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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숙 Nov 30. 2024

올해도 김장했어요

할까 말까 고민하다 김장 담갔더니 행복합니다.

칠십 가까이 살아오면서 가장

무더운 여름을 냈다.

처서 무렵 배추, 무를 파종한다.

처서가 지나고 10월이 와도

여름 날씨처럼 더웠다.

또 추석 오기 전  물 폭탄 같은 장대비에 자라나던 배추가 사정없이 무너져 내렸다.

올 추석에는 배추 한 포기가 이 만원 가까이 되어 금치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때부터 매스컴에서는 배추 값으로 연일 도배가 되었다

올해 김장을 어떻게 해야 하나?

언니는 그때마다 또다시 씨 뿌리면 어지간이 안 크겠냐? 기다려 보자 비 피해가 없었던 지역도 있으니.

진짜 언니 말대로 김장철에는 배추가 풍작이었다.

가격도 적당하게 유통이 되고 있다.

우리는 이 십여 년 동안 괴산에서 절임배추를 주문해서 김장을 담고 있다.

올해 시중보다 다소 비싼 가격이지만  단골이라는 인연으로 그대로 주문했다.

여름철이 되면 가끔 옥수수도 보내줘서  맛있게 먹었는데 어찌 몇 푼에 다른 곳에서 주문할 수 있겠는가?   




김장 담글 준비를 하려니 벌써부터 마음이 힘들다.

지난여름에 사 두었던 마늘 두 접도 까야했다.

다행히 남편이 쉬는 날 마늘은 물에 담그고 까기 쉽게 대충 껍질을 제거해 주었다.

다 깐 마늘도 남편이 시장 방앗간에 가서 갈아왔다. 필요한 것까지 사가지고 오느라 숨을 헐떡이며 현관에 쏟아놓았다. 김장하다 괜히 우리 부부 몸살 나서 몸져누운 것 아닐까? 걱정되었다.

몇 칠전부터 김치 냉장고, 다용도실까지 정리하고 나니 벌써부터 허리가 아프다.

내년에는 김장 안 하고 사 먹어야 될까 봐 했더니 남편도 그러자고 한다.

작년에도 김장하지 말고 사 먹자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마늘 철이 되니 마늘사고 추석 전에 언니에게 부탁해서 아는 지인에게 태양초 고춧가루도 주문했다.

몸이 허락하는 한 그래도 김장은 해야지 하는 마음이 있다.


  



며느리 친정은 직접 배추 농사를 지어서

김장 한다.

올해도 이백포기정도 심었다고 한다.

뽑아서 실어오는 일은 밖 같 사돈이 수고한다.

다듬고  절이는 일은 사돈 할머님과 안 사돈, 고모들이 모여서 하는 모습이 카톡 사진으로 올라왔다.

며느리와 아들은 십팔 개월 된 손녀딸을 데리고 갔다.

마당에 소금물을 먹고 있는 배추를 손녀딸은 집어서 흔들고 신나게 놀고 있다.

급기야 누가 잠깐 벗어놓은 분홍색 고무장갑을 들고 냅다 뛰더니 한쪽에서 끼느라 낑낑대고 있다.

며느리는 딸 돌보느라 김치 담는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아들은 김장 담는 축에는 끼지 못하고 장인어른께서 개집 수리하는 걸 도와주었다고 한다.  

작년에도 김치 한통 보내주셔서 잘 먹었는데 올해 또 한통을 보내주셨다.

도토리 가루랑 고구마까지.

올해 구십 세 되신 할머니께서 배추 농사도 짓고 건강하게 노후를 보내고 계신다.

구십 세 되신 사돈 할머니께서 우리 집까지 김치를 신경 써주시니 무엇으로 갚을까?     

 

(며느리 친정 김장하는 날 구십 세 되신 사돈 할머니께서 직접 나서서 간하고 계신다)




이십 킬로 네 박스 주문했다가 세 박스만 하기로 했다.

일을 하고 있는 나 때문에 언니가 우리 집 김장 속 재료를 준비하느라 바빴다.

명태 대가리, 청각 생새우는 미리 사다 주었다.

김장 전날 언니에게 아는 집인데 전화로 주문하자고 했다.

그랬더니 무슨 소리냐 물건 직접 보고  골라야지  기어이 깡시장으로 나갔다.

굴, 대구 매운탕에 넣은 미더덕 바지락, 미나리, 무, 갓, 파, 청무까지 푸짐하게

주문하고 왔다.

그런데 절임배추가 세 박스가 아닌 네 박스가 도착했다.

세 박스만 보내라고 다시 전화드렸는데 주문량이 많을 때다 보니 깜박했나 보다.  

김치냉장고에 이미 동치미 두통이 자리 잡고 있는데 김장 김치를 어디에 보관할까?

