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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숙 Aug 06. 2024

언니가 저를 언니라고 부르네요

배고픈 시절을 살아내신 우리 오빠! 언니들!

아침부터  푹푹 찌는 날씨에

잠시 걸어도 땀이 줄줄 흐른다.

콧대도 적당히 높고 얼굴도 갸름하니 피부도 하얗다.

머리숱도 적당하고 희끗희끗 흰머리가 더 멋스러운  보호자께서 상기된 얼굴로 맞이한다.

어제 가동되던 에어컨이 제대로 작동이 안 돼서 헝클어진 머리가 땀으로 젖었다.

선풍기 바람도 싫어하던 분인데

어지간히 더운 날씨인지 아침부터 에어컨과 씨름하고 있다.

치매 걸린 아내는 우두커니 앉자 있고 혼자서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다.

치매 어르신은 나를 보더니 나이가 적은데도 "언니! 왔어 여기 와서 앉자" 하며 소파를 두들겼다.

치매 어르신은  아직 젊다면 젊은  칠십 대 초반이라 보호자와 합의하고 언니라고 부른다.




얼마 전 유방암 수술했다.

다행히 빨리 발견되어서  항암 치료안 해도 돼서 한시름 놓았다.

그런데 작년에도 다리에 벌레 물린 상처 딱지를 수시로 떼어내서 작은 상처가 큰 흉터로 남았다.

날씨도 덥고 습한 데다가 가려우니 시간 나면 수술 부위 상처를 긁고 딱지를 떼어내서 보호자가 힘들어한다.

긁지 않게 하려고 브래지어로 꽉 조여 놓으니 대상자 언니는  상처를 더 긁어댄다.

그때마다 보호자의 주의사항이 줄줄이 나오지만 그때뿐이다.

더구나 요즘 같은 폭염에 땀까지 흐르니 언니도 참을 수가 없을 터이다.




기계에 대한 문외한이었지만 혼자서 애쓰시는 모습이 안타까워

할 수 없이 리모컨을 붙들었다.

잠깐 가동되다가 C1표시와 함께 실외기 코드 확인하라는 음성이 나왔다.

코드가 빠졌는지 소파를 들어냈지만 별문제 없다. 옥상 실외기도 뜨거운 햇볕아래

녹아내릴 듯 열을 품고 있다.

다행히 에어컨 옆에 A/S  명함이

붙어있었다. 요즘 전화해도  상담원이 받지 않고 녹음된 목소리로 원하는 제품을 터치하라는 음성 나온다.

 챗봇이 나와서 묻는 난에 터치를 해야 한다.

갈수록 연세 드신 분들은 가전제품이 고장 나도 직접 찾아가기도 어렵고 핸드폰으로 더더구나 힘들 것 같다.

에어컨 화면에 뜬 CI 표시는

차단기를 한번 내리고 다시 가동하라고 한다.

시키는 대로 했더니 실외기도 꺼지지 않고 실내 온도가 내려가며 시원해지기 시작했다.




팔십이 가까운 보호자가 치매 아내를 간병하는 게 쉽지 않다.

치매 오 등급이니 주간보호센터나 재가도 오일 정도 이용하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기관보다 본인이 훨씬  아내를 잘 돌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툭하면 집을 나가 길거리를 배회하다 찾아오는 날도 많다.

약도 한꺼번에 먹거나 약은 빼놓고 물만 마실 때도 있다.

요즘 유방암 수술까지 했으니 약이 옛날 노트북 가방 크기에 가득 찼다.

약도 수시로 먹어서 열쇠를 채워놓고 시간 맞추어 주는데 보호자도 잊어버릴 때가 있다.




비누도 초콜릿으로 아는지 가끔 먹을 때도 있다. 음식까지 신경 써야 하는데

굳이 보호자가 하려고 하는 건

아내가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면 무시당할 거라는 생각이 많아서다.

