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미숙 Nov 18. 2024

마지막 잎새

희망과 사랑을 전해주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


우리 이안이 아침을 함께 보내는 날이다.

엄마, 아빠 새벽 출근길에 일어나 칭얼거린 건 아닌지 발걸음이 바쁘다. 아니나 다를까 벌써 일어나서 엄마 다리를 잡고 다닌다. 이안아! 할머니 왔다 불렀지만 쳐다보더니 이내 엄마 치마폭으로 들어간다. 며느리가 출근하기 전 품에 안고 엄마 일하러 갈 테니 할머니랑 아침밥 맛있게 먹고 유아원에 다녀와! 그럼 퇴근하고 엄마랑 아빠가 이안이 데리려 갈게.

알아듣는지 이내 떨어져서 엄마에게

빠이 빠이한다.




요즘 놀이터에서 미끄럼, 시소 타는 걸 좋아한다. 자연에 관심이 많아서 주변에 떨어진 단풍잎도 줍고 돌멩이도 주어서 다.  

그래서 유아원 데려다 주기 전 놀이터에서 이십 분정도 놀게 하고 싶다.

얼른 옷을 입히려는데 기저귀가 빵빵하고 냄새가 난다.

기저귀에도 은행잎처럼 노랗게 물이 들었다.

급히 갈아주고 씻어 주었더니 기분이 좋은지 거울보며 활짝 웃는다. 오늘은 알록달록 물든 단풍잎을 주어서 이안이가 보는 새싹 큐티인 책갈피에 끼워두자. 찬바람이 부는데도 유모차 타지 않고 물통과 턱받이가 든 가방을 기어이 끌고 단지를 걸어간다.



낙엽이 쌓인 곳을 보자마자 조그만 발로 밟고 다닌다. 벌써 우리 손녀딸은 “구르몽”을 알고 있을까?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듣더니 손뼉 치며 웃는다. 단풍잎 하나 들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주저리 주저리하고 입맞춤하듯 코와 마주댄다.

단풍잎과 함께 우리 손녀딸도 하루하루 걸작을 만들어 낸다.

옛날 할머니들이 손자, 손녀에게  머리를 쓰다듬으며 “먹고, 싸고, 잘 자라”는 말을 자주 했다.

오늘도 이안이 기저귀를 갈아 채우며 먹고 싸고 잘 자라는 말이 노래처럼 나왔다.

기저귀를 새로 갈아주는 개수가 많아진 만큼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손녀딸이다.

          


며칠 전 화가들이 모여 사는  1900년대 가난한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다시 읽었다. 예술가로 활동하는

존 시와 수,  베어먼 이야기로  유명한 “마지막 잎새”이다.

젊은 화가 ‘존 시’는 폐렴에 걸려 병상에 누워 창문 밖 담쟁이만 바라보며 실의에 빠져있다.

친구이자 룸메이트인 ‘수’는 담쟁이 잎만 바라보며 절망에 빠진 존 시를 돌본다.

담쟁이 잎이 다 떨어지면 자기도 죽을 것이라는 친구에게 소망을 주기 위해 애를 쓴다.

아래층에 살고 있는 무명 노화가 베어먼은 대작을 남길 거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고 다닌다. 그러나 윗 층에 사는 ’ 존 시‘가 떨어지는 단풍을 자기 생명과 연관 지어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말을 수를 통해 듣게 된다.



간 밤에 비바람이 몹시 불었다.

존 시는 이제 마지막 남은 잎새를 다 떨구었을 거라는 생각에 친구 수에게 커튼을 열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런데  밤새 비바람에도 그대로 담쟁이 잎이 담벼락에 붙어 있다. 마지막 달려있는 잎새를 보며 존 시는 다시 살아갈 희망을 품는다.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반전으로 비바람이 불던 날 아래층 무명화가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마지막 잎새’를 그린 것이다. 언젠가는 꼭  걸작을 그리겠다는 베어먼 희생을 통해서 사람을 살리는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을 남기고 폐렴에 걸려서 죽는다.

희망을 주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숨겨 있다.




어제는 교회 집사님들과 함께 시흥 물왕리저수지  맛집을 찾았다.

단풍이 곱게 물들어있는 산자락에 옛날 대갓집처럼 단청이 높이 솟은 기와집들이 곳곳에  들어서있다.

여봐라! 하면 대문을 열고 마당쇠라도 나올 것 같은 기와집이다. 마당쇠 대신 사장님 같으신 분이 우리들의 애마를 인도해 준다.

이름이 예쁜 다래정식을 주문하고 정갈하게 차린 음식들을 차례로 맛보았다.

저수지 저편에도 붉게 타오르는 단풍이 솜처럼 몽글거린 구름과 이야기하듯 흘러간다.

사십 대부터 육십 대 끝자락까지 살아온 세월로 울긋불긋 물들인 우리 집사님들 얼굴이 곱디곱다.

곱디곱게 물든 각자 다른 색깔로 생명력이 끈질긴 담쟁이처럼 “마지막 잎새”를 찍었다.

나이 든 베어먼 화가 할아버지처럼 누군가에게 희생과 생명을 주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 사랑 # 마지막 잎새 # 기와집 # 단풍 # 물왕리 # 기와집 # 구름  # 희생 # 생명

작가의 이전글 새벽 마을버스에서 만난 사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