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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춤추는 대 수사선

춤추듯 움직이는 삶의 굴곡에서 관철되는 삶의 의지

by 에스파스 Y Jan 1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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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쩍이는 화려한 조명 아래 젊은 남녀가 정신없이 춤을 추고 있는 클럽 안, 웃음기 없는 남자들이 한 사람을 응시한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눈앞에 두고 모두가 조심스럽게 그를 응시하며 현장검거를 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

바로 그때, 한 편에서 정체 모를 남자에게 두들겨 맞는 여자를 발견!


"여기는 현장의 아오시마, 현장에서 폭행사건 발견! 바로 조치 들어가겠습니다!"

"잠깐 안돼! 움직이지 마!"

"하지만..!!"

"아오시마! 지금은 살인사건을 쫓는 게 먼저야! 작은 사건은 나중으로 미뤄도 되잖아!"


망설이던 아오시마, 맞고 있던 여자와 눈이 마주치고 끌려가는 모습을 보자 무전으로 들려오는 명령을 뒤로하고 본능적으로 폭행범에게 달려든다.


사람들이 이목이 집중되고 현장은 아수라판, 쫓던 범인은 이 현장을 목격하고 그 길로 도주...

결국 범인을 놓치고 말았다.


본청의 수사과 형사들이 아오시마를 나무란다.

"너 때문에 놓쳤잖아!! 그딴 폭행범쯤이야 나중에라도 잡으면 그만이잖아!!! 역시 너희 같은 관할서와 일을 같이 하면 안 되는 거였어!!

 

"모두가 똑같이 위급한 사건입니다! 사건에 경중이 어딨습니까?"





소매치기부터 스토커 그리고 살인범까지.. 오다이바에 있는 완간서에는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하나의 거대한 수사선을 그었지만 여러 가지 사건이 수사선 위에서 요동을 친다. 그 모습이 마치 춤을 추는 듯이 보인다. 그야말로 춤추는 대수사선이다.

당장 출동을 위해 차량이 필요하지만 신청서 작성은 필수, 잠복을 위해 사용되는 물품도 정해진 기한 내에 사용해야 하고 조금이라도 늦어질 경우 사유서 제출은 필수.


그렇다.. 액션과 추적에 가려져 있지만 엄연히 공무원 조직이다.

여러 가지 관료주의적인 조직 분위기가 있지만 그들이 맡는 사건은 늘 첨단을 추구하며 급박한 상황은 그들처럼 체계를 따지지 않는다.

따라서 사건을 맡은 현장 담당 형사들은 자유롭고 창의적인 수사를 펼치려 하지만 윗선이라 불리는 조직의 수장들은 이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더구나 큰 건만을 해결하여 실적을 쌓아 진급하려는 그들의 모습은 정의구현에 힘쓰는 경찰이 아닌 일반 회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컴퓨터 회사의 영업부 출신인 아오시마는 실적만을 쫓으며 정의도 멋도 없는 직장을 떠나 자신의 신념을 쫓으며 일을 하기 위해 경찰이 된다. 자유롭게 신념을 지키고자 경찰이 됐지만 더 많은 제약과 절차가 늘 그의 발목을 붙잡는다. 그것이 규칙이고 그 규칙을 지키며 자신의 신념 또한 지키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아오시마는 언제나 자신만의 규칙을 지킨다. 설령 현실의 규칙을 깰지언정.

'정의를 행하며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돕는다.' 이것이 아오시마의 정의.

물론 아오시마도 화려한 사건 위주로 담당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 또한 아오시마의 정의 ⓒ넷플릭스물론 아오시마도 화려한 사건 위주로 담당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 또한 아오시마의 정의 ⓒ넷플릭스


1997년에 만든 이 드라마는 전체적인 내용을 보면 다소 진부할 수 있다. 그러나 시리즈를 보는 내내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는 기분과 향수를 동시에 느꼈다.


