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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U Oct 17. 2022

품절되는 세상

KBS2 환경 스페셜 다큐멘터리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를 보고

출처 ; 다큐멘터리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예고편 스틸컷



 한남동을 갔다가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젊은 세대 중에서도 어느 정도의 소득과 자산이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지만 놀라울 정도로 사람들은 스스로를 치장했다. 유행하는 스타일에 본인만의 개성까지 더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탐나는 제품들로 자신만의 취향을 드러내고 있었다. 얼마나 요즘 사람들이 유행과 개성에 관심이 많은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한때 나 역시도 옷, 잡화, 장식품 등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생 시절 찍은 사진들을 쭉 보다 보니 그때의 나는 시기별로 다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해가 바뀔 때마다 옷장이 통째로 바뀌는 것 같았다. 자금이 부족한 대학생이었으니 인터넷 쇼핑몰에서 저렴한 가격과 낮은 질의 옷을 대량 구매해 한 철만 입고 폐기했다. 크게 죄책감이 들진 않았다. 집 앞 골목에 있는 헌 옷 수거함에 넣으면 왠지 누군가 내 옷을 또 입어줄 것만 같았다. 오히려 좋은 선순환이라 생각했다.



"패션은 개성을 표현하는 값싸고 편리한 방법이다." 이 말에 극히 공감한다.


 몇 만 원짜리 제품에 나의 개성을 위탁해 표출하고자 하는 심리가 참으로 편리하다는 걸 안다. 내가 누군지 보여주려면,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인지 보여주려면, 내가 얼마나 안목 있는 사람인지 보여주려면, 이는 가장 가성비 좋은 전략이다. 표현의 수단이 다채로워지며 생산자들은 미적인 상품들을 계속해서 생산해 내고 덕분에 소비자들은 어렵지 않게 미적 감각을 일상에 레이어드 하며 세상은 더 다채롭고 풍요로워졌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피해자와 가해자가 생기는 순간 문제가 된다. 부유한 국가에서 무분별하게 소비하는 옷들은 폐기물이 되어 고스란히 개발도상국 등의 가난한 국가에 먼저 도착한다. 자연에 가까운 생업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국가일수록 이를 더 빠르게 체감하게 될뿐더러, 폐기물을 처리하는 것과 같은 뒷일은 부유한 국가가 크게 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의류 폐기물에 대해 직접적으로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던 이유는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나 아닌 누군가가 대신 피해를 감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티셔츠 한 벌을 만들기 위해 쓰이는 물의 양은 2700L, 이는 한 사람이 3년간 마실 물의 양과 맞먹는다고 한다. 세상이 자꾸만 본질을 가리려 하는 것 같다. 길을 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진지하게 마실 물과 예쁜 티셔츠 중에 하나만 고를 수 있다고 한다면, 누구나 물을 선택할 것이다. 우리에게 물은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자원이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디서나 저렴한 비용에 물을 구매할 수는 있지만 할인 마감을 앞두고 있는 예쁜 티셔츠는 곧 품절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유독 한국은 패션에 민감하다. 수많은 셀럽들은 명품과 화려한 무대 의상을 걸치며 대중매체에 등장하고, 수많은 대중들은 이를 답습해 유행을 만들고 소비한다. 방송 업계에서 사용되는 패션 제품들의 대부분은 한번 착용 후 그대로 폐기된다. 값비싼 옷과 장신구들 몇 천 개가 (심지어 텍도 떼지 않은) 그대로 폐기되는 걸 본 적이 있다. 의류 폐기물 문제가 비단 소비자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사회적인 시류도 한 몫하지만 그보다 생산자가 문제의 발단이자 핵심이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더욱더 생산자의 책임을 통감할 수 있다.


 지금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언젠가는 과오가 우리에게 돌아올 거라 생각한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한 뒤로는 화려한 옷들이 마냥 멋있어 보이지 않는다. 옷을 쉽게 사고 쉽게 폐기하는 사람을 보면 마음이 한 켠이 불편하다. 나의 태도도 자꾸만 검열하게 된다. 저렴하고 예쁜 옷보다는 좋은 옷을 오래도록 관리하고 간직하기로 스스로와 약속한다.



세상은 하나를 가지면 다른 하나를 내어줘야 한다.

나는 예쁜 티셔츠보다는 깨끗한 물을 선택하고 싶다.









콘텐츠

KBS2 환경 스페셜 다큐멘터리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는 아래에서 무료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https://bit.ly/3xLfFtN


글 연재 패턴

1주차 - 신문 기사나 사설 등을 기반으로 다양한 사회 현안에 대해 글을 씁니다.

2주차 - 하나의 키워드를 설정하여 자유롭게 에세이 형식의 논픽션 글을 씁니다.

3주차 - 하나의 상황을 설정하여 자유롭게 소설 형식의 픽션 글을 씁니다.

4주차 - 콘텐츠 (영화, 드라마, 도서, 영상 콘텐츠 등) 를 보고 느낀 감상을 글로 씁니다. (본문 글은 여기에 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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