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웃고 싶었다
오래도록 엄마의 미소를 볼 수 없었다.
사십 대 초반에 치아가 다 빠져버린 엄마는 좀처럼 웃지를 않았다.
웃으면 치아가 드러나니 웃을 수가 없었다.
아빠의 사업실패, 빚보증으로 이미 집은 오래전에 빚더미에 올랐다. 엄마는 실어증까지 왔었다.
사십 대 초반에 엄마는 이미 고된 노동으로 무릎 연골이 닳고 닳아 계단도 제대로 오르지 못했다.
한 계단 한 계단씩 계단을 내려가던 엄마를 기억한다.
하루는 엄마가 거울을 보며 조용히 말했고 내가 그 소리를 들었다.
“아주 합죽이가 다 됐네.”
엄마가 가장 속상해하는 말은 ‘할머니’였다.
사람들은 엄마를 할머니로 부르기 시작했다.
화장기 없는 얼굴, 하나로 질끈 묶어버린 머리, 다 빠져버린 치아 때문에 엄마는 영락없는 할머니였다.
후에 엄마가 그러셨다.
“드라마를 봐도 거기 나오는 사람 이빨만 보게 되더라고. 나는 왜 저렇게 하얀 치아가 없을까, 나는 아직 젊은 나이에 왜 할머니처럼 이렇게 초라하게 다 빠져 버렸나 그랬었어.”
아빠 빚을 갚으면서 나는 조금씩 돈을 모았다. 엄마 치아를 꼭 해드리고 싶었다.
그렇게 열심히 모아 집으로 가지고 갔다.
그날은 동네에서 일수를 놓는 아주머니가 오셨다. 아빠에게 돈을 갚으라고 다그치고 계셨다.
그때 느낌이 왔다.
내가 가져온 사백 만원을 저 아주머니께 드리겠구나.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잖아.
그렇게 내가 모은 돈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사백만 원은 내가 일 년 넘게 꼬박 모은 돈이었다. 그 돈이 그렇게 허망하게 사라지는 것을 나는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아빠도 나이가 드셨고 틀니를 하시게 되었다.
“치아가 불편해서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평소라면 말없이 듣기만 했던 큰언니가 말했다.
“아빠, 엄마는요. 사십에 치아가 다 빠지고 아빠 빚 갚느라 십 년을 넘게 치아도 못하고 웃지도 못하고 저렇게 사셨어요. 그 좋아하는 고기도 제대로 못 먹었어, 엄마는. 엄마 앞에서 지금 치아 때문에 잠깐 불편했다고 아빠가 그런 말하면 안 되는 것 같아.”
그 말에 아빠는 입을 다무셨다. 엄마도 말이 없으셨다.
아빠는 그 후로는 치아에 대한 불평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아빠의 최소한의 양심이라고 생각했다. 딸이 힘들게 모아준 치아 비용까지 모두 빚으로 사라졌던 가족에 대한 사죄의 마음이라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