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과 여행을 떠나는 것의 공통점
여행을 그렇게까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어렸을 적에는 부모님을 따라 캠핑도 가고 견학 식으로 이곳저곳을 가곤 하였지만, 중학생 때부터는 나들이 횟수도 줄었고, 고등학생 때에는 여행을 간 기억이 없다. 학교에서 수련회를 간 것을 제외하자면 정말 아무 곳도 가지 않은 듯하다. 그나마 어렸을 적 여행을 간 것도 오로지 국내 여행뿐이었다. 친구들에게 말하면 놀라곤 하는데 공항 한 번 가본 적도 없다.
‘원래 놀아본 사람이 더 잘 논다’라는 말과 비슷한 맥락일까. 나름 낭만이 넘치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왜인지 여행에 있어서는 낭만이 없는 사람이었다. 친구들이 ‘여기 너무 가고 싶지 않아?’ 했을 때에, ‘오 그러네~’ 정도의 반응은 보였지만 사실 그렇게 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러나 여행에 대한 ‘강박’은 항상 있었다. 세상은 넓고, 내가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한 나의 손에 닿는 세계는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나의 시야는 내가 넓혀 나갈 수 있고, 넓혀 나가야만 한다. 넓게 펼칠 수 있는 나의 지도를 펼치려 하지 않는 것은 손해인 것만 같았다.
한편으로는 두려움도 자리하고 있었다. 나의 시야가 좁아질 것 같다는 두려움. 벌써부터 좁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조바심. 시야를 넓히고 싶다는 나의 욕구를 해소하기 전에 마음이 먼저 닫혀버리진 않을까 하는 걱정.
그래서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꼭 해외에도 나가 보아야지’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렇게 대학생이 된 지난해, 여름 즈음에는 기필코 해외여행을 가고야 말겠다, 하고 생각했다. 이후의 상황은 설명이 없어도 모든 사람이 알고 있을 이야기이겠다. 그때로부터 한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해외여행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새로운 여행지를 가는 것은, 특히 한국 바깥으로 나가는 것은 분명 아주 신선한 경험일 테다. 내가 매일 감각하는 것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매일 감각하는 것은 결이 완전히 다르다. 게다가 각자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나 손끝에서 나오는 글자의 형태도 다르다. 인간의 사고에서 언어가 작용하는 힘이 막대하다고 생각하는 나에게는 더더욱 새콤하고 상큼한 사고의 확장을 제공할 것이다.
나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 일상인 사람들! 내가 구현하지 못하는 사고 체계에 익숙한 사람들!
갑작스레 그리스가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중해에 인접한 그리스의 도시들. 인스타그램 피드를 내리다가 우연히 지중해 해안가 사진을 마주했고, 그것이 나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바다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밝은색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신비로운 푸른빛 바다와 새하얀 건물. 새하얀 건물 위에는 푸르른 바다를 굳혀 만든 것이라도 되는 듯한 채도 높은 청색 지붕. 쨍한 햇볕을 받아 왠지 모르게 ‘고슬고슬하다’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곳. 푸른색 위에 얹힌 흰색 그리고 흰색 위에 다시 사뿐히 올려진 푸른색의 조화가 너무나도 곱다.
나에게는 흔치 않은 종류의 끌림이었다. 사실 처음 느껴보는 끌림이었다. 이전까지는 ‘어떤 곳이 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오로지 한 가지 이유에서였다.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이 파리였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오르세 미술관과 퐁피두 센터가 있기에. 그다음은 뉴욕이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있기에. 그저 ‘그곳의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다’를 이유로 마음을 빼앗긴 것은 처음이었다.
궁금해졌다. 나는 단 한 번도 목격하지 못했던 것을 매일 보고 사는 그곳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나에게는 너무나도 새로운 것이 너무나도 익숙할 사람들! 그러는 동시에 문득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여행과도 같은 일이었구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내가 여태껏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일상으로 삼아온 사람과 만나는 것이다. 완벽하게 똑같은 삶을 살아온 사람은 존재할 수 없다. 감각은 흑백이 아닌 스펙트럼이기에 같은 공간에 있다고 해도, 같은 자극을 받았다고 해도, 감각기관이 반응하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따라서 완벽하게 똑같이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최근 들어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을 직접 만나게 되는 일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이전까지 만나는 사람들은 ‘함께 엮여 있는 공동체가 또렷하다’라는 공유점이 있었다. 그 공동체는 대개는 ‘학교’였다. 그렇지만 사실 ‘함께 엮여 있는 공동체가 또렷하다’라는 공유점 외에는 아는 바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너무 소중한 사람들도 여럿 만났지만, 공유 관심사가 너무 달라서 금방 흐지부지된 관계도 여럿 있었다.
그러나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를 통해서 또는 블로그에서의 꾸준한 교류를 계기로 만난 사람들은 조금 다르다. 애초에 그렇게 알게 된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관심사를 공유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관심 분야가 겹친다는 것 말고는 나와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다. 나와는 다른 것을 감각하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이러한 배경적 차이는 정말 아름다운 서사를 조립해준다.
기본적으로 관심 분야는 비슷하지만, 나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에 너무나도 익숙한 사람들. 물론 그들에게도 나의 ‘평상적인’ 생각은 상당히 새로운 것일 테다. 관심사를 공유하고, 그것을 대하는 관점의 결도 비슷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완전히 새로운 것이 넘쳐난다.
더욱이, 만남의 매개가 ‘인터넷’이 되었던 사람들이므로, 만나기 이전에 서로가 ‘안전한’ 사람인가를 확인하는 과정을 수도 없이 거친다. 그렇게 그 사람과 만나기 전부터 내적 친밀감을 쌓아 두게 되고, 이후 실제로 만났을 때 느끼는 반가움에는 새콤한 낯섦과 달콤한 친밀감이 공존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쌍방향 여행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가면 나는 잔뜩 영향을 받고 올 것이다. 하지만 내가 여행지에 줄 수 있는 영향은 거의 없다. 그러나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상호작용이다. 내가 그에게 영향을 받는 것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나 역시 그에게 영향을 주고 올 것이다.
여행을 다녀오며 느끼는 감정에는 감사함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나 신선한 경험을 해주게 한 새로운 공간에 대한 감사함! 하지만, 너무나도 감사하지만, 내가 그 신선한 공간에 줄 수 있는 영향은 아주 미약하기에 어쩌면 무력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을 만나는 일은 그렇지 않다. 특히나 그 사람이 새로운 사람에 열려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러니 저와 만나는 사람들! 제가 당신을 여행할 수 있게끔 해주세요. 당신이 체험한 것들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며 저의 사고의 폭을 넓혀가고 싶습니다. 물론 저 역시도 당신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새 사람은 여행이어라! 당신이 제게 줄 새로움을 기다리고 있어요. 당신도 저에게서 새로움의 새콤함과 익숙함의 달콤함을 마음껏 맛보고 가시길.
새로운 사람은 여행이어라!''
아트인사이트 원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30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