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포도는 사랑을 싣고
우리 아버지 본적은 함경남도 북청군이다. 큰 산 하나를 넘으면 시월에는 은어받이가 겨울에는 동지받이 명태 떼가 몰려오는 바다가 보이는 아름다운 곳이라고 했다. 남북한이 자유롭게 오가는 날이 오면 가장 먼저 아버지 고향에 가고 싶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남한에는 친척이 딱 한 집 밖에 없다. 작은집이라 부르는 아버지 6촌 동생네였다. 사는 지역이 달라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아버지 6촌을 작은아버지라 불렀고 작은집에서는 우리 부모를 큰아버지 큰어머니라 했다.
오래전 양쪽 집 어른들은 모두 돌아가셨다. 피는 물보다 진해서 우리는 지금까지도 기쁨을 함께하고 근심을 털어놓으며 각별하게 지내고 있다. 작년 6월 오빠한테 카톡이 왔다. 식물 전염병이 돌아 사과나무 전체를 뽑아야 해서 해병대 정신으로 버티고 있다고. 자식처럼 키웠을 텐데 그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오빠는 선견지명이 있었는지 몇 년 전 과수원 한쪽에 포도나무를 심었다고 했다.
오빠와 언니의 땀과 사랑으로 영근 첫 포도를
추석 선물로 받아 들고 나는 감격해서 할 말을 잃었다.
* 은어받이 : 음력 시월 보름 전후로 함경도 연안에 몰리는 명태의 떼
* 동지받이 : 동짓달 보름께 함경도 바다로 몰려드는 명태의 떼
29. 가출
삼청사 공원 주변 건물 앞에 있는 작품.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두꺼운 돌을 구부려 나선 형으로 만들었을까?
열흘 넘도록 목욕 안 하는 인간과는 살기 싫다고 현관문을 부서 서라 닫고 집을 나왔다.
막상 나오니 갈 곳이 없어 화가 더 치솟았다.
수많은 여행지가 기다리고 있지만 가지 않을 뿐이라고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돌발 가출의 허무! 경험하지 않으면 모른다.
어디로 갈까? 목적지가 없음을 깨닫자 걸음 속도가 줄었다.
그냥 앞만 보며 걸었다. 말 안 듣는 남편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야속하고 미웠다.
삼청사 공원 오솔길로 접어들어들었다.
국제 전화비가 아까워서 카톡으로 딸한테 시시콜콜 일러바쳤다.
즉답이 왔다.
“아빠 요양원에 버리고 당장 뱅기 타고 우리 집으로 날아와!”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겁주기 위함이지 그건 아니었다. 소용돌이치던 마음이 그 한마디에 거짓말처럼 소르르 풀렸다. 딸은 역시 최고의 상담사였다. 천천히 걸어 한밭 수목원에 도착했다.
오후 5시. 집에 있었으면 저녁을 짓기 시작할 것이다.
저녁 짓기를 포기하니 시간이 낮잠이라도 자는 듯 여유롭다.
가출을 감행한 나의 행동은 무어라 규정지을 수 있을까? 일탈일 수도 반란일 수도 반격일 수도 세 가지 전부일 수도 있을 것이다. 때론 이런 사고를 칠 필요도 있다. 내 정신건강과 서로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기회를 얻게 되니까. 숙제를 하지 않은 것 같은 묵직한 불편함은 있지만 느긋하게 물고기를 구경하고 나비와 문익점이 붓 뚜껑에 세 알 숨겨왔다는 목화 열매를 찍었다. 일찍 여문 목화 열매는 하얀 솜 송이가 되어 있었다.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지만 맨 밑에 달려있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일행이라면 몰라도 낯선 이한테 부탁하는 성격이 아니라 간단하게 포기했다.
허브 농원을 지나 전망대에 올라
분주하게 오가는 차들과 초고층 아파트와 하늘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혼자 보는 게 아까워 가슴이 저렸다.
인간 관계에서 끝까지 남는 것은 부부라고 했다.
하지만 인생 끝자락에는 혼자 남을 수밖에 없는 외로운 존재다.
남편으로부터 정서적으로 독립하는 연습을 많이 해야겠다.
전망대 오르막에서 만난 범 부채.
정자 앞에 드문드문 피어 있는 노란 상사화 .
장미원에는 향기가 별로 없는 장미꽃 몇 송이가 피어 있었다. 젊은 부부가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하는 모습이 장미꽃보다 예뻐 보였다. 역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웠다.
