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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숙 Oct 17. 2023

우리 언니 오늘이 칠순이래요

그날도 언니 뒤를 쫄쫄 따라 나갔다.

마을 어귀 정자나무까지 따라 가자, 오늘 제삿날이라 친척들도 많이 오시고 맛있는 것도 많이 할 건데 언니 따라가면 먹을 것 없다. 집으로  돌려보냈다. 우리 집은 종갓집이라 제사가 시시때때로 돌아왔다.

그 말을 듣고 집으로 달려왔지만 굳게 닫힌 부엌문 보며 언니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았다. 어머이! 오늘 제삿날 아니야? 왜 작은엄마랑 당숙모도 안 오셨어?   마당에서 길길이 뛰자 방문을 열고 어머니께서 한마디 하셨다. "데리고 가면 좋지만은" 하시더니 방에 들어와서 고구마나 먹으라고 했다.  


중학교 때 수학여행을 다녀온 언니가 그때 당시 시골에서는 볼 수 없는 몇 단으로 된 공주 목걸이를 사 왔다.

검게 탄 목에 분홍생 목걸이를 하고 주름 진 원피스 입고 학교 갔다. 서로서로 만져보며 목에 걸린 목걸이를 만지느라 난리가 났다. 얼마 못 가 목걸이는 와르르 쏟아지고 말았다. 여기저기 작은 구슬이 또르르 굴러갔다. 놀란 친구들은 작은 구슬 하나씩  줍느라 애를 먹었다. 공주 목걸이를 다시 꿰어도 원 상태로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다시 걸고 다녔다.




좋아하던 언니가 내가 고등학교 입학하던 해 학기 초 3월 1일 시집갔다. 화장을 진하게 한 낯선 언니가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형부 옆에 서 있었다. 언니와 형부는 한 동네에서 연애 결혼 했다. 옛날이라 딸이 연애하면 큰 일 난 줄 알았다. 엄마가 머리를 싸매고 누었고 할머니는 담배만 뻐끔뻐끔 피우셨다. 아버지께서 이 사실을 아시고 형부를 만났다. 눈빛이 살아있는 것 보니 딸이 시집가도 굶어 죽지 않겠다 하시며 결혼시켰다.  결혼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갖가지 과자. 나물과 고기, 생선, 전 등 한 상 차려진 잔칫상에  연하고 혀끝에 살살 녹아 부드럽게 넘어가는 갈치맛에 흠뻑 빠졌다. 검은색 코트를 입은 언니는 그날따라 외국 배우처럼 예뻤다. 형부 따라 집을 나서는 언니는 서울로 가기 위해 섬진강으로 나갔다.  부드러운 모래사장을 걷다가 구두에 들어온  모래를 몇 번이고 털어냈다.  나룻배를 타고 서서히 떠나가는 언니를 오래도록 가슴속에 담았다.


몇십 년이  화살처럼 지나간 후에 우리는 지금 같은 건물에서  살고 있다.

친정에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마다 맏언니답게 큰 치마 폯으로 모든 일을 잘도 품어내었다

쫄 땅 망하고 올라온 철부지 동생이 집안 살림도 제대로 못하고 출근하면 빨래도 널어주고 김치도 담가줬다.

여름 철에는 바나나우유 보다 맛있는  콩국수를 해주었다. 그 해 여름 콩국수를 많이 먹은 탓에 살이 통통히 올랐다. 그 사랑으로 입시학원 이십 년이 넘도록 끝까지 잘 다닐 수 있었다. 어린 시절 그토록 따라다니고 싶었던 언니를 이제는 껌딱지가 되어서 같이 살고 있다. 어디를 가도  동생이 언니를 챙겨야 되는데 지금도 여전히 언니가 나를 챙긴다.

과일도 언니가 깎아놓은 것을 날름날름 잘도 먹는다.  이제는 내가 깎아서 드려야지  하면서도 습관이라는 게 참 무서워서 잘 고쳐지지 않는다.

몇 년 전 교통사고로 몸이 불편한 언니지만 지금도 건강한 사람처럼 주변사람들을 챙긴다.




아버지 말씀대로 눈빛이 살아 있는 형부는 부모님께 물려받은 재산 하나 없어도 정말 잘 살아오셨다.

돈을 모으기 위해 젊은 시절 단벌 신사로 보냈고 돼지고기가 먹고 싶을 때는 비게를 사다가 김치 넣고 찌개를 끓여서 먹었다고 한다. 절약한 대가로 삼십 대 초반에 이층으로 된 양옥집을 샀다.

그 집을 사자마자 혼자 사시던 시어머니께서 중풍으로 쓰러지셨다. 병원에서 치료했지만 별다른 차도가 없었다. 그런데 치매가 걸려서   똥, 오줌을 받아내며 어린 자녀 셋을 키웠다.

날마다 숨겨놓은 똥을 찾아서 치우고 삼시세끼 밥 해드리고 힘든 나날이 계속되자 결국 하나님을 찾게 되었다.  언니는 날마다 기도하며 힘을 얻고 지냈다. 결국 시어머님도 삼 년 동안 고생하시다가 교인들 찬송가 소리 들으며 목사님 품에 안겨 천국 가셨다.



역장으로 퇴임한 지 십 년이 훨씬 넘었지만 여전히 지금도 젊은 사람 못지않게 열심히 일하고 계신다.

연세 드신 집안 어르신들에게는 항상 만날 때마다 돈 봉투를 잊지 않고  드리신다.

우리 집에 계신 친정어머님도 자주 찾아뵙고 좋아하는 생선도 자주 사다 주셨다.

특히 게장을 좋아한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자주  외식을 했다.

여전히 주변 사람들 특히 연세 드신 어르신을 뵈면  열과 성의를 다해서 챙기시는 형부, 언니는 정말 멋지시다. 나에게 하나밖에 없는 언니가 오늘 칠순이란다. 부산, 시골 사시는 오빠랑 다 초대했지만 코로나가 심하게 확산 되어 여러 사람 모이는 것 금지했다.  모처럼 형제들과 친 인척들이 모여서 서로 안부 물으며 만찬을 즐겼을 건데  아쉬울 뿐이다. 그래도  백세 되신 친정어머니께서 큰 딸 칠순까지 보셨으니 복중에 복이시다.

이제 다른 사람 챙기는 것보다 두 분이서 남은 인생 서로서로 챙기시며 지금처럼 건강하게 잘 살아가시길 바라요.


언니! 우리 과일 너무 좋아하는데 이제 사과는 내가 깎을게요~~~


2020 년 12월5일


 #언니 칠순 # 형부 # 게장 #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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