손으로 쓰는 보고서, 지금은 구경도 못하는 플로피 디스크, 집에 배치된 유선 전화기, 뚱뚱한 모니터 등 각각 소품이 주는 향수 속에서 세기말,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과도기에서 겪는 작업방식의 변화. 그 변화에 힘겹게 적응해 나가는 이전 세대. 변화를 꿈꾸나 관료주의에 번번이 부딪히는 젊은 세대.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기도 바쁜데 변화에 적응을 해야 하며 나와 다른 정의를 가진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나만의 정의를 세우는 것도 바쁜데 다른 사람의 정의와도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고?





우리의 삶에서도 많은 일이 일어난다. 마치 세간의 사건처럼 하루에 한 가지 일을 하기에도 벅찬데 꼭 안 좋은 일들은 한꺼번에 일어난다.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하필이면 꼭 준비도 안된 상황에서,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는 와중에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갈피를 잡지 못해 답답한 마음에 누군가에게 물어보면 그들은 늘 간단하게 답을 내린다. 이것저것 따져봐도 중요한 일은 크고 급한 것 아니겠냐며 사소한 일들은 뒤로 미루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내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크고 작고를 떠나 나에게 영향을 주고 모두가 다 소중하고 잘 해내고 싶은 마음뿐이다. 왜냐면 그 일들이 나의 삶을 이루기 때문이다.


실은 간단하다. 이럴 때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그만이다.

일은 여러 개 손이 두 개뿐이라면 그저 다른 사람의 도움을 구하면 된다. 그리고 나 또한 남을 도우면 된다.

너무 당연하다 못해 진부한가? 이 드라마가 그렇다. 요즘에 보면 진부하기 그지없지만 왜 향수에 잠겼을까?

어쩜 당연한 것을 특별하거나 다행으로 여기는 세상 가운데 있어서 그렇지 않을까?

도움 받기도 도와주기도 싫은 삶. 혼자서 고립되고 적당히 타협하고 스스로 한계를 그어 그 안에서 사는 삶에 익숙해져 버린 우리에게 머리로는 뻔히 알지만 정작 삶 속에선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는 드물지 않은가?





"아오시마!! 그렇다면 방금 또 놓친 범인은 어떻게 할 거야!!"

"...."


그때 멀리서 범인을 잡고 등장하는 완간서 경찰들. 스미레 형사가 말한다.

"우리는 비록 관할서지만 본청 분들 보다는 도시의 지리에는 도가 텄으니까, 클럽을 나올 이 녀석이 도망칠 루트 또한 쉽게 유추할 수 있었죠."


본청의 형사는 민망함에 소리를 높인다.

“그 녀석은 우리 담당이야! 관할서는 이제 빠져!”


30년 경력의 곧 은퇴를 앞둔 와쿠 형사가 이어 말한다.

"자 그럼 여기서 범인을 서로 교환하죠, 폭행범은 완간서로, 살인범은 본청으로 데려가는 것으로 말이죠."


완간서의 동료들은 사건의 경중이 없다는 아오시마의 정의를 인정하고 임무기간 동안만 본청 소속으로 일하는 그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고자 자발적으로 안 해도 되는 수사에 참여한 것이다.


이런 모습은 여러 에피소드에 걸쳐 각각의 동료를 위해 서로 돕는 모습이 나온다. 에피소드를 통해 여러 사건들을 떨어뜨려 다루고 있지만 시리즈를 이어 보면 커다란 개연성을 갖는다. 이 개연성을 통해 완간서의 거대한 수사망에 올라온 여러 가지 사건들을 해결하며 완간서 경찰들 또한 커다란 유대감을 갖게 된다.


춤을 추듯 요동치는 나의 삶의 풍파 또한 어딘가 모르는 거대한 수사선에 올라온 하나의 사건 아닐까?

왜냐면 삶은 결코 혼자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령 본인이 혼자라고 생각해도 분명 어디선가 유대감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진부하지만 한 마디 해보자. 타인의 삶에도 관심을 갖고 그 삶을 존중하며 필요한 도움을 채워주자. 우리의 삶의 사건은 각각이지만 함께 사는 세상인 만큼 개연성도 있기 때문이다.


진부한 내용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나왔던 1997년의 드라마는 주로 이런 내용들이다.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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