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문 Mar 13. 2024

사춘기는 피로에서부터 오나 보다

이대로는 괜찮지 않아서

아들의 중학교 입학과 적응은 성곡적으로 보였다.

예쁘게 교복을 입고 현관문을 나서는 모습을 보며, 어느새 저렇게 컸네... 라며 혼자 뿌듯해했다.

학교에 다녀와서는 자율학기제 수업을 고르고 수강신청을 하느라 분주했고, 새 친구가 생겼다며 즐거워했다.

다른 환경에 힘들어할까 봐 걱정하던 나는 제법 씩씩하게 적응하는 아들을 보며 한시름 놓기도 했다.


그런데...

질풍 노도의 시기...

그것이 오는 것이 보였다.


엄마가 하지 말라는 것은 그 자리에서 수긍하며 따르던 녀석이

밤늦게 친구와 게임하지 말라는 말에 그 어떤 동의도 없이 게임을 하고 있었다.

보통 처음 겪는 그런 일에 엄마들은 어이없어한다고 전해 들었던 기억이 났고, 

아... 이런 기분이구나.. 하며 나 역시 어이없었고, 당황했다.

그리고 아이가 게임을 다 끝낼 때까지 기다렸다.


"엄마랑 얘기 좀 하자."

아이는 이 말을 들으면 눈치를 챈다. 아... 엄마한테 혼이 나는구나...


"게임하지 말라는 엄마말 못 들었어?"

아이의 표정이 대략 난감이다. 

"들었어..."

말 끝이 흐려지는 것을 보니 상황이 여의치 않음을 알아 차린 것이다.

"그런데 왜 했어?"

얼른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기다렸다.

"10시가 안 된 시간이어서 괜찮다고 생각했어."


아이는 나름 고민을 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네 생각을 엄마한테 말해서 엄마를 설득해야 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아이는 방법의 차이에 대한 것을 이제 하나 알아가는 중이었다.

무엇이 옳은 판단인지 알지 못하는 나이. 제 깜냥으로 옳은 판단을 했다고 단정 지을 나이.

아들의 나이는 지금 열네 살이다.


나는 아들에게 엄마가 다 옳지 않다는 걸 말해줬고, 

아들도 이제 그것을 알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해줬다. 

그러나, 서로의 생각이 다를 경우 분명히 그 생각의 간극을 좁힐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해주기도 했다.

대화, 소통, 서로에 대한 인정, 생각 나눔...


그런 단어들이 난무했던 밤이었다.


아들을 재우고, 조용히 앉아 생각을 했다.

이제 시작인 건가... 사춘기가...


그리고 아이의 일상을 되짚어 봤다.

중학교에 진학하고 7교시가 있었고, 

학교 끝나고 바로 학원으로 갔다가 집으로 돌아와 

급히 저녁을 먹고 다시 체육관으로.. 

체육관에서 돌아와 씻고 온라인 영어수업과 숙제...

아이의 일상 속에 있던 게임 총량은 예행 연습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숙제가 끝나면 12시에 가까워 잠이 들었고, 

아침 일찍 일어나 다시 아침밥을 먹고 옷을 입고 학교에 갔다.


겨울방학 동안 그렇게 대비시키려 했지만 잘 되지 않던 바쁜 일상이 현실이 되었고, 

아들은 드디어 현타가 온 것이다.

친구와 게임을 하던 시간이 없어지고, 

주말에도 운동과 집안 일정으로 친구를 만날 수가 없는 날들이 이어지니 

엄마가 하지 말하던 게임 시간이 너무 간절했겠구나, 하는 생각에까지 다다랐다.


아들은 즐길 시간이 갑자기 사라진 지금을 적응하려 노력했고, 

그 틈에 생긴 귀한 시간이 너무 아까웠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쉬는 시간이 없다... 가 문제였다.


아들의 피로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었다. 

그리고 아들은 이제 스스로 생각하고 결론지으려는 사춘기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나는 간과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이 힘겹지만, 이유를 물을 수가 없다.

그렇게 짜였고 해 내야 했고 다른 아이들도 그렇게 살았다.

왜 자신이 그런 일상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할 시간조차 없이 

시간표대로 움직이는 아이들에게 사춘기는 짜증과 반항으로 왔고, 

그것이 그 아이들이 낼 수 있는 최소한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게임을 하며 친구와 놀 시간도,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이런 일상이 괜찮은지에 대한 질문도 할 사이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엄마들은 더 잘 살라는 미명 아래 아이들을 생각 없는 로봇으로 키우려고 애를 쓰는 것 같았다.


학원에 전화를 했다.

7교시가 있는 화요일. 학원을 빼기로 했다.

학교에서 집으로 와서 유튜브를 보던, 게임을 하던, 혼자 잠을 자던 내버려 두기로 했다.

2시간. 아들은 화요일의 2시간을 얻은 것이다.


변화도 천천히 적응도 천천히 하는 게 맞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무엇이 아들의 여유를 뺏어갔는지 고민하고 반성하던 엄마는 작은 결단을 한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불안이 고조되는 날들.

늦은 나이에 아들을 낳아, 잘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더 불안해지는 날들.

한 번 아팠던 엄마가 또 아프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생각에 시간이 없는 것 같은 날들.


엄마는 괜찮지 않은 날들 속에 불안했고,

아들은 빠르게 바뀌는 하루하루에 불편했다.


지켜보리라. 

아들에게 틈을 내어 주고 이제는 지켜보리라 마음먹는다.

숨통을 트여 주고 그 틈 안에서 무엇을 하던 

이제는 지켜보리라 마음을 다잡는다.


사춘기... 

피로에서 시작된 사춘기.

고민하고 소통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 힘겨운 사춘기.

엄마는 엄마대로, 아들은 아들대로... 

이 기나긴 터널을 더듬거리며 잘 관통하리라 믿어 본다.


오늘은 어제와는 다르게 햇살이 반짝인다.



작가의 이전글 인생의 뒤안길에서 나를 지배하는 기억은 무엇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