가 가도 되는 곳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한다. 그분들에게 도서관은 생소한 공간이니 도서관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독서동아리를 하면서 월 1회, 주 1회 도서관을 찾아온다면 아마 친숙한 공간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 시니어 독서동아리를 해보니 안부 챙김과 모임에서 간식 챙김, 소소한 재미와 배움을 위한 새로운 활동들이 도움이 되었다. 그림책은 시작으로 좋다. 독서동아리는 품이 많이 드는 일이지만 보람 있고 재미있다. 지역의 노인회관이나 복지관과 연계해 월 1회 도서관 나들이로 시작해 봐도 좋겠다.
김경희_독서운동 활동가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4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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