주문한 야채도 같이 도착했다. 아들 며느리도 다행히 수업이 없는 날이라 야채 다듬기로

동원이 되었다. 일 마치고 와보니 야채는 다 씻어서 썰어 놓았다.

찹쌀 풀 끓이고  명태 대가리, 표고버섯, 양파, 대파, 멸치, 무 넣고 육수도 끓여놓았다,

무 채까지 썰고  완벽하게 김치 담그는 준비를 다 해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김장하는 날

아들 며느리는 교회 전도사님 결혼식 참석하고 그 빈자리를 딸이 와서 함께 했다.

굴을 씻으라고 했더니 빨래 빤 것처럼 열심히 물로 헹구고 있다.

이때 또 잔소리가 나간다.

굴은 소금물로 살살 씻다가 굴 껍데기 골라내고 세 번 정도 씻으면 된다고 일러주었다.

해년마다 남편은 양념 버물리기로 베테랑이 되었다.

옛날 양조장하면서 술밥 비비던 실력이 지금까지 유용하게  쓰임 받고 있다.

겨드랑이에 염증이 생겨 병원에서 째고 열바늘 가까이 꿰매었다.

 나도 모르게 어머나! 어쩌지 김치 양념 누가 버물리나 걱정했다.

상대방의 아픔보다 자기 손톱 밑에 낀 가시가 더 아프다는 옛말이 하나도 그르지 않다.

다행히 남편은 염증 짜고 나니 열이 오른 것도 멈추었다.

 아무 지장 없 잘 도와주었다.

무채에 고춧가루를 먼저 입혔다,

육수와 생새우, 새우젓, 멸치젓, 마늘, 생강, 청각을 넣고 김치 양념을 버물렸다.

고춧가루 색깔도 선명하고 점점 갈수록 양념이 잘 버무려졌다.

마지막으로 매실 진액도 넣어서 배추 속 잎 한쪽 찢어서 양념 싸서 먹어보니 간이 딱 맞아떨어졌다.

(언니 집 김장 하는 날 중학교 이학년 손녀딸이 김치 속을 넣고 있다)




언니와 딸이 김치 속을 넣었다. 잔 심부름은 남편과 내 몫이다.

통 가져와라, 배추가 떨어져 간다, 칼 가지고 와서 이 배추는 한 번 더 질러라,

소매가 내려가니 고무장갑 좀 올려줘 엄마!

중간중간 무도 넣어야 하는데 대충 버무려서 양쪽으로 갈라놓아라

다 찬 김치 통은 배추 우거지로 덮고 굵은소금 쳐야 한다.

아이고!  어지간히 불러

원래 김장하는 날은 주인이 엉덩이 부칠시간이 없다.

왁자지껄하게 서로 주고받으며 웃다 보니 벌써 김장을 다 마쳤다.           

언니는 다섯 박스  했는데 여기저기 나눔 하다 보니 언니네 김치 냉장고가 넉넉했다.

여름 되면 서로 같이 꺼내 먹기로 하고, 옥상에 있는 김치 냉장고에 두통은 보관했다.

 



점심에 먹을 수육도 넉넉하게 삶고 대구, 바지락, 미더덕 넣어서 매운탕도 시원하게 끓였다.

오랜만에 형부도 우리 집에 올라오셔서 점심을 맛있게 드셨다.

사람 사는 게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행복도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넓은 집, 좋은 차, 늘 근심 없는 하루하루

그러나 가족이 모여 김장하는 날도 행복하다.

오늘 나누어 줄 게 있으면 부자가 아닐까?  

부부목장, 여자 목장, 아들 친구, 치매 걸린 어르신 댁,  불가리스만 하루에 열여섯 병을

마시고 사는 할아버지 때문에 늘 하소연이 많으신 어르신 댁

일회용 비닐봉지 뜯어서 이 집 저 집 넣고 나니 굴 넣은 김치 한통이 바닥이 났다.   

아들, 딸도 한통씩  나누어 주었다.

 

       



김장 다 마치고 밥을 먹으면서 시누이가 된 딸이 한 마디 했다.

엄마! 시집 김장하는데 며느리가 결혼식 가도 괜찮아?

가도 되지 더구나 이제 십팔 개월 된 손녀딸이 오면 김장이나 할 수 있겠나?

우리 엄마 너그럽네

뭐가 너그러워 어제 자기 할 일 다 해 놓고 갔는데

그리고 옛날 너희 할머니도  김장할 때  그 옆에 오지 못하게 했다.

아이들 키울 때 에미가 손이 매우면 기저귀 갈 때 엉덩이 맵다고

어라! 어라! 매웁다. 어서 들어가라!  어서 들어가!  

늘 같은 날 꼭 시어머니 생각이 난다.

김장하는 과정이 힘들어도 흰 눈이 쌓인 것만큼 가득 담긴 김치통을 보니  뿌듯함도 한가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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