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제주에서 만난 프로
미용장 대전 지회 워크숍이 제주에서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 장쾌하면서도 장엄한 일출을 감상했다. 제주 공항에 도착하자 일출의 기상을 닮은 밝고 희망찬 장년(長年)의 기사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중한 친절 때문인지 첫인상이 아주 좋았다.
3박 4일 동안 기사님은 약속도 칼 같이 지켜 더 신뢰할 수 있었고 추천하는 식당은 한 군데만 빼고 모두 맛집이었다. 지역 고유의 맛집 순례는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식당에 들를 때마다 기사님은 날랜 솜씨로 음식을 날라 우리가 즐겁게 식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호텔 관계자한테도 워크숍 진행에 차질이 없도록 수시로 체크했고 오름이나 박물관에서도 전 회원이 안전하고 불편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 송악산 둘레길 단애 -
긍정적이고 베풀기 좋아하는 기사님은 자기 관리도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제주의 지리적 문화적 특성과 토속어 유래를 공부해 상식 수준이 높았다. 버스에 오르면 지루할 틈 없이 유머를 선사했다. 우스개에는 고뇌와 노력이 빚은 인생철학이 담겨 있었고 재담에 이어 수준급 노래까지 선사했다. 작년 7월 도초도에서 만난 기사님도 멋졌는데 제주 기사님한테는 감동까지 받았다.
기사님은 제주 여행안내 프로였다. 프로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을 전문으로 하거나 그런 지식이나 기술을 가진 사람 또는 직업 선수이다. 미용계의 프로인 대전 지회 회원들과 기사님. 프로와 프로의 만남은 유쾌했다.
우리나라는 16,891의 직업이 있다. 어느 직업 어느 분야든 보석처럼 빛나는 프로들이 나라를 발전시키고 국민을 행복하게 만든다. 제주에서 만난 프로 기사님한테 다시 한번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36. 며느리가 시집 갔다
- - 며느리가 남긴 선물 -
남편에게는 중학교 때부터 76세가 된 지금까지 한결같이 친한 친구 여섯 명이 있다. 그중에서도 A와 가장 친했다. 첫 딸이 세 살 정도 되었을 무렵 남편이 눈을 내리깔고 말을 더듬거렸다.
남편에게는 중학교 때부터 76세가 된 지금까지 한결같이 친한 친구 여섯 명이 있다. 그중에서도 A와 가장 친했다. 첫 딸이 세 살 정도 되었을 무렵 남편이 눈을 내리깔고 말을 더듬거렸다.
“A의 부인이 난임이라 우리보다 먼저 결혼했는데 아이가 없어. 절친한 친구는 자식이 생기면 사돈을 맺고 자식을 못 낳으면 대신 낳아 우정을 다지는 일화가 있어.”
“그래서, 나더러 씨받이 하라고?”
“내가 A와 얼마나 친한지 당신도 알잖아?”
“가족보다 친구라? 그래 좋아, 당장 이혼해!”
남편의 지나친 오지랖과 달리 몇 년 뒤 A는 땋을 낳았다. 우리 큰아들보다 두 살 어린 A의 딸이 커서 말이 늘고 전화를 받기 시작했다. 남편은 호쾌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며늘아 시아버지다. 아버지 바꿔라.”
그럴 때마다 A의 딸은 흥, 시아버지는 무슨? 하며 몹시 기분 나빠했다. 아이들 초등학교 때 처음으로 A의 가족과 함께 스키장을 갔다. A의 딸은 우리 큰아들은 본 척도 하지 않고 막내만 데리고 놀았다. 참다못한 큰아들이 막내를 밀어내며 소리쳐서 우리를 한바탕 웃겼다.
“저리 비켜, 내 아내감이야!”
남편이 수업 중에 뇌출혈로 쓰러졌다. 의사가 그 밤을 넘기지 못한다고 했다. 친인척, 친한 친구들, 동료 교사와 임직원, 학부모, 대학 선후배, 각종 모임 회원들이 대학병원 응급실 복도와 중정을 가득 메웠다. A가 슬픔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리며 뛰어나갔다.
“지금 죽으면 친구도 아니야 이 나쁜 새끼야!”
A의 딸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다니게 되었고 큰아들은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미용사가 되었다. 일이 이쯤 되자 남편은 A의 딸을 감히 며느리라고 부르지 못했다. 큰아들에게 결혼할 여자친구가 생겼다. 아들과 같이 미용실을 할 때라 머리 하러 온 A 부부에게 큰아들 여자친구를 소개했다. 갑자기 A 부부 얼굴이 일그러지며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뭐야, 여전히 A의 딸이 남편의 며느릿감으로 유효했었다고? 뜻밖이었다. 진즉 의사표시를 하던가? 아니지 딸 가진 집에서 어떻게 말을 꺼내겠어.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크게 배신한 것 같아 감정이 아주 묘했다. 점잖은 A는 그날만 그랬을 뿐 큰아들 결혼식 주례를 부탁하자 흔쾌히 허락했다.
지난해 시월 A의 딸이 시집을 갔다. 우리 가족은 진심으로 축하했다. 예식이 끝나고 나오는데 하객들한테 꽃을 나누어줬다. 컵에 꽂아 식탁에 올려놓자 남편이 말했다.
“며느리가 꽃을 선물하고 시집갔네.”
37. 우선순위
회장님이 촬영한 사진
집에서, 대전에서, 육지에서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일출이었다.
