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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문 Mar 16. 2023

엄마의 오해와, 아이가 아빠를 보내는 방법

이별은 늦을수록 좋은 줄 알았어

남편이 떠난 지 5개월이 되어간다.

남편은 가끔 꿈에 왔다 가고, 난 여전히 깨어나 울곤 한다.

남편이 늘 그립고 보고 싶지만, 하루에 있었던 사소한 일들, 일을 하며 생겼던 사건들을 얘기할 사람이 없어졌다는 데 가장 큰 상실감을 느낀다.     

난 남편과 이야기하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별 거 아닌 일들을 밥 먹으면서, 차 마시면서, 산책하면서, 카페에 앉아서

남편 등에 대고 주절주절 이야기하면 남편은 늘 맞장구를 쳐주고 함께 험담도 늘어놔주면서 매일매일 그렇게 우린 수다스러웠었다.     


남편이 처음 중환자실에 갔을 때,

난 남편의 대답 없는 휴대폰 카톡에 그날의 일들을, 날씨를, 아들의 일과를 주저리주저리 쓰곤 했다. 

제발 다시 일어나 나의 이 실없는 수다를 들어주기를, 다시 한번 더 예쁜 카페에 앉아 서로의 얼굴을 보며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기를.     

나의 그리움은 참으로 별 거 아닌 것에서 시작하고,

별거 아닌 것들에 담긴 남편과의 시간은 시시때때로 불쑥 마음을 파고든다.  





        

내 마음은 이렇게 늘 그리움과 슬픔을 오락가락하며 기억을 붙잡고, 

혹시 내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적의 상상을 매일 하는데,

아들은 이상하게도 늘 즐겁고 늘 자신만의 세상에서 놀고 있었다.

나는 아이라서 그렇겠거니 했다가 이 녀석이 대체, 아빠가 보고 싶지도 않나.. 하는 마음에 괘씸하기도 했다.

아무리 어려도 그렇지 저렇게 천진한 게 말이 되나... 하는 서운함까지 들었다.    

 

어느 날,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도율아, 아빠 생각 안 나?”

“아빠? 생각나지.”

“언제? 아빠가 보고 싶긴 해?”

“보고 싶지.”

아이의 말엔 감정이 담겨 있지 않은 것 같아서 살짝 서운했다.


어릴 때부터 아빠는 늘 아팠고, 대체적으로 누워 있곤 했으며, 몸이 자유롭지 않아 아이와 나들이며 여행은 꿈도 꾸지 않았었다.

그래서 나는 아들이 아빠와의 추억이 없는 걸까... 걱정이 많았다.

아빠보다는 늘 엄마에게 숙제를 물어보고, 친구들과의 일상을 이야기하고 고민을 털어놓던 아들인데, 아빠와의 기억은 정말 별 거 없는 게 아닐까? 하면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나는 조금 안타깝기도 하고 서운한 마음을 담아 다시 물었다.

“아빠랑 게임하던 게 생각나고, 게임 못해서 보고 싶은 거야?”     

남편은 게임을 만들던 사람이었기에 게임을 하면서도 아이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거나, 게임 설명을 아주 잘해 주었었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 아빠와 게임을 자주 했고, 아빠한테 여러 가지 게임을 배우고 게임에 대한 일방적 편견보다 분별력을 배워왔기 때문에 게임을 새로 하거나 기존 게임을 할 때 가끔 아빠 얘기를 하곤 했었다. 

    

아이는 내 질문에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결심한 것처럼 대답을 했다.     

“아니, 매일 보고 싶어.”   



       

나는 내 아이를 오해하고 있었다.

어려서 생각이 없거나, 철이 안 들어 저렇게 즐겁기만 하다고 오해했다.     

아이는 참고 있었던 것이다.

나름의 방식으로 아빠를 추억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아빠를 향한 그리움을 달래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인 나는 그것도 모르고 아이의 마음을 후벼 팠다. 

겉으로 꺼내고 싶지 않던 그 말을, 기어이 하게 만들고 말았다.     


아이는 화장실로 갔다.

아이는 우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나이 때부터 눈물이 나는 걸 보이기 싫을 땐 화장실에 가 앉아 있곤 했다. 

그날도 아이는 잠시 화장실에 앉아 있다가 나왔고, 다시 아이만의 즐거운 일상으로 돌아갔다.     




이번 겨울 방학,

나는 아이와 여러 번의 여행을 다녀왔다.

다른 친구들은 가족 여행을 자주도 다니는데, 아이에겐 그런 추억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혹시나 다른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하고 슬퍼할까 봐 더욱 아이에게 집중하는 겨울방학을 보냈다. 

그런 시간들이 아이 마음의 경직을 조금 풀어줬던 것일까.    

이제 아이는 아빠가 곧 돌아올 곳을 간 것처럼, 아빠의 일상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도 남편이 커다란 손을 무심히 내밀어 나와 손을 잡고 동네를 걸어 다닐 것만 같다.

카페에 앉아 있으면 나를 보면서 “난, 아아.”라고 말할 것 같다.

밥을 많이 먹은 저녁이면 “마누라, 브이라인 다신 안 돌아온다.”라며 핀잔을 줄 것 같다.

내가 아무 때나 사랑한다고 말하면, 영혼 없다고 하면서도 못 이긴 척 좋아해 주는 표정을 지을 것만 같다. 

    

아마도 아이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영혼을 끌어 모은 제스처를 한 다음 시크하게 칭찬하는 아빠를 흉내 내기도 하고

장난스럽게 다람쥐처럼 걷는 아빠의 모습을 흉내내기도 하고

아빠가 얼마나 게임을 잘했는지 내게 말해주기도 하면서

아이는 아빠와의 일상을 기억하고, 기억하는 것으로 이별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키가 큰 아빠만큼 자라는 게 목표라서 키를 잴 때마다 얼마나 크면 아빠만큼 커지냐고 묻기도 한다. 

언제나 목표는 아빠보다 조금 더 크는 것이라고. 

아이의 일상엔 아빠가 사라졌지만, 아이는 그리워서 슬프기보다 기억하고 받아들이는 쪽을 선택한 것으로 보였다.    



아이를 오해 한 그날부터 나는 더 이상 일부러 아빠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아이도 이제는 쉽게 아빠를 이야기하고 아주 가 버린 것이 아니라, 곧 만날 수 있는 것처럼 가볍게 이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엄마가 모든 걸 안다고 생각하는 착각을 넘어, 아이는 그렇게 차근차근 자라고 있다.

이젠 내가 그걸 알아줄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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