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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동훈 Nov 27. 2023

고3 담임 앞에서 재수를 말하다 1

종수는 우리 반에서 진지하게 수능 시험을 준비하는 몇 안되는 아이 중 하나였다. 뒤늦게 철이 들어 좋은 대학을 가야겠다는 일념 하에 3-1학기때부터 열심히 공부하던 종수는 2학기가 되어서 성적이 좀처럼 기대만큼 오르지 않자 많이 불안해 했다.


어느날 종수는 쭈볏쭈볏 나에게 다가와 상담을 요청하고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제가 목표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수능최저를 맞춰야 하는데 학교에서는 공부가 잘 안되는 것 같아요. 학교 분위기도 저랑 잘 안맞는 것 같고, 개인적으론 조용하고 차분한 집에서 공부하고 싶습니다. 수능이 얼마 안남은 만큼 수능에만 집중하고 싶어요. 가정 학습이랑 기타 사유로 출결은 제가 챙기겠습니다. 허락 부탁드립니다."


나는 내가 안된다고 하여 종수가 자기 고집을 꺾지 않을 것임은 알고 있었다.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직접 해봐야 한다. 그래야 후회도 안할 것이고 자기가 선택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원망도 안할 것이다.  한편으론 애가 얼마나 초조하고 절실하면 이렇게 나에게 쭈볏쭈볏 다가와 저런 말을 할까 생각도 들었다. 나는 가능한 범위 내에서 어떻게든 종수를 허락하고 싶었다.


"종수야 좋다. 니 뜻이 그렇다면 그렇게 하렴. 니가 열심히 하겠다는데 내가 어떻게 말리겠니. 그러나 수능은 선생님도 학창시절 경험해보니 무작정 많이 한다고 점수가 막 오르지는 않더라. 틀리면 틀린대로 왜 틀렸는지 스스로 분석해보고 어떻게 공부하는 것이 효율적인지 고민해 보는 것도 중요하단다. 그렇게 스스로 고민하고 분석하면서 실력이 오르는 것 같더라. 2학기 들어 점수가 1학기때만큼 오르지 않던데 뭐가 부족한지 매일 스스로 되짚어보면서 효율적으로 공부하면 좋겠구나. 얼마 안남은 기간이지만 그래도 효율적으로 공부가 진행된다면 성적은 계단 상승하듯 오를 것이라 본다. 행운을 빈다."   

  



이후 종수는 학교 등교하는 날은 최소화하면서 수능 준비에 매진하였다. 가끔씩 학교를 등교했지만 머무는 시간은 길지 않았고 이따금씩 공부는 잘되가고 있냐고 물으면 네잘되고있습니다 하는 씩씩한 답변만 받을 뿐이었다.


과연 잘되고 있었을까? 글쎄......아닌 것 같았다. 9월 10월 모의고사 성적표는 종수의 말이 거짓말임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담임 반 아이로서 나는 누구보다 종수의 수능대박과 성공을 기원하고 있었지만 갈수록 하향추세인 종수의 성적에 무의식적으로는 과연 될까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다고 국영수는 내 전공 분야도 아니기에 이렇게해라저렇게해라 조언할 수도 없었다.


이윽고 수능날이 되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능 감독은 늘 그렇듯 긴장을 많이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문제는 하루 종일 감독하다보니 내 체력이랑 허리가 박살난다는 것인데 그날도 수능 감독이 끝나자 긴장이 탁 풀리면서 온 몸이 피곤했다. 그래서 받은 수능 수당으로 집으로 가는 길에 일부러 육고기를 샀고 가족들과 같이 구워 먹으며 노곤해진 내 심신을 달랬다. 그런데 고기를 구워먹던 중 불현듯 수능 본 우리반 아이 중에 종수 얼굴이 떠올랐다.


누구보다 열심히 한 아이였는데. 과연 종수는 시험을 어떻게 치뤘으려나. 대..애...박...? 설마...?그래도 수능 최저는 맞춰야 하는데.....


그날..... 아이들 대부분은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정도로 정작 반톡에는 아무도 이야기가 없었다. 마치 수능 이야기가 금기어가 된 느낌이었다. 나는 여러분 모두 오늘 하루 수고했습니다 오늘 하루만큼은 푹쉬세요! 문자와 이모티콘을 날리고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답장해주길 바랬다.


그런데도 어느누구도 말이 없었다.


그렇지. 이런 날 아이들이 무슨 수능 이야기를 하고 싶겠어 이 바보야. 내 수능 때를 생각해봐. 지긋지긋하게 공부하던 책들 불태우고 싶은 마음까지 있지 않았니? 소식이 궁금하더라도 진득하게 기다려봐 어차피 내일이면 다 알 수 있을텐데 말이야.        


나는 그렇게 다음 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과연 종수는 어떻게 되었을까?


다음 날 아침.....종수는 다른 아이들처럼 일찍 학교를 등교했다. 아침 조회를 들어가는 순간 나는 누구보다 종수의 얼굴이 밝기를 기대했건만 정작 종수의 표정은 어두워보였다. 이미 그의 표정이 모든 결과를 말해주고 있었다.


아......종수에게 수능 이야기를 어떻게 꺼낸담.....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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