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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권리

10. 욕망의 단계

by 글마중 김범순
크로아티아.jpg

크로아티아 류블랴나 성 니콜라스 성당 측면 출입문 부조


5월 23일 K의 눈빛이 점점 맑아졌다.


K의 눈빛과 의식이 맑아지면서

기쁨 대신 두려움이 성큼 다가왔다.


오른쪽 팔과 다리가 이상하리만치 무거웠기 때문이다.


너의 두려움이 맞았다.


K는 뇌출혈로 반신불수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살아만

있으면

된다던

너는

절망했다.


이래서 신은 욕심 많은 인간과 약속을 하지 않는다.


K가 회복할수록

너는 막내가 못 견디게 보고 싶고

밤낮없이 졸렸다.


독한 약을 복용하며 젖 뗀 지 열흘이 넘었는데 마르지 않고 배꼽까지 흘러내렸다.


너는 입원 병동 화장실에 가려고 문을 나섰다. 중환자실 화장실은 걸레 썩는 냄새가 심하게 나서 발 들이기 싫었다.


화장실에서 훌쩍거리며 유축기로 젖을 짜는데 어떤 아기 엄마도 젖을 짜서 버리며 울었다. 너와 아기 엄마는 울면서 짧은 근황을 주고받았다.


우리 막내는 아빠가 아파서 젖을 못 먹고

그 아기는 병에 걸려 젖을 못 먹고


너는 가슴이 너무 아파 간절히 기도했다.

그 아기도 얼른 회복해서 젖을 먹게 해달라고.


간호사들은 모든 일을 잘할 줄 알면서 성의껏 하지 않았다. 네가 외출한 사이 간호사가 석션을 하면 K 앞섶이 축축하게 다 젖고 석션기 줄도 배배 꼬여 대롱거렸다.


젊은 외과 의사는 뇌수술로 의식불명이 된 환자 머리에서 피 묻은 붕대를 벗겨내며 감정을 제대로 잡고 노래 불렀다.


J 스치는 바람에 - ♪♬

J 그대 모습 보이면♪♬


너는 그 외과 의사를 칭찬해야 할지, 흉봐야 할지, 이해해야 할지 감정이 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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