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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Dec 09. 2024

시간 여행자가 일깨워주는 삶의 가치

고요의 바다에서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 지음 / 강동혁 옮김 / 376쪽 / 16,800원 / 열린책들



작은 책방이지만 오가는 다정한 이들을 떠올리며 공간에 다양한 변화를 주기 위해 노력한다. 서가를 채우는 책의 구성을 달리하는 것만큼이나 자주 마음을 쓰는 일은 매일의 날씨와 계절에 맞는 커피와 차를 준비하는 일이다. 가을과 겨울에는 묵직하고 고소한 원두와 시나몬 향이 진한 차를 준비한다. 요즘 자주 소개하는 음료는 이름도 고운 ‘램프와 소설’이다. “깊은 밤 램프 아래서 소설에 빠져 있는 독자를 상상했습니다.” 차를 소개하는 글을 읽는 내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그래, 겨울은 그런 계절이지. 도톰한 소설과 향긋한 차를 나란히 두고 읽고, 마시기 좋은 계절 말이다.


이 계절에 마시기 좋은 차를 건네는 마음으로 책 한 권을 소개한다. 『고요의 바다에서』는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SF작가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이다.


1912년, 집에서 쫓겨나 먼 나라로 떠나온 상류층 자제인 청년 에드윈은 할 줄 아는 것 없이 방황하다가 캐나다의 작은 섬마을로 떠난다. 1994년, 캠코더를 들고 집 근처 숲을 산책하는 열세 살의 빈센트는 홀로 숲을 거닐며 눈에 들어오는 장면을 캠코더에 담는다. 2195년, 팬데믹이 세상을 휩쓸어 수많은 이의 목숨을 앗아 간 후 지구에서 삶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이들은 달을 포함해 우주 곳곳에 돔 형태의 식민지를 만들어 살아간다. 달 식민지에 살고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 올리브는 북 투어로 지구에 들렀다가 급히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터미널을 가로지른다. 이렇게 각각의 세계에 있는 주인공들은 모두 시공간이 요동치며 뒤섞이는 한순간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2401년, 시간 연구소의 연구자들이 기묘한 순간을 알아차리고 조사를 시작한다. 그리고 개스퍼리는 이 기이한 현상의 수수께끼를 파헤치기 위해 시간 여행을 감행한다. 500년의 시차를 두고 흩어진 것 같던 각각의 사건과 이야기는 개스퍼리의 여행을 통해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되는데….


아주 오랜만에 읽는 디스토피아 소설이었는데 낯설기보다는 익숙했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오랜 시간 우리가 함께 경험한 코로나19와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 장면들이 함께 떠올랐다. 전쟁과 팬데믹 등 재앙과 재난이 반복되는 소설 속 이야기는 지금 나의 삶과도 맞닿아 있었다. 그래서일까.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어려워지거나 미래가 바뀔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눈앞에 있는 한 사람을 살리려 노력하는 개스퍼리의 선택이 내게는 무척이나 의미 있게 다가왔다. 그리고 다양한 시공간을 넘나들며 시간 여행자로 살아온 그가 결국 생의 마지막에 깨달은 가치는 주어진 오늘 하루와 곁에 있는 존재를 향한 사랑이라는 것.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이야기이지만 결코 가볍게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위기를 만났을 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나? 내 삶은 어떻게 기억되길 원하나? 

좋은 책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게는 다양한 질문을 만나게 하는 책이다.


깊은 겨울밤 램프 아래서 이 책에 빠져있을 당신을 그려본다. 시간 여행자의 삶을 함께 상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난 후 돌아와 우리가 만나게 될 이야기가 조금은 뻔하고 익숙할지라도 아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은 ‘지금’ 그리고 ‘곁에 있는 이’의 소중함을 새삼스럽게 발견하기에 맞춤한 듯 좋은 시간이니까. 


김나경_책방 ‘한쪽가게’ 대표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4년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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