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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Y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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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파스 Y Sep 23. 2022

현상을 진행하며

왜 건축 선진국인지 알 수 있는 비교체험 극과 극

생전 현상 공모 안 하던 회사였는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현재 갑자기 불어난 현상공모 덕분(?)에 오래간만에 머리가 말랑말랑 해지는 기분이다. 건축사 취득 이후 뒤통수에 PM 직 하나 달고 늘 예산과 씨름하며 진행시키는 인허가와 실시단계에서 잠시 벗어나 아름다운 가치와 신박한 아이디어에 집중할 수 있는 현상 공모를 맡게 된 것은 몸은 조금 고되고 힘들어도 실상에 찌든 머리를 잠시 식히며 건축학도 시절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점에서 순수하게 건축을 다룰 수 있는 기회다.


그러나~! 초반에 아주 잠깐 누린 자유와 달리 지금 공모전에 출품하는 작업은 인허가 단계의 디테일과 계획이 수반되고 있고 엔지니어, 설비, economist(한국말 까먹음ㅋ)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으로 진행하고 있어 예산과의 전쟁뿐만 아니라 공조, 기계를 들이며 정말 당선 이후 바로 지을 수 있는 수준으로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뭐 회의도 그만큼 자주 있지만..


자연스레 드는 생각은 한국에서 현상공모에 참여할 때와 현재 파리에서 현상공모에 참여하는 것은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현상공모는 뭐 그냥 자문을 구할 수는 있어도 어디까지나 설계사무실에서 A부터 Z까지 하는 실정이다. 아무리 공부하며 한다 해도 놓치는 부분이 많고 당선 후에 들어가는 시공사 선정과 다른 전문가 선정을 한 후 지어지는 건물은 당선될 당시의 계획안과 너무나도 다르고 정말 '뜨악'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다른 여러 이유가 있지만 다 제치고 당선이 돼서 순수 도면 갖고 시공 들어가면 반드시 예기치 못한 변경이 늘 있었다. 생각보다 공조시설이 크던가, 기계실 크기가 작던가... 그러면서 처음 의도한 공간은 점점 없어진다. 이 녀석이 내가 그린 그 녀석이 맞나.. 고개를 갸우뚱 거리지만 '그래도 지어지는 게 어디냐...' 하며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진행한다... 그림과 완공 후 건물의 모습은 너무 다르다.


건축인들이 가장 많이 보는 Archdaily에 이름을 올리며 데뷔전 치고 나름의 기염을 토해낸 작업이었다. 한국에서 첫 대학원 여름방학을 갖다 바치며 얻은 귀한 결과였다.
완공된 결과물은... 정말 주옥같다.. 벽면의 기울기에 맞춰 기울어진 기둥이 아닌 수직기둥이 세워지고.. 지면에서 지붕까지 하나로 잇겠다던 설계 개념; 뫼비우스 띠는 어디?



단순히 둘러싼 환경이 다른 것이 아니라, 계획부터 들어가는 시작이 다르다. 될놈될만 건물을 짓는 우리나라와 다르게 프랑스는 모두가 될놈될이고 그중에서 뽑히는 정말 된 놈만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곳이다. 그 말은 디테일과 계획단계의 수준이 비슷하고 누구를 뽑아도 바로 지을 수 있는 수준을 모두 다 갖추고 있다는 얘기.

그래서 계획안과 결과물이 똑같다. 중간에 설계변경은 어디까지나 실내공간의 실 크기 정도지 용도변경에 의한 계획 변경은 있을 수 없다. 왜냐면 설계회사에서 선 긋는 순간 바로 입금해야 하기 때문.


소장이 직접 접수하고 이리저리 뛰며 공모 막판까지 정신없는 한국과 달리, 프랑스는 Promoteur(한국말로 기억이ㅠㅠ) 건축, 엔지니어, 예산   팀을 모은다. 설계회사는   하나이고 설령 공모가 떨어져도 돈을 받는다. 왜냐 Promoteur 돈을 주고 팀을 모으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선되 낙선되 공모 참가해도 사무실을 그럭저럭 굴릴  있는 곳이  프랑스다. (조건은 Promoteur  끼고 있어야 ) 암튼 개꿀...


건축은 철저하게 협업 위주인데 왜 한국은 모래알처럼 잘 뭉쳐지질 않을까... 생각도 해보고..


최근 한국에서 시, 도, 군 주체로 공공건축물에 대한 현상공모가 많이 나서 젊은 건축가들에게 기회를 준다는 점은 참 좋지만 그 결과물에 있어 밀려오는 씁쓸함은 감출 수가 없다. 각 도시를 대표하는 공공건축의 수준이 미달인데... 뭐 이유야 찾자면 얼마든지 있고 그 이유들 중엔 분명 합리적인 이유도 꽤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몇십 년 전부터 이어져온 그 시스템 그대로는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실무에 나간 이들이 하고 있는 건물을 보면 솔직히 사진만 보고도 우리나라에 있는 건물인지 아닌지 단번에 맞출 자신이 있다. 그만큼 정형화된 시스템 안에서 나오는 건축의 한계가 너무나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회사를 가지 않고 졸업과 동시에 회사를 창업하겠다는 예비 건축가들이 많이 늘고 있다고 한다. 정말 환영할 일이고 응원받아 마땅할 일이지만... 본인이 원하는 일만 하기 위해 창업을 한다는 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손해다.

지금과 같이 누군가는 나서서 해결을 해야 하는 일은 서로 안 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럼 그 일은 관료들이 가져가서 자기들 원하는 대로 정형화할 것이고 그럼 건축문화의 쇠퇴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 쓴 글이라 결론은 없다. 이제는 한국 건축계에서도 난 이방인이다. 그리고 지금은 나도 한국의 실무보다 프랑스의 실무가 더 익숙하다. 그러나 인스타나 페북으로 접하게 되는 친구들의 홀로서기 과정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 암담한 현실 속에서 어떻게든 자기 디자인을 지켜내려는 그들의 모습을 늘 응원한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두렵다. 혹시라도, 만약 나도 한국에서 건축을 하게 될 때 그동안 내가 지켜온 철학과 신념이 변하게 될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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