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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숙 Dec 16. 2023

마음은 멀어도 가까운 이웃 나라 (첫째 날)

첫날

어린 시절 소풍 갈 때처럼 저녁 내내 잠을 설쳤다.

지금까지 앞으로도 쭉 같이 살아야 할 짝꿍들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모처럼 언니랑 나랑  여행을 가게 되었다.

새벽 여섯 시까지 집 앞에서 만나자고 했지만 좀 더 이른 시간에 준비를 마쳤다.

항상 행동이 느린 저에게 형부가 한마디 하셨다.

우리 처제가 시간을 제대로 지키다니 참말로 장하네!

형부! 저라고 맨날 지각을 한다요 오랜만에 비행기를 타는 날인

그려 그려! 특유의 형부 너털웃음과 함께 새벽공기를 가르며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언니 칠순이 삼 년 전에 지나갔다. 친정어머니가 생존해 계실 때라 친, 인척과 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이기 위해 자녀들이 힘을 썼다. 그런데 하필 코로나 확산세로 7명 이상 모이면 안 되는 시기였다.

자녀들과 함께 조촐하게 식사하고 지나갔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허리, 다리가 튼튼하지 않은 우리 자매들이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건강할 때 다녀오라는 후한 선물을 받았다.

우리나라와 가깝고 현재 기온도 따뜻하고 특별히 우리 나이에는 온천 여행이 최고이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일본이다.

김포공항에 도착해서 우리를 삼박사일동 안 안내해 줄 가이드를 만났다.

사십 대 초반으로 늘씬하고 예쁜 아가씨였다.

새벽부터 김포공항 대합실은 많은 인파로 북적거렸다.

다들 우리처럼 오랜만에 해외로 여행 가는 사람들일까?

아무리 경기가 침체되었다고 해도 공항은 항상 떠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아이돌 가수가 그 시간에 비행기를 탑승하는지 팬들로 더 정신없었다.

가까이서 얼굴 보려는 십 대들 이 소리 지르며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따라다녔다.

모자를 푹 눌러쓴 아이돌 가수는 우리 나이에는 그가 누구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나도 한때 “어니언스”에 미쳐서 꿈에서 만나본적이 있었다.

지금 환호성을 지르며 아이돌을 따라다닌 십 대 청소년들도 때가 되면 엄마, 아빠가 될 테지.




날아오르는 비행기 창문으로 줄지어 서있는 차가 장난감처럼 보이고 건물들이 똑같이 눈 아래로 보였다.

구름 위를 나르는 새가 되어 산과 바다와 들을 지나 두 시간 만에 드디어 일본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다.

기내에서 늦게 나왔더니 몇 바퀴를 돌았는지 우리 가방만 돌고 있었다.

외국 같지 않았지만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오고 가는 것을 보니 일본이 맞긴 맞나 보다.

렌터카가 빨리 도착하지 않아서 한참 동안 기다렸다.  나이 지긋한 렌트 기사 아저씨와 한참 주고받으며 사인하고 난 뒤 오늘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

 첫날 가는 곳은 하네다 공항에서 두 시간 정도 걸리는 “시즈오카현”에 있는 일본 전통 료칸이라고 한다.

한국 가을 날씨처럼 하늘도 푸르고 맑았다. 차창 밖 언덕에는  갈대가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 밑에는 다소 소박한 집들이 줄줄이 서있고 사이사이 논과 밭에는 가을걷이가 끝내서 텅 비어 있었다.  

날씨까지 확인했지만 한국이 추우니 오리털 잠바를 입고 왔다.

그런데 적당하게 신선한 늦가을 날씨를 접하자 잠바가 갑자기 짐스러웠다.




때 늦은 점심으로 우리 일행은 차창 밖 음식점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느덧 달리다 보니 푸른 바다가 펼쳐졌다. 아타미 근처에 무심코 들어간 식당은 너무나 훌륭했다.

가지, 새우, 단 호박, 버섯, 고추 튀김은 입안에 넣자마자 바삭바삭 거리며 제각각의 맛으로 입맛을 홀렸다.

간장에 찍어서 함께 먹는 소바 맛도 그런대로 좋았다. 그런데 우리 일행을 흠뻑 빠지게 했던 것은 음식점에서 바로 보이는 바다였다. 바로 내려가면 손을 담글 수 있는 거리에서 찰싹 거리는 푸른 바다는 끝이 없이 아시무락했다. 창 밑에 피어있는 노란 국화꽃이  바닷물 철석거릴 때마다 같이 흔들리고 있었다.  

따뜻한 마차도 즐기고 흔적도 사진으로 남겼다.     



우리가 가야 할 “아타미 다이칸 소”는 앞으로 이십 분만 달리면 된다고 한다.

해안도로를 달리며  창밖을 볼 때마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높은 곳에 위치한 다이칸 소는  꼬불 꼬불한 길을 한참이나 올라갔다.  

가이드는 지그재그로 핸들을 능숙하게 돌리며 거뜬하게 높은 곳도 올라 챘다.     

드디어 도착했다.  일본에서도 유명한 곳으로 소문난 곳이라 자국민도 많이 이용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외국 관광객도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체크인이 끝나고 방으로 안내한 직원을 따라 들어갔다. 복도를 통해서 가는 길 오른쪽에는

산에서 정원으로 내려오는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왼편에는 넓은 정원과 연못이 있는데 어둑해진 때라 자세히 볼 수가 없었지만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야경이 황홀했다. 창호지로 붙어 놓은 미닫이 문과 다다미로 되어 있는 바닥을 보니 정말 전통 일본식이구나 하는  느낌이 확 들었다.

벌써 우리 짐은 직원들이 우리 방에 가져다 놓았다.

새벽부터 달려온 터라 피곤했다. 먼저 온천을 하고 난 뒤 저녁밥은 일곱 시에 먹기로 했다.

남탕 여탕은 파란 천과 빨간 천으로 구분해 놓았다.

그런데 날마다 남탕과 여탕이 바뀌는 게 헷갈리기도 했지만 그 이유는 나중에 알 수 있었다.

샤워를 마치고 탕 안에 들어서니 알맞은 온도에 몸을 맡기고 노천탕에서 떨어지는 폭포수를 바라보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저녁은 일본식  전통 가이새끼 코스 요리였다.

앙증맞은 접시와 그릇에 몇 점씩 나오는 음식에 갖은 멋을 냈다.

일식은 아름다움으로 먹는다더니 정말 그 말이 맞았다.

배부르게 저녁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발코니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높은 곳에 현대식으로 지어진 호텔 객실의 불빛과 밤바다가 조화를 이루며 빛나고 있었다.

오늘 새벽 다섯 시부터 움직였던 우리 일행은 내일을 위해서 창호지 미닫이 문으로 휘황찬란한 야경을 닫은 채  잠자리에 들었다.   

     

2023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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