한밭수목원 장미원의 늦장미.
8월 31일 수요일 7시. 저녁 먹고 설거지할 시간에 공원 가득한 청량한 공기를 실컷 마셨다.
풀이 이렇게 예뻐도 되나?
풀한테 홀딱 반했다.
하나하나 예뻐서 감탄 또 감탄했다.
날이 흐려서 노을은 찍지 못하고 딸이 보내준 네덜란드 일몰 풍경을 실었다.
소나무 숲길을 지나 담장 앞에 다다랐다. 담장은 언제나 아련한 그리움과 정겨움을 안겨준다.
우리 고유의 단아하고 정갈하면서 기품 있는 모습이다.
넓은 트랙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청년들과 어린이와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과 소풍 나온 가족들 곁을 지나
걷다 보니 어느새 예술의 전당 앞 분수대다.
날이 흐려서 노을은 찍지 못하고 딸이 보내준 네덜란드 일몰 풍경을 실었다.
소나무 숲길을 지나 담장 앞에 다다랐다. 담장은 언제나 아련한 그리움과 정겨움을 안겨준다.
우리 고유의 단아하고 정갈하면서 기품 있는 모습이다.
넓은 트랙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청년들과 어린이와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과 소풍 나온 가족들 곁을 지나
걷다 보니 어느새 예술의 전당 앞 분수대다.
7시 30분 예술의 전당
공연에 늦었다며 사람들이 마구 뛰었다.
뭔지 모르지만 나도 공연을 볼까?
공연 관람 끝나기 전에 마트는 문을 닫는다.
그렇게 되면
주중 폐점 할인 행사하는 생선과 고기를 사지 못한다.
갑자기 배가 고팠다.
남편도 배가 고플 것이다.
괜찮아 한 끼 굶는다고 죽지 않아!
모른 척하기로 하고 중식당 문을 열었다.
혼밥도 나름 괜찮았다.
저녁을 먹고 최대한 집에 늦게 들어가기 위해 천천히 걸었다.
아주 늦게 들어가 남편 속을 있는 대로 썩여주고 싶었다.
마트에 도착해서는 화장실로 들어가 손에 비누칠을 잔뜩 해 오래오래 씻었다.
시원찮게 작동해서 다른 날은 사용하지 않던 건조기에 손을 대고 뽀송뽀송해질 때까지 말렸다.
느긋하게 여러 층을 둘러보며 생각에 잠겼다.
편마비에 시각 장애 2급으로 적수가 되지 못하는 남편이었다.
그런 남편한테 지나치게 모질게 군 것은 아닐까? 우회적이고 부드러운 방법도 많았을 텐데.
그랬다. 다구나 식사를 굶기는 것은 엄연한 학대행위이다.
학대? 학대는 무슨 얼어 죽을!
비열함과 사악함을 고루 지닌 지극히 평범한 인간인 주제에 착한 척 하기는.
가출 이후 남편의 목욕 기피증은 완벽하게 치료되었다.
30. 귀맞추기
시어머니는 반드시 돈 귀를 맞추어 정리했다.
그런 어머니 밑에서 자란 남편도 그랬고.
시어머니는 그러지 않는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면서 그렇게 하라고 강요했다.
돈만 많으면 되지 않나? 아무튼 사람 괴롭히는 게 취미라니까.
신혼 때 한방에 데리고 자던
비인간적인 시어머니한테 거부감이 가득했기에 마음껏 흉을 보았다.
흉보면서 닮는다고 했던가.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나도 돈 귀를 맞추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두뇌가 명석하고 이재에 밝았다.
시어머니 젊은 날 시외버스 안에서 돈을 잃어버렸다.
나 같으면 울고불고 난리를 피웠을 텐데
시어머니는 내색하지 않고 한참 있다 운전사한테 다가가 귓속말로 부탁했다.
“소매치기를 당했으니 곧장 경찰서로 가주세요!”
경찰서 앞에 버스가 서자 어머니만 내리고 운전사는 아무도 내리지 못하게 얼른 문을 닫았다. 신고를 받은 경관 두 명이 버스에 올라왔다. 시어머니가 크게 말했다.
“돈 귀를 맞춰 세종대왕이 나란히 있는 백오십팔만 원이 제 돈입니다!”
그렇게 시어머니는 돈을 찾았다.
사랑할 수는 없지만 그 점은 무한 존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