설득도 안 돼서 일주일에 두 번씩  도와드리고 있다. 그동안 음식은 혼자서 잘해 드셨다. 치매어르신에게 필요한 인지 활동과 신체 활동, 감각활동, 음악활동만 시간을 분배해서 같이  놀았다.

요즘 유방암 수술 후라 음식에 신경을 써야 해서 오이냉국과 호박볶음 가지무침

닭가슴살 야채 볶음을 했다.

감각 활동으로 요리를 마치고 난 뒤  퍼즐 맞추기를 했다.


퍼즐 조각과 퍼즐판에도 숫자를 똑같이 써두었다.

같은 숫자로  맞추기만 하면 그림이 완성된다.

그러나 언니는 그림 앞 뒤를 모른다.

같은 숫자에만 맞추는 것도 어쩌면 대단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욕심이 난다.

똑같이 그림을 맞추어야만 되는 것처럼 나는 계속 이야기한다.

언니! 뒤집어 주세요

조금만 돌려주세요.

코를 똑바로! 눈을 똑바로! 맞추어보세요. 잘했어요! 너무 잘했어요!

소리 지르고 나면 목이 아프다.


그래도 몇 번이나 이야기를 해도 거꾸로 퍼즐을 올려놓는다.

사람 눈, 코도 맞추지 못한다.

그래도 시간 나면 퍼즐 맞추기와

색깔 칠하기를 한다.

그 시간을 싫어하지 않고 열심히 하는 언니를 보며 보람도 있지만

어쩔 땐 화가 나기도 한다.

간단한 눈, 코도 못 맞추고 거꾸로 놓을 때,

뒤집으라고 해도 금방 잊어버릴 때,

숫자 4번에만 노란색을  칠해야 하는데 5번 6번까지 금방 칠해버릴 때,

한눈팔 수없이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


그림에 숫자별로 색칠하기 하는데 계속 겨드랑이가 아프다고 한다.

옷을 벗겨보니 수술한 자국이 꽉 조여서 덧이 났다.

보호자님! 한 시간만 나시만 입히면  안 될까요?

"또 긁어서 더 상처 날 건데요".

아니에요 꽉 조여서 더 아프니 자주 만지는 것 같아요.

날씨도 더우니 통풍되도록 해주세요.

겨우 보호자를 설득하고

브래지어를 벗기고 나시만 입혔다.




딸 이름은 모르고 남편성함  아들 이름으로 말할 때도 있지만 지금까지 아들 이름은 틀린 적이 없다.

고향은 알아도 현재 살고 있는 곳은 모른다.

언니가 꽃다운 나이였을 때

불렀던 총각 선생님, 동백 아가씨 부를 때는 눈을 지그시 감고 십 대로 돌아간다.

보호자가 "좋아했던 총각선생님 있었어"? 하고 묻자 "그럼 있었지" 하며 웃는다.

장녀로 태어나 동생들 키우고

소 꼴 베려 다니며 집안일을 거들다 시집왔다. 심성이 착하고 불만이 있어도

새기고 말이 없었다고 한다.




보호자님은 하루빨리 치매약이 나와서 치료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래서 외국여행을 함께 가고 싶어 한다.

치매환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잘못하면 계속 나무란다. 그러고 나서 미안해서 더 잘해준다. 날마다 이 일을 반복하고 있다.

보호자도 점점 우울하고 의욕이 없다.

겨우 겨우 힘을 내고 있다.

기관을  더 적극적으로 이용하면 좋을 텐데

본인이 돌보는 게 훨씬 잘한다고 생각한다.

수술 후라 음식도 신경 써야 하는데 말끝마다 무슨 재미가 있어서 시장을 자주 보러 가겠느냐고 한다.




점점 보호자도 우울과 무기력이 깊어가고 있다. 자녀들에게는 짐을 지우지 않고

본인이  감당하신다고 한다.

배고픈 시대를 살아왔던 우리 언니 오빠들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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