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3인 3색의 향수
소설 쓰는 나는 체리 핑크. 시 쓰는 이샘은 싱그러운 연둣빛. 수필 쓰는 미샘은 강렬한 오렌지!
3인 3색이 모처럼 뭉쳤다.
옥천에서 태어난 이샘은 고향 사랑이 남달라 그날도 옥천으로 향했다.
이샘을 따라가면 실망하는 법이 없기에 얼른 뒤따랐다.
도착한 곳은 옥천 교동에 있는 육영수 여사 생가였다.
일 년에 두 번 봄가을마다 벚꽃과 벚나무 단풍을 보기 위해 옥천을 찾았지만 그곳은 첫걸음이었다.
존경해 마지않는 육영수 여사 사진을 보자 울컥했다.
20년 전 친구들과 진해로 벚꽃 구경을 하러 갔다.
관광버스가 해군사관학교 정문에 도착하자 제복 입은 학생이 올라와 절도 있게 거수경례를 했다.
학생은 학교 유래와 교내에 심은 나무들에 대해 상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소나무와 벚나무가 심어진 가로수 길을 달리던 버스가 멈추자 학생이 차창 밖을 보라고 했다.
“저-쪽 나지막한 동산을 한 번 보십시오. 육영수 영부인께서는 넓은 풀밭을 놀리는 것이 아깝다고 하셨습니다."
관광객들은 다투어 학생이 가리키는 풀밭을 바라보았다.
“영부인께서는 저곳에서 키우라며 젖소를 보내주셨습니다. 덕분에 오늘날까지 모든 학생들이 양질의 우유를 충분히 마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역대 최고의 국모답지 않으냐고 내가 열변을 토하자 이샘이 옥천 사람들만 아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육 여사 어렸을 적의 일이었다.
어느 날 해가 저물어도 육 여사가 돌아오지 않았다.
집안은 물론 온 동네를 샅샅이 뒤졌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창고에 가득 쌓인 가마니를 전부 꺼내자 그 속에 있었다.
캄캄해서 얼마나 무서웠느냐고 놀란 어른들이 묻자 육 여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찾으러 올 줄 알고 있어서 무섭지 않았어요.”
육 여사는 차분하면서 지혜롭고 배짱까지 두둑했던 것이다.
이샘이 우리한테 물었다. 커다란 창고를 길가에 지은 이유를 아느냐고?
나와 미샘은 지극히 상식적인 대답을 했다. 모른다고!
답은 배고픈 이웃들이 언제나 곡식을 퍼가게 하기 위해서였다.
브런치에 육영수 여사 생가 사진은 싣지 않았다.
어설픈 솜씨로 찍은 내 사진보다 인터넷 자료가 더 선명, 정확, 상세하니까.
육 여사 생가 앞 생태 공원에 연꽃이 가득가득 피어있었다.
전생에 연꽃 든 남자한테 사랑 고백을 받았는지 까닭 모를 그리움이 몰려와 아련했다.
전에 몇 번 밥 먹었던 식당을 가보니 전통 찻집으로 변해 있었다.
우리는 이 찻집에서 또 존경하는 육영수 여사를 만날 수 있었다.
이 찻집 건물은 육영수 여사가 교사로 근무했던 옥천 여자 전수학교(현 옥천여자중학교) 교무실이었다.
사진은 좀 그렇지만 품격 있게 차려진 다반이었다. 손대기 전에 찍었으면 훨씬 나았을 텐데!
서까래가 보이는 천장. 어느 누가 반하지 않겠는가?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휴지걸이
고품격 편종
아름답고 이채로운 다양한 전각
북 : 베 짤 때 날실 틈을 오가며 씨실을 푸는 기구
사진을 다 싣지 않아서 그렇지 찻집은 작은 박물관이었다.
감탄한 나와 미샘은 또 외쳤다.
"이샘을 따라가면 절대 실망하지 않는다!"
옥천 향수를 듬뿍 안고 돌아오는 삼인 삼색의 밤은 지극히 행복했다.
26. 유림공원 산책
요 핑계 조 핑계
일 년 만에 유림 공원을 찾았다.
가는 길에 만난 나비와 울창한 숲길
비가 내린다.
공원가는 길에 아무도 없다.
연못의 물레방아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돌리고 있다.
넓은 공원 전부가 내 것이었다.
차지할 수 없던 그네 의자에 앉아
시간을 가지고 놀았다.
어라, 너는 누구냐?
올해 마지막이 될 연꽃을 바라보는 왜가리?
공원 뒤쪽 유성천 돌다리는
물이 불어 건널 수 없고
하얀 새(쇠백로)가 물고기를 기다리고 있다.
산책은 자연에 스며들게 하며 사유의 뜨락을 하늘만큼 넓혔다.
27. 분꽃
- 이렇게 예쁜 꽃을 홀대했다니! -
점심 설거지를 마치고 운동하러 집을 나섰다.
아파트 화단에 있는 분꽃도 본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그 옛날 시골집 부엌 옆에도
할머니와 어머니가 가꾼 분꽃으로 가득했다.
한동안 흔하디 흔할 뿐 아니라 시골을 상징하는
촌스러운 꽃인 것 같아 외면하고 살았다.
언제부터인가 유년의 여름을 함께 한
분꽃이 더없이 반갑고 소중해졌다.
오후 2시 40분
화단의 분꽃이 모두 시들어 있어 놀랐다.
지날결인 듯 어머니 말이 들렸다.
“분꽃 피는구나. 보리쌀 안쳐야겠다.”
어머니는 오래도록 보리쌀을 삶았었다.
오후 4시 30분.
운동 마치고 돌아오면서 보니 활짝 피어 있다.
다른 꽃보다 꽃잎이 약한 분꽃은
강한 햇살을 견디지 못한다.
그리하여 시원한 오후에 꽃을 피우고 이튿날 오전에 진다.
적외선에 반응하는 색소가 많아
캄캄한 밤에도 곤충을 잘 유도하여 수정에 성공한다.
꽃말 - 겁쟁이, 내성적, 소심, 수줍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