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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숙 Jan 06. 2024

우리 동네 곗날

사라진 것들에 대한 옛이야기

 

이맘때 장날이 되면 통장작 같은 태가 박스 채 들어왔다.

"밥 묵고 와서 가릅시다 존 것 산다고 샀는디 뜯어 봐야 알제" 하셨다. "찬이 없어도 여그서 한술 뜹시다잉”  “얼릉 가서  우리 시어매 밥도 챙겨드리고 새끼들 밥 챙겨주고 와야 지라” 하시며 종종걸음을 치고 가셨다. 잠시 뜰 방에 내려놓았던 태 상자가 겨울 햇살에 실실 풀어져 녹기 시작했다.  서로 엉겨 붙은 동태를 떼어 키재기 하며  하나, 둘, 세어가며 가르다가 마지막 한 마리가 남자 서로 양보를 했다. 아이고 새끼들도 많은께 아짐이 그냥 요놈 한 마리 더 가져갔쇼 해도 기어이 부엌칼 가져와서 반으로 뚝 잘다.

 "손도 시럽춘디 우리 정제 가서 불 좀 쬐다 가쇼잉"  하며 고구마 삶았던 잔불을 부삭 앞으로 끌어당겼다.     


옛날에는 구성 계 칠성 계라는 모임이 있었다. 부모님 상이나 결혼식 집안 대사가 있을 때 서로 돕는 역할을 했다. 갑자기 초상이 나면 그분들이 주축이 되어 일을 도와주었다.

삼일장을 치르게 되면 저녁마다 동지 팥죽을 끓여서 상가 지키는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을 대접했다.

결혼식이 있으면  계원 중에 미리 콩나물을 길러 시루 채 머리에 이고 와서 마루에 내려놓았다. 잔발도 없이 쭉 쭉 뻗은 콩나물

몇 개 뽑아서 얹어온 게 잘 길렀다는 표시일 게다.


모내기 철에는 서로 자기 논에 물 대려고 언성이 높아졌던 이웃이었지만 이맘때가 되면 다들 여유가 있었다.

지금은 비닐하우스로 겨울철에도 바쁘게 살아가지만 옛날에는 아침 드시고 햇살 풀어지면 나무 한 짐 해서 쟁여 놓으면 시간적이 여유가 있었다. 설이 돌아오기 전 구성계나 칠성계에서 태, 조기등을 모처럼 박스로 사서 서로  나눠 가졌다.

집 앞 또랑에서는 조기나 태 씻느라 비릿한 냄새가 진동했다. 실로 꿰어서 한쪽 빨랫줄에  삐득삐득 말렸다.

두껍게 썬 무를 고춧가루로 색깔을 입혀서 간을 맞추고 제일 밑에 깔았다. 그 위에  조기나 태를 넣고 바글바글 끓이다가 불을 줄이고 뭉긋하게 오래도록 지져냈다.    


설이 돌아오기 전 동네 사람들이 다 함께 모여 푼푼히 모아둔 동네 기금으로 밥을 지어서 먹는 동네 곗날이 있었다. 주로 그해 마을 이장 집에서 모여 음식장만을  같이 했다.  잔칫날이나 다름없이 온 동네가 시끌벅적했다. 이날은 돼지도 잡아서 팔기도 했다. 내장은 돼지 잡느라 수고한 분들이 된장 풀고 삶아서 미리 막걸리 판이 벌어졌다.

오랜만에 집집마다 짚으로 묶은 돼지고기를 들고 바삐 가는 분들로 골목마다 흥이 났다.  

돼지 등뼈는 마당에다 솥을 걸고 통장작을 넣고 푹 고기 시작했다.

우유 빛 같은 하얀 국물이 우려 져 나오고 뼈 사이사이 붙어 있던 살들도 느물 느물해졌다.

푹 익은 김치 넣고 끓이다가 콩나물도 한소쿠리 넣었다. 마당에서 설설 끓어대는 돼지갈비탕이 온 동네를 축제로 만들었다. 미처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을 모셔오느라 다름 질을 쳤다.

동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오랜만에 갈빗대 사이사이를 뜯느라 다들 입과 손이 바빴다.    


그중에 제일 맛있는 게 가마솥에 누른 누룽지였다.

무, 보리쌀도 섞지 않은 하얀 쌀로만 무쇠 솥으로 지은 밥이라 누룽지가 제법 두껍게 놀짱놀짱하게 눌었다.

밥을 푸고 나서 가장자리부터 놋수저로 살살 긁으면 솥바닥만 한 쌀밥 누룽지가 그대로 일어났다.  

도톰하고 놀짱 놀짱한 누룽지는 우리들 간식거리였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단연코 돼지 오줌보이다. 축구공은커녕 고무공 하나 제대로 없었던 시절이었다.

돼지 잡는 날에는 돼지 오줌보를 서로 차지하려고 짓궂은 남학생들은 그 곁을 떠나지 않았다.  검정 고무신에  새끼줄을 묶고 남학생들은  돼지 오줌보로 축구를 했다.

달려가다 고무신이 벗겨지기도 하고 돼지 오줌보를 힘껏 찻어도 고무신이 대신 허공으로 날았다. 추운 겨울에 땀을 흘리며 이리저리 뛰었지만 그러나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가마니로 가리개를 해놓은 변소 통에 돼지

오줌보가 빠지면 그날 축구경기는 끝이 났다.


어른들은 어른들 대로 푸짐한 밥상에서 배불리 먹고 막걸리 몇 잔으로 흥이 나면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겨울철이라 해가 짧았다. 쇠죽도 쑤어야 하고 바쁜데 아직도 술판에 빠져 있는 아버지들이 많았다. “니그 아부지는 뭐흐고 있다냐 빨리 가서 모시고 와라잉”  엄마 심부름을 간 아이들도 중간에서 친구들과 노느라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아새끼도 심바람 시켰드니 오도 가도 안 하고 뭣흐고 있다냐” 하고 언성이 높아졌다. 참말로 어지간히 마셨승께 때가 되면 인자 집에 와서 쇠죽도 쑤고 집단속해야지 지금까징 뭐흐고 있다요. 어둑어둑 해진 골목에서 서로 아웅다웅 소리가 들렸다.


동네 곗날이 꼭 먹고 끝나는 모임은 아니었다.

한 해 동안  동네 궂은 일과 좋은 일을 앞장서서 해 왔던 이장님의 노고를 치하해 주는 날이었다.  다시 새해 새 일꾼 뽑는 마을 이장, 각반 반장선거가 있날이기도 했다.  뽑히신 반장님께서 새해에는 농사정보가 빼곡히 적혀 있는 한 장 자리 달력을  나누어 주었다.

바쁜 농사철에도 면에서 전달받은 사항을 이장님께 전해 듣고  반장님께 전하면  집집마다 다니시며 전달해 주셨다. 이 귀한 일을 선거하는 날이 동네 곗날이었다. 다음 해 농사일이나 동네 발전을 위해서 서로 의논하고 화합을 다지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 덕분에 아이들도  배불리 흰쌀밥에 고깃국 먹고 하루종일 돼지 오줌보로 하루가 즐거웠던 날이었다.  지금은 사라진 옛날 향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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