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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애 Jan 28. 2022

음식저장고가 있으신가요?

음식저장고가 있으신가요?     


          

예!

저는 음식 저장고가 있어요.

배꼽시계가 알람을 알릴 때쯤,

특별한 것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어김없이 폰이 울리죠.

음식 저장고에서요.     


집에 있어요?”

, 집에 있어요.”

그럼 잠깐 내려와 봐요.”

, 바로 갈게요.”     


제가 집에 있다는 인기척이 나면 전화가 오고 제 음식 저장고와 제가 나누는 대화는 늘 똑같습니다.     

쪼르르 내려가서 옆집 대문을 열면 2층에서 옆집 엄니가 내려오시죠.     


예, 눈치채셨나요?     

엄마와 언니의 중간쯤 되시는 옆집 엄니가 제 음식 저장고입니다. 요즘 제가 먹는 대부분 반찬은 옆집에서 온 것입니다. 온갖 음식과 음식 재료도요. 봄부터 가을까지는 산과 들에서 나는 귀한 채소와 직접 키운 신선한 채소를 매일 주시죠. 가시오가피의 연한 잎과 산두릅을 비롯해서 귀한 채소를 넘치도록 주십니다. 저는 산두릅전,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기, 두릅 라면을 만들어 먹기도 하지요. 귀한 산두릅과 가시오가피순을 귀한 줄 모르고 매일 양껏 먹었답니다.     



 겨울에는 마지막 채소라며 직접 키우신 무 10개와 집 앞마당 감나무에 주렁주렁 열려있던 대봉을 잔뜩 따 주셨습니다. 김장철에는 김장김치를 종류별로 김장 통에 담아 주셨습니다. 배추김치, 동치미, 달랑무김치, 겉절이, 무채를요. 이번에는 김장김치를 많이 주셔서 친정어머니께 김장김치 보내지 말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주 1~2회 잡채나 밑반찬, 선물 들어 온 귀한 음식 등을 챙겨주신답니다. 요즘 요리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옆집 음식으로 해결하니깐요. 얼마 전에는 직접 담그신 국화꽃 막걸리 1.8L 2병을 주셨답니다. 막걸리 맛, 예술입니다. 막걸리를 받은 그 날부터 하루에 한 잔씩 마셨답니다. 매일이 행복이었죠. 맛뿐만 아니라 하얀 막걸리에 연분홍빛 소국이 활짝 펼쳐져 얼마나 예쁜지요. 눈과 입이 함께 호강했답니다.      



호강도 이런 호강이 없습니다. 어제저녁에도 뭘 먹을지 고민하고 있을 때 가래떡과 호박 조청을 주셨습니다. 갓 만들어 말랑말랑한 가래떡에 호박 조청을 찍어 먹는데 얼마 만에 이 맛을 보는 건지 이리 먹는 것만도 어릴 때의 추억이 떠올라 행복했습니다. 처음 먹어본 조청에 반해 오늘은 식빵을 에어프라이어에 바싹하게 구워 호박 조청을 발라 커피와 함께 먹었는데 혼자 먹는데도 분위기에 취하더군요. 느낌 오시나요?     


저도 맛에는 은근 까다롭지만, 옆집 엄니의 음식은 잘 먹습니다. 절에서 음식 공양을 하셨던 분이라 음식이 정갈하고 맛있답니다. 이 정도면 음식저장소 맞지요. 그분 덕분에 저는 얼마나 편안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지요. 그저 감사할 뿐이랍니다.     




가끔 옆집에서 나눠주는 채소량이 많을 때는 제 지인들께 나눔을 합니다. 그럴 때 지인이 제가 옆집에 잘하니깐 그렇게 챙겨주는 것 아니냐고 말합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곳으로 이사 온 지 5년째입니다. 저는 인사만 열심히 했습니다. 봄이 오면 집의 모든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사는 사람입니다. 아침 일찍 작업실 창문을 열면 산에서 산나물을 재취하시는 두 분을 만납니다. 거실로 나오면 산에서 옥상으로 자리를 옮겨 채소를 다듬거나 손질하며 보내는 두 분을 만납니다. 저는 반갑게 “안녕하세요?”라고 큰 소리로 인사했더니 어느 날부터 챙겨주셨고 지금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할아버지는 제가 보이기만 하면 옆집엄니께 반찬을 갖다주라고 말씀하신답니다.


물론 저도 어느 날부터 인사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가끔 과일도 사드리고 올겨울에는 좋아하시는 양념게장과 굴도 사드렸습니다. 지난 어버이날에는 점퍼도 하나 사드렸네요. 무척 좋아하셨고 자주 입고 외출하시는 것을 봤습니다. 이리 챙겨주시는 옆집 부부를 친정어머니께서 더 고마워하십니다. 가끔 저에게 먹거리를 보내실 때 옆집 것까지 챙겨서 보내주시며 감사함을 전하기도 한답니다. 그렇게 해도 옆집에서 10을 주시면 저는 2를 주는 정도라 늘 미안합니다. 넘치도록 주시는 옆집엄니는 음식을 주시면서 늘 감사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맛나게 먹어줘서 감사하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 감사하고 박사님 덕분에 나는 즐거워요.”     


어린아이같이 활짝 웃으시며 말씀하시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우신지요. 전 그 모습에 또 깔깔깔 넘어갑니다. 감사해야 할 사람은 저인데 늘 저보고 감사하다고 말씀해주시고 즐거워하시니  제 자존감이 얼마나 쑥쑥 올라갈지 상상이 가시죠. 좋은 분이 옆에 계신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기쁨인 것 같아요.     


어때요? 제 음식저장고 탐나지 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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