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이었다. 집은 너무 어려웠고 그게 나를 짓눌렀다.
사건은 사회 수업시간에 일어났다.
3년 내내 같은 선생님이 사회를 가르쳤다. 영화에서처럼 이대 나온 여자, 선생님 스스로 그것을 강조했다.
교과서를 한참 보고 있는데 선생님 목소리가 들렸다.
“얘들아, 쟤 좀 봐봐.”
순간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선생님이 나를 보고 있었고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쟤 좀 보라고.”
반 아이들이 일제히 나를 보았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쟤 표정 보이니? 저게 어떻게 중학생 표정이니? 너 인생 다 살았니?”
처음 느낀 모멸감, 비참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나는 울지 않을 수 없었다.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밀려오는 슬픔을 감당하지 못했다. 소매로 연신 눈물을 닦아냈다.
중학교 3년 동안 가장 비참하고 슬픈 날이었다.
나는 무조건 잘 자라야 했다. 엇나가지 말고 다 견디어야 했다.
그렇게 잘 자라서 나는 무조건 모교를 간다. 모교에 그 선생님이 없다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찾아낸다.
그리고 나는 찾아가서 말한다.
“덕분에 저 정말 열심히 살았네요. 아주 감사합니다.”
그게 내가 생각한 시나리오였다. 서른이 가까워졌을 때까지 그게 나는 상처로 자리 잡혀 있었다.
그러다 나는 고등학교 은사님을 만났다. 성인이 되어 처음 만났고 자연스럽게 술자리를 했다.
그때 술김에 그 선생님 이야기를 꺼냈다. 그게 너무 상처여서 저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말했다. 그러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가르친 너는 절대 그런 애가 아니었어. 네가 얼마나 잘 웃는데. 선생님도 사람이라서 다 실수를 해. 그런 얘기 너한테는 해당사항이 아니야. 그러니까 네가 그런 일로 상처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 좋은 선생님이 될 수는 없어.”
그 말이 나에게는 위로가 되었다. 그래서 더는 그 생각을 떠올려도 슬프거나 가슴 아프지 않게 되었다.
사는 게 그런가 봐. 누군가는 상처도 주고 또 누군가는 위로도 주고. 삶이 그런가 보다. 나는 꼭 후자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