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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숙 Jul 23. 2024

김치가 짜서 남편과 싸웠다


장마가 길어지자  열무 네 단 얼갈이 네 단을 사서 언니랑  함께  감치를 담그기로 했다.

 일하러 간 사이에 열무가 도착했다는 문자가 떴다.

일 마치고 집에 와보니 팔 킬로나 되는 열무를 다리도 아픈 언니가 다듬고 소금에 절여서 씻어 놓았다.

급히 목장 모임을 가야 하는데 옷도 벗지 않고 앞치마만 두르고 3층에 살고 있는 언니집으로 내려갔다.

언니는 더위도 많이 타고 땀을 많이 흘리는 편이다. 얼굴에 땀을 자주 닦느라 홍당무가 되어있었다.

벌써 마른 고추도 불려서 믹서기에 갈아놓고 밀가루 풀도 멀 금하게 끓여서 식혀 놓았다.

얼린 마늘과 생강이 아직 녹지 않아 칼로 대충 썰어주고 파, 양파를 썰었다.

새우젓, 멸치젓, 매실 진액과 설탕 약간 넣고 고춧가루와 갈아놓은 고추로 만든 지밥 넣어서 약간 무른 듯 양념을 만들었다.



 열무김치는 자칫 풋내가 나기 쉽다. 그래서 무른 양념을 열무에 대충 한 켜씩 한 켜씩 넣어 준 다음 살살 버무려 주면 양이 많아도 조금 수월하게 담을 수 있다. 전라도는 양념이 조금 센 편이다. 보기만 해도 밥 한 공기 떠서 그 자리에서 김치한가닥 걸쳐서 먹고 싶었다. 언니는 우리 집과 자녀들, 붓글씨 학원 원장님 몫까지 챙겼다. 딸이 출근하는 길이라  먹음직스럽게 담은 열무김치를 다음에 와서 가져간다고 그냥 두고 갔다.

칠 동안 김치 냉장고에 넣어 두고 볼 때마다 갈등이 생겼다.


내가 섬기고 있는 할머니에게 가져다 드릴까? 요즘 김치가 떨어져서 식사가 마땅치 않아서 좀 마음에 걸린 터였다. 잘 나오지 않은 목장 목원이 다음 주에 오랜만에 출석한다고 했으니 그를 줄까?

그런데  바쁜데 언제 또 담을까? 자식을 줘야지 하는 마음에 다시 문을 닫았다.  

작은 선심도 마음먹은 대로 베풀지 못하고 얼마 되지 않는 열무김치로 일주일 동안 갈등 했다.

언니에게 이 말을 했더니 마음먹었을 때 실천해야지 생각만 하면 뭐 하냐? 김치도 없는 할머니께 갖다 드려라.

또 우리는 담가서 자녀들은 다음에 주면 되지 연세 드신 할머니들은 김치가 최고인데.      

역시 언니는 언니다. 언니는 힘들게 담근 김치를 비닐에 조금씩 담아서  생각나는 사람들에게 싸주기를 좋아한다. 식혜도 식은 밥만 남으면 옛날 보온밥솥에 엿기름과 함께 주물러서 만든다. 빈 펫트 병에 담아서 얼려 두었다가 나누어 주기를 좋아한다. 자매사이인데도 서로 이렇게 다르다.

 



그 말 듣고 바로 이튿날 할머니 댁에 가져다 드렸다. 저녁 드시면서 열무김치 한 접시에 밥 한 공기를 다 드시고 나서 전라도 김치는 역시 맛있다고 몇 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마음이 뿌듯했다.

일주일 간격으로 또 배추김치를 담갔다. 마지막 간은 항상 내가 맛을 보고  결정한다.

배추 간이 골고루 안 돼서 소금과 새우젓을 좀 더 넣은 게 화근이었다.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배추김치와 오이냉국으로 밥을 차렸다.

내심 어제 할머니께 들은 칭찬도 있고 해서  할머니께서 나보고 요즘 보기 드문 우량주 부래

요즘 김치를 담가 먹는 집이 별로 없다는데 하며  우쭐댔다.

남편은 식성도 좋아 무엇이든 잘 먹는다.

그리고 항상 자네가 해준 음식이 최고라고 엄지 척을 한다.

요즘 오이냉국에 흠뻑 빠진 남편이

  '저녁에 먹은 오이냉국 맛이 아니네'

그 말끝에  건더기가 부족해서 오이를 다시 썰어 넣었으니 좀 맛이 다르지? 했더니  많이 달라.

김치 너무 짜고 배추가  꼬들꼬들한 맛이 없고 싱거워서 맛없다고 한다.

어쩌나! 내가 마지막 간 보고  소금이랑 새우젓을 넣었는데 언니집도 난리 나겠네. 계속해서 감자볶음도 짜고 다 짜다는 말에 나도 발끈했다.   김치가 짜면 고칠 길이 없다 그런데 남편까지 계속 "쓰다 맛없다" 하는 잔소리에 속이 팍 상했다. "어지간히 하고 그냥 먹지!" 화를 내고  말았다. 그랬더니 남편도 얼마나 반찬 투정을 했나 하더니 숟가락을 놓고  화를 냈다.

사실 남편은  웬만해선 반찬 투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잘 먹어주는 편이다.




 그런데 요즘 나이가 들어서일까? 요즘 간 맞추는 게 들쑥 날쭉이다. 사실  감지하고 있었는데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다. 그런데 남편이 건든 것이다.

 우리 집 김치만 돼도 신경이 덜 쓰이는데  언니네 집까지 망쳤으니 내심 걱정이 된 터였다.

그래서   “괜찮아 먹을만해” 그 말을 들어도 마음이 편치 않을 판국이었다.

그런데 모든 음식이 짜다는 말에 나도 발끈했다. 

남편도 먹던 밥을 남기고 자기 방으로 가버렸다.

다음날 약간 통통하면서도 매끈한 무 두 개를 샀다. 한 개는 언니 주고 한 개는  감자 채칼로 껍질을 득 득 벗기고 나서  나박나박 썰었다. 역시 가을 무가 달고 만나다. 여름 무는 조금 싱겁고 무른 편이다. 배추도 김장 배추가 꼬실꼬실하고 달달하니 맛있다.

여름배추는 좀 무른 편이라 싱겁다.

그래도 배추김치 사이사이 넣고 물어주었다. 짠기가 조금은 빠지겠지 기대하면서  

나이 들어가면서도 여전히 우리는 작은 일에도 투닥투닥거린다. 그러다가 언제 그랬나 아무 일 없는 듯 또다시 식탁에 앉는다.

내일은 또 무슨 일로 투닥거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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