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와 같은 동네에 살았다.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항상 당당했다.
나는 그에 비해 가난함을 부끄러워했고 가난을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말수도 줄어들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우리 옆집이 집을 부수고 새로 지었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멋진 집이 지어졌다.
그 후로 나는 더 우울해졌다.
상대적으로 우리 집이 더 초라하게 보였다.
우리는 아직도 난방을 연탄으로 하고 있었다.
동네에서 연탄을 때는 마지막 집이었다.
S는 반 친구를 집으로 데려왔다.
S도 얼마 전에 집수리를 했기에 외형은 좋지 않았지만 내부는 깨끗했다.
그게 나는 너무 부러웠다.
S의 집보다는 우리 집이 낫다는 사실이 내심 위안이 되었는데 이제 집수리를 하지 않은 집은 우리뿐이었다.
마을버스를 타고 같은 정류장에 내렸다.
S와 반 친구들이 앞서 가고 나는 뒤에서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S의 집을 지나쳐야 우리 집이 있었다.
친구들이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서둘러 집으로 들어갔다.
누가 볼세라 바삐 들어갔다.
그리고 월요일이 되었다.
S의 집에 놀러 왔던 H가 나에게 왔다.
너네 집 좋더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다가왔다.
그냥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듣고만 있었다.
맞다, 아니다 말하고 싶지 않았다.
S가 미웠다.
S가 우리 집을 가르쳐 줬을 것이고 H가 잘못 알고 있다면 바르게 알려주었어야 했다.
아니 그보다 이 상황을 이렇게 만든 것에 화가 났다.
그냥 말없이 H의 말을 들었고 그리고 나는 그 일을 잊었다.
어느 날, 밖에서 쓰레기를 태우던 엄마가 나를 불렀다.
나가보니 H가 있었다.
너네 집이 여기일 것 같아서.
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엄마가 태우고 있는 쓰레기만 보았다.
지금 막 화장실에서 꺼낸 신문지였다.
우리 집은 휴지를 사지 못해 할아버지가 신문을 잘라 화장실에 걸어 두셨다.
그걸로 우리는 뒤처리를 했다.
엄마가 쌓인 쓰레기를 꺼내 마당에서 태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똥이 묻은 불이 붙은 신문 조각을 바라보았다.
모든 상황이 최악이라는 생각을 했다.
가난이라는 것이 왜 이리 사람을 비참하게 하는지 생각했다.
우울한 하루가 종일 이어졌다.
후에는 H와도 가까워져서 방학에 편지도 주고받을 정도가 되었다.
가난은 삶의 일부인데 나에게는 전부였던 것 같다.
S는 사실 집수리 전부터 집으로 친구들을 데려왔다.
그에 비해 나는 아무도 집으로 데려오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S가 아닌 나에게 화가 났던 것 같다.
설사 친구가 착각했다면 거기 우리 집 아니라고 당당히 말하면 되는 것을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내가 당당하면 되는데 그러지 못했다.
나 스스로가 나를 비참하게 했다.
아직도 나는 그 집에 있는 나를 꿈에서 본다.
꿈에서는 여전히 그 집에서 살고 있다.
왜 그렇게 우리 집을 창피하게 생각했을까.
누군가 때문에 상처를 받은 것이 아니라
그게 너 때문이라고 책임을 넘기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