예술복지재단에서는 일 년에 한 번 출판지원 신청을 받는다. 2023년 접수 기간은 2022년 12월 28일부터 16일간이고 미발표 작품 제출이 필수였다. 지원율이 낮을 것 같아 8년 전에 써놓았던 중편 소설을 퇴고하기로 했다. 16일! 부족한 기간은 아니었으나 1월 8일부터 11일까지 미용장 대전지회 제주 워크숍도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제주도 출발 전에 접수해야 했다. 열흘 동안 짐승처럼 씻지도 않고 현시점으로 완성한 소설을 인쇄했다. A4 용지 45장은 읽는 시간도 오래 걸렸고 어색한 문장도 많았으며 8년이라는 시대적 차이가 심각해 앞이 캄캄했다. 단편 2편을 선택할걸.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심혈을 기울여 퇴고한 다음 인쇄해서 읽어보고 고치고 또 인쇄해서······. 개미 쳇바퀴 도는 소설 고치기는 말 그대로 퇴고 지옥이었다.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1월 8일을 맞았다. 안 가면 되잖아! 남편은 쉽게 말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미용장 워크숍은 지난해 10월 월례회에서 결정한 사안이었고 하루는 제주 골프일정까지 잡혀있다. 어디 그뿐인가? 회원들은 지난 11월부터 12월 초까지 신춘문예에 도전한다고 모든 일정에 참석하지 못하는 나를 진심으로 응원하며 기다려주기까지 했다. 절대 티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무거운 마음으로 집을 나서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머릿속에는 문장들이 뭉게구름처럼 둥실둥실 떠다녔다. 일출 사진과 새빨간 먼나무 열매와 동백꽃이 흐드러진 제주 풍경은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던 문장들을 반 넘게 지웠다. 그런 데도 내 사고 체계는 틈만 나면 노련한 의사처럼 핀셋과 칼을 들고 잘못된 소설 부분을 집도하고 있었다.
회원 중 A는 왠지 거리감이 있었다. 한참 후배라 친해질 계기가 없었을뿐더러 갑부라는 선입견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그런 A가 도도한 이미지와 달리 운영진의 마음으로 회원들을 챙겨 많이 놀랐다. 직함이 높거나 성공한 사람에게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그 무엇이 반드시 있는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 비행기 트랩까지 가는 초만원 버스에 오르자 먼저 타고 있던 B가 서둘러 짐을 받으며 자리를 양보했다. 괜찮다고 사양하다 깜짝 놀라 잠깐! 하고 소리쳤다.
“언제 다쳤어?”
“선배님 쉿!”
B는 엄지손가락과 손톱을 짓찧어 검붉게 피멍이 들고 퉁퉁 부어 있었다. 다친 지 이틀은 된 것 같았다. B는 그 손으로 행사 끝날 때마다 사진 찍고 탁자를 정돈했던 것이었다.
단체 게임을 통쾌하게 진행하던 C를 비롯하여 스물여섯이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귀하디 귀한 3박 4일이었다. 일과 공부를 병행하느라 쪽잠을 자며 준비했던 미용장 시험에 대한 공감과 그로 인한 끈끈한 친밀감과 유대감, 깊은 배려, 기분 좋은 양보, 끊임없는 장난, 선을 넘지 않는 디스로 인한 유쾌한 웃음.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소극적이고 폐쇄적이고 옹졸한가 깨달았다.
어렵다고 시험포기하고 미용장 안 됐으면 어쩔뻔했지?
11일 밤 집에 도착하자 피곤이 몰려왔다. 짐만 풀고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16일까지니까 아직 여유는 있었다. 12일 눈뜨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아 그동안 정리했던 대로 온종일 퇴고했다. 오후 8시 드디어 소설을 완성했다. 이제 제출만 하면 된다. 복지재단 홈페이지에 들어가 로그인했다.
- 2023년 출판지원금 신청 접수는 1월 12일 오후 18시에 마감했습니다 -
16일간을 1월 16일로 기억한 어리석음이 빚어낸 참담한 결과였다. 달력에 마감일 표시를 했어야지! 후회하고 자책하느라 괴로웠지만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출판지원금은 1년 후에 다시 신청하면 된다. 하지만 제주 워크숍은 다시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 잘했어. 잘 갔다 온 거야. 모든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잖아.
워크숍 갔다 온 지 1달이 되어간다.
지금도 회장 구호(口號)를 따르던 회원들의 연호(連呼)가 귓가에 쟁쟁하다.
- 원팀 미용장 대전지회 파이팅!!! -
38. 아프냐 아프니까 청춘이더라.
며칠 전 여동생이 보내온 사진이다.
내가 저렇게 예뻤나? 당당하고 멋지게 살 걸!
대학 2학년 때 여동생은 고1이었다.
동작이 자연스럽고 촌스럽지 않아 마음에 든다.
이때의 나는 자존감이 바닥에 있을 정도로 많이 아팠다. 못생기고 미운짓만 한다고 다섯 살 때 외가에 버려져서 아팠고, 아버지 고향이 이북이라 친척 없는 것이 아팠고, 그냥 있어도 아픈데 집성촌 외가 친척 아낙들의 날 선 눈초리가 아팠고, 외할아버지한테 물려받은 막대한 어머니 유산을 외삼촌이 가로채서 더 아팠고, 빚더미에 앉은 편모슬하의 가난이 아주 많이 많이 아팠다.
누군가 말했다.
젊은 시절 아파서 지금 평온한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