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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파스 Y Jun 06. 2022

대한민국 건축가 승효상

아나키스트를 꿈꾸는 수도승

나는 솔직히 그분에게 직접적으로 배운 적이 없다. 직접 대화를 나누거나 만난 적도 없다.(페북 친구가 된 것이 내 유일한 자랑이다) 그러나 17년째 그분이 쓴 책을 곁에 두고 읽고 있는 사람으로서(유학 나올 때 선생의 책을 제일 먼저 챙겼다) 그분에게 배운 것이 없다 할 수 없다. 프랑스 건축을 배우기 전의 두려움을 선생의 책을 읽으며 달랬고 파리에서 이방인으로 건축을 하며 누군가 나에게 한국의 건축 철학은 뭐냐 물었을 때 대답할 수 있는 것은 그분의 생각과 철학이 전부였다. 그래서 혼자 소심하게 그분을 선생이라 부른다. ‘건축을 무기로 활동하는 아나키스트’ 나는 그분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처음에 지은 작은 주택 ‘수졸당’, 그 주택이 지어지기 위해 피나는 물음 끝에 나온 대답과 선언이 담긴 작은 책 ‘빈자의 미학’ 후에 쓰신 ‘지혜의 건축 지혜의 도시’. 나는 그 집과 책을 좋아한다.

밤을 지새며 흔들리는 순간마다 나를 지탱해주던 고마운 글들이다. 한 사람의 건축에 대한 탐구과정을 알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고픈 책이다.


건축을 문화의 가치로 승격시키는데 선생이 기울인 노력과 헌신은 그 인생 거의 전부였으며 그 당시 나를 비롯한 젊은 건축학도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 듯한 선생의 글과 철학은 수많은 추종자들을 양산시켰다.


필요 이상의 물질을 비우고 철학을 담은 공간. 적어도 선생의 책과 건축을 접한 나에겐 그야말로 시적 건축의 시대가 열리는 듯했으며 건축 공간의 구성 영역은 벽, 슬라브, 기둥을 떠나 날씨, 풍경, 사회, 철학에 이르는 비물질적 영역까지 갔다. 요 근래 마친 소울스케이프라는 이름의 선생의 스케치 전시회도 더욱 확고해진 그의 생각과 철학을 감상하기에 충분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파리에 사는 관계로 사진으로 언뜻 본 것이 전부라 그간 선생의 철학에 비추어 본 나의 상상임을 밝힌다)


그러나 하나의 가치에만 너무 많은 묵상을 해서일까? 아니면 정말로 선생이 만든 빈자의 미학이 절대적 참 선이라고 믿는 것인지 무튼 선생의 공간과 철학에 이념이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내가 느꼈던 감동이 조금씩 사라져 가고 있음을 느꼈다. 거창하지 않고 소소하며 검박한 공간을 추구하는데 과연 정치적 도움이 그리 많이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다.

수도승처럼 스스로를 절제하는 건축가라 말하지만 선생이 앉았던 국가적 자리는 결코 아나키스트는 앉을 수 없는 자리다. 더구나 선생의 신념을 정책을 통해 실현하려는 순간 선생은 스스로 건축가라는 자리로부터 자유로워져 건축가도 정책가도 아닌 진정한 아나키스트가 된 것일까?


선생은 종종 건축가를  수도승의 삶과 연관 짓는다. 모든 욕망 체계를 스스로 부인하고 말씀의 길을 걷는 수도승처럼 선생 자신의 신념과 철학을 위해 건축주 개인의 욕망을 철저히 부인하는 모습을 살고자 한다. 그래서 건물은 개인이 아닌 공공재라 하신다.

그러나 과연 한 건축가의 철학이 건물을 통해 꿈을 이루려는 사람의 소망보다 앞설 수 있을까?

죄악 된 인간의 본성을 율법에 비추어 바로잡고 심판하는 것은 있으나 어디까지나 하나님 말씀에 대한 자발적 순종을 선으로 여긴다.


스스로 의인이라 칭하는 사람이 의인일 수 없듯이,

스스로 가난해질 줄 아는 사람은 진정 가난한 사람이 아니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수도승은 자신의 삶은 절제하고 통제할지언정 타인의 삶에 그 절제를 강요하진 않는다. 그저 살아갈 뿐이다. 수도승의 언어는 말이 아니라 삶이다.

삶을 조직하고 다루는 건축가의 언어는 공간이다. 타인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는 건축가의 언어는 공간이지 정치적 신념이 아니다.

정치는 건축에 관심이 많고 늘 도구처럼 사용하려 할지라도 그간 선생의 책에서 보여준 생각과 철학에 비춰보면 어떤 성향이든 도구로 사용되는 것에 저항해야 한다. 난 그렇게 믿고 있다.

전 대통령과 개인적 연고도 있고 사저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과 기념관을 설계한 선생의 행보는 아나키스트도 수도승도 아니었다. 국가적 프로젝트에 늘 선생이 있는 한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도구로 쓰였다는 선생의 스승 김수근과 같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니었나. 거절을 한다면 충분히 거절할 수 있는 힘이 있는 분이다. 거절했다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을 거고. 선생이 말했던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자유는 오히려 배척당할 시절에 더 누렸던 것 아닌가?

빈자의 미학은 선생을 향한 선언이 아닌 결국 남을 향한 선언이었나... 나는 묻고 싶다.

쇳대박물관의 승효상과 양산 사저의 승효상이 서로 다른 건축가로 보이는 건 나의 배움과 식견의 부족이리라.

그렇게 내 마음에서 소리 없이 무너져가는 선생의 글들 속에서 홀로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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