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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푸름 Jul 27. 2021

목을 꺾어 위를 봐요

익숙함에서 벗어나야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고개를 들었더니 별이 보이길래 자전거를 탔다. 6년 만이었다.


 나에게 밤산책은 일과이다. 밤산책을 하며 달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예쁜 달은 고개를 살짝만 들어도 잘 보인다. 그는 나에게 목을 꺾어 위를 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밤산책을 할 때 목을 꺾어 위를 올려다보지 않았다.


 걷고 있는데 목이 아파서 목을 한 번 꺾었다. 나의 눈이 나의 정수리의 자리를 빼앗았고, 눈 속에는 나의 정수리가 숨기고 있었던 것이 들어왔다. 다시 눈과 정수리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내가 본 것이 별이 맞나, 확인해보려 한 번 목을 꺾었다. 별이 맞았다. 옆에는 별 두 개가 더 있었다.


 평생을 도시에서 자랐고, 시골에 사는 친척조차 없는 나에게 별은 원래 거의 없는 것이다. 전혀 없는 것이 익숙한 밤하늘이고, 많아야 하나, 둘, 셋 정도 있는 것이 전부이다. 달의 목소리는 잘 들린다. 그의 목소리는 누구나 쉽게 들을 수 있다. 그러나 별의 목소리는 비밀스럽다. 꾸역꾸역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작은 속삭임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부터 별의 목소리를 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자전거를 타기로 결심했다.


 중학생이었을 적에, 자전거를 타다가 크게 사고가 날 뻔한 적이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다리가 까지고 자전거 체인이 나간 것이 전부였지만, 순발력이 조금만 더뎠어도 정말 크게 다쳤을 사고였다. 자전거를 보면 그 장면이 떠올랐고, 거의 매일 끌고 다니던 자전거는 나에게 한순간에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그때부터 오늘까지 자전거를 탄 적이 없었다. 공포심 때문은 아니었다. 공포심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만져지지 않을 정도로 사그라들었다. 내가 그에게 다가가지 않은 것은, 이제는 그저 그를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익숙한 일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서울에서는 이곳저곳에서 따릉이가 보였기에, ‘자전거 다시 타볼까’하는 생각은 종종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긴 했다. 그러나 6년이라는 질량을 지닌 익숙함의 관성은 꽤나 강력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오늘은 별을 보았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잘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었다. 잘 들리지 않는 소리는, 한 번 들으면 더 자세히 듣고 싶어진다는 매력이 있다. 그리고 더 많은, 익숙하지 않은 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게 만든다. 그렇게 나는 서울에서 열여덟 차례의 삭망월을 맞이한 후에야 처음으로 따릉이를 만져보았다.


 밤산책을 위해 한강에 걸어가는 것은, 조금 멀다. 그렇다고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은, 밤산책의 의미를 무색하게 한다. 그렇게 내린 결론이 ‘어느 날에도 한강은 가지 않는다’였던 것은 참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전거로는 10분 정도면 강변에 닿았다.



 달리는 자전거 옆으로 스치는 밤의 한강은 윤슬의 연속이었다. 저기 강 너머로 보이는 대량생산된 건물의 수만큼이나 윤슬의 수도 많았다. 윤슬 보는 것을 참 좋아한다. 그렇지만 낮의 윤슬은 햇빛을 담은 반면, 밤의 윤슬은 달빛이 아닌 건물빛을 머금고 있다는 점은 조금 아쉬웠다. 이나나 저나나, 찰랑이는 물빛이 아름답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천천히 자전거를 타며 검정치마의 새 앨범을 들었다. 시원한 강가의 바람과 잔잔한 노랫소리가 어우러져 분위기는 선선했고, 눈앞의 강은 참 아름다웠다. 오늘 나는 목을 꺾어 위를 보았고, 별이 보이길래 자전거를 탔다. 익숙함에서 벗어나야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Inspiration

"목을 꺾어 뒤를 봐요. 잊고 싶은 일들이 한가득 있어." - 쏜애플 <2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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