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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권미숙
Dec 03. 2024
눈 내리는 날
우리 동네 사라진 풍경들
(사진 페이스 북에서 퍼
옴
)
기와집은 드문 드문 보였다.
노란 지붕을
뒤집어
쓴
초가집이 조개껍질
엎어놓은 것처럼 옹기종기
모였
다.
우리 고향 고달리
.
고달픈 동네라고
친구들이
놀려도
우리 동네가 좋다.
밤늦도록
냇물
흐르는 소리가
노래처럼 들렸다.
이른 봄
보리밭
매고 돌아오는 엄마 옆구리에는 독새 풀 한아름 담겨왔다.
나는 그 풀냄새가 좋았다.
뒤꼍 정제에서 쇠죽 끓이는 냄새도 좋았다.
솔갱이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소리
도 좋고
냄새
도
좋았다.
엄마는 추운 겨울이 되면 수건 한 장 머리에 쓰고 식구들 세숫물부터 데
웠
다.
밤새 흰 눈이 소리 없이 내렸다.
어쩌다
학교를 제일 먼저 가게 되었다.
마치 목화솜을 깔아놓은 것처럼
눈 속에 길이 파묻혔다.
아무도 밟지 않는 순백의 길을 뽀드득뽀드득 소리 내며 발자국을 남겼다.
논고개를 지나 폭 올라간 고개에 이르렀다.
눈을
가득히
이고
있는 소나무 위에 푸드덕 꿩이 날았다.
온통 하얀색으로 뒤덮인 산에
장끼가
울긋불긋한 날개로
소나무 가지를
치며 오르자 흰 눈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발이 흰 눈 속에 푹
빠져도
호주머니 속에 구운 돌이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고등학
교 일 학년
겨울방학
시작되는 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영화를 보았다.
남북
전쟁의 비극은 뒷전이고 남자다운
"
클라크 케이블
"
에 온통 마음을 뺏
겼
다.
극장을 나서자 벌써 어두워진 하늘에서는 눈송이가 하나 둘 떨어지고 있었다.
희숙이 언니가 소매를 끌어당겼다.
우리 집으로 가자
아니 눈 오는데 우리
"고달리"로가자
희숙이 언니와 나는 한 살 차이다. 부산으로 이사 간 영미 언니도 한 살 차이
다.
나이가 같은
홍택이 오빠
는 나보다 나흘 생일이 빠르
다.
나보다
한 살 적은 영선이도 있다.
사촌, 육촌 동생들이 줄줄이 있
다.
우리는 다 같이 한 울타리에서 살았다.
부엌문만 열면 우리 집 마당이었다.
희숙이 언니 영미언니 셋이서 눈만 뜨면 붙어서 살았다.
우리 집 넓은 마당에서 놀다가 상할머니에게 간짓대로 쫓겨나기도 했다
니 그 집은 방이 없냐? 말래가 없냐? 간짓대를 흔들면
나도 같이 쫓겨나갔다.
학교 다닐 때가 되자 나도
언니들을 따라갔다.
뒤따라온 엄마가 교장선생님께
'
나이가 적은디 같이 보내면 안 되겠지라
'
하자
'
뭣이 어쩐다요 그냥 입학시켜도 되지라
'
그래서
원서도 없이
입학했다.
누가 나를 건들기만 하면
언니들이
홍길동처럼 동쪽에서 서쪽에서 나타
났
다.
언니들이 읍내로 부산으로 이사를 갔다.
나만 종갓집 딸이라 고향을 벗어나지 못했다.
읍내 사는 희숙이 언니랑 중학교 때 다시 만났다.
그 언니와 같이 영화를 보고 나온 터였다.
우리는 오버 깃을 세우고 눈을 맞으며 신작로를 걸었다.
오지리에 다다르니 캄캄해진
밤
하늘에서
흰 눈이 펑펑 더 쏟아졌다.
섬진강둑에는 하얗게 내린 눈이 마른풀잎
을
이불
처럼 덮고 있
었다.
마른 풀잎에 쌓인 눈이 불빛
이 되어 둑을 걸어왔
다.
이제 섬진강인데 사공 아저씨가
움막에서 나오지 않는다.
읍내 당숙모 집이나 아버지집으로 가지 않았을까 지레 짐작했을 것이다.
언니와 나는 조심스레 줄배를 잡아당겼다.
얼었을까?
배가 움직이지 않았다.
둘이 힘을 모아 줄을 힘껏
당기자 나룻배 앞머리가 뒤뚱하며
따라왔다.
줄을 당길 때마다 흰 눈은 계속
눈으로 입으로 얼굴로
쏟아졌
다.
눈
감고 줄만 잡아당겼다.
눈사람이 되어 집에 들어서자
할머니
욕바가지
를
들
었
다.
미친 사당년처럼 쯧쯧쯧
혀를 끌끌 차
며 화롯불을 밀었다.
생채와 따끈한 시래깃국으로
언 몸을 녹였다.
다음날
하얗게 뒤덮인 앞산이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우리 집 마루에서 사계절
변해가는 산을 보는 것도 좋았다.
날이 청명하게 좋은 날
제일 높은 산봉우리에 하얀 뭉게구름이 걸쳐 있었다.
닭 쫓던 간짓대
로
하얀 구름을
감 따듯
따고 싶었다.
흰 눈이 쌓여 있는 산봉우리
도
올라가고 싶었다.
올라
가서 할 일은 특별한 게 없다.
동네
내려다보며 " 얏호" 하고 소리치
면
메
아리 되어 오는
"
얏호
"
소리를 듣고 싶다.
눈이 내리는 날에는 초가집 지붕 위에 몽글거리며
굴뚝에서
올라가는 연기
도
보고 싶다.
그러나
모든 풍경
이
사라졌다.
초
가집도 사라졌다. 앞산에도
빽빽이 들어선 나무들로 울창하기 이를 데 없다.
봄이 되면 바람에 출렁이던 보리밭도 사라졌다.
집 앞논마다 피어있는 자운영 꽃도 사라졌다.
떨어진 땡감도 물에 우려먹
었다.
깨진 감홍시도 주워 먹
던 우리들이
곶감처럼 주름진 얼굴로 옛날을 생각하고 있을까?
며칠 전 눈이 많이 내렸다.
그런데 이름도 생소한 습설이란다.
걷자마자 뒤꿈치에 주먹만 한 돌멩이가 엉겨 붙었다.
걷기조차 힘들었다.
우리 고향에도 눈이 많이 내렸다
우리가 자랄 때
볼 수 없는 풍경이
SNS에 사진이
올라왔다.
가지마다 흰 눈에 쌓인
감나무
에
감이
꽃처럼
피
어
늘
어져
있
다.
일손도 부족하고 먹거리가 풍성해진
탓에 겨울 철 눈속에서 꽂으로 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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