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U Feb 19. 2023

시간의 매정함

매섭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내가 갖춰야 하는 자세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공평하다는 것은 곧 매정하다는 뜻도 된다. 누구의 사정도 살피거나 기다려주지 않는 것이다.


부쩍 시간이 매정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벌써 20대 후반이나 됐나. 지금까지 내가 이룬 게 뭐가 있지. 난 어떤 어른으로 자랐지.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지다 보면 마침내 생각의 종착지는 '세월이 야속하다'였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세월은 자기 페이스에 맞춰 지나갔을 뿐이라는 걸. 괜히 탓하고 싶은 상대를 물색하던 나에게 걸렸을 뿐이고.


변화한 나 자신을 찬찬히 되짚어 본다.

신체의 피로감은 과거보다 잘 느껴지고, 감정은 대체로 무던함을 유지하지만 예상치 못한 시점에 극한의 우울감에 빠지게 되며 큰 기쁨과 환희를 느끼는 순간은 드물어졌다.

밝은 색채감의 옷과 화려한 액세서리를 좋아했었지만, 어느새 눈에 띄지 않은 무채색의 옷에 한두 가지 포인트를 주는 재미에 빠졌다. 그것이 은은한 멋이라는 생각에 도취되기도 했다.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영화와 소설과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중 하나를 업으로 삼게 되었지만, 이상은 절제하고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성공한 삶의 태도라고 여기는 모순적인 사람이 되었다.

...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내 생각, 가치관, 태도, 말투, 얼굴까지도.

그런데 문득 생각을 달리 해보니 내가 '변화'했다기 보단 '결성'되었다고 보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과거 데이터들이 축적되어 경향성을 띄는 그래프가 완성되듯, 과거의 내가 모여 현재의 내가 결성되는 것. 더불어 현재의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미래의 내가 완성되겠지.


이제는 지금의 내 안에 과거의 내가 서려있다는 걸 알기에, 과거를 끌어안고 사랑함으로써 현재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현재 내 모습을 열렬하게 사랑하면 미래의 내가 온전히 과거를 끌어안을 수 있겠지 하는 바램으로. 그것이 부정적인 모습이던, 긍정적인 모습이던.


그래서 나는 요즘

과거의 나,

현재의 나,

미래의 나를 동등하게 존중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특정 시점의 나를 분리해서 바라보지 않고 연속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하고 있다.

지금의 나는 끊임없는 자기 객관화와 회고를 통해 과거의 나를 이해했고, 과거의 내가 만들어 낸 현재의 나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직관적인 예를 들자면, 스스로 생각하는 내 얼굴의 결점은 어릴 적 손으로 뜯는 습관이 있어 남게 된 흉터들이다. 이를 인정하고 대신 앞으로 더 큰 흉터가 남지 않도록 다시는 같은 곳에 손을 대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이미 남아버린 흉터에 더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나에게 내재된 많은 것들을 해부해 분석하고 이해하고, 필요한 부분은 개선하고자 했다.


미래에도 같은 메커니즘이 적용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내가 요즘 하는 일은 기록이다. 감정을 기록하고, 일상을 기록하고, 생각을 기록해서 실시간으로 나만의 데이터를 만들고 빠르게 회고하는 것. 그것이 위에서 말했던 과거의 나, 현재의 나, 미래의 나를 동등하게 존중하고 사랑하는 방법이다.


매섭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를 살피고 기다려 주는 것은 몇이나 될까?

나의 과거를 붙잡아주고 현재를 돌봐주고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다.


어릴 적 모습들을 캠코더로 남겨준 부모님께 감사하다. 내 머릿속에선 잊힌 나의 이야기들을 다시 돌려볼 수 있으니까. 이제는 내가 내 모습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고 꼼꼼히 기록해야지. 세월 속에서 스스로를 꽉 붙들어 줘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안티프래자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