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은 Nov 25. 2020

충족될 수 없는 결핍 - <더 랍스터>



 플라톤에 따르면 사랑의 신 에로스는 풍요를 갈망하고, 빈곤한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또한 그 결핍을 만회하려고 하는 욕구를 작동시켜 에로스는 부족한 것에 대한 갈망, 부족한 것을 채우려는 욕구로 정의된다. 인간은 유한성과 허무함을 극복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완전하고 무한한 존재가 되기를 희망한다. 사랑이라는 욕망 또한 결핍에서 기인한다. 사랑이 강요되는 사회에서는 사랑하지 않을 권리에 대한 결핍이 생긴다. 반면에 사랑을 금지하는 사회에서는 사랑할 권리에 대한 결핍이 발생한다.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노력하더라도 완전하고 무한한 존재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은 규범 속에서 결핍을 느낀다. 어떠한 체제도 인간의 욕망을 완전히 충족할 수는 없다. 끊임없는 결핍 속에서 욕구를 최대한 충족시키고, 동시에 사회를 존속할 수 있는 방법은 사회의 규범이 된다. 그 결과로 자리 잡은 규범은 이성애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이다. 여성과 달리 생산 능력이 없어 존재에 위협을 느낀 남성들이 자신들의 지위를 강화해 생존, 번식의 욕구를 최대한 충족시키는 체제이다. 

 <더 랍스터>는 이와 같은 사회의 규범을 극단적으로 강화하여 현 사회의 기괴함을 나타낸다. 동성애자를 위한 선택지도 존재하지만, 영화는 이성애자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커플들의 사이가 멀어졌을 경우 아이를 통해 관계를 회복한다는 점에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지향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정 기한 내 커플이 되지 못하면 동물로 변하게 되는데, 이는 누군가와 성애적 사랑을 하지 않는 상태가 완전하지 않으며 무언가 부족한 상태라고 정의하는 현 사회의 일면과 유사하다.


 주인공은 45일 내에 커플이 되지 못했을 경우에 될 동물을 랍스터로 고른다. 랍스터는 영화에서 말하는 인간의 결핍 충족 욕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생명체이다. 랍스터에게 노화, 자연사는 없으며 죽을 때까지 성장과 번식을 반복한다. 영생과 끊임없는 번식 능력을 가진 랍스터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하는 이상적인 존재로 보이지만 랍스터의 평균 수명은 그리 길지 않다. 랍스터는 보통 다른 생명체에게 잡아먹히거나, 반복되는 탈피 과정에서 두꺼워진 자신의 껍질을 감당하지 못해 죽는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랍스터는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를 상징하고 있다. 영생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외부적 요인에 의해 죽는 랍스터의 모습은 어떤 방식으로 노력하든 결핍의 완전한 충족은 불가능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영화는 결핍을 충족하기 위해 만든 체제가 역설적으로 사람들에게 더욱 결핍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보이고 있다. 인간의 결핍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려는 태도가 부재한 채 단순히 현재의 체제를 유지하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대부분의 철학에서 사랑은 자신과 차이점을 가진 타인에게 느끼는 감정으로 정의된다. 대개 자신에게 결핍된 것을 충족한 타인을 갈망하는데, 영화 속 사회는 커플을 빨리 만드는 것에만 집중하여 공통점을 찾게 한다. 타인에게서 자신에게 없는 부분을 찾는 데는 많은 관찰과 노력이 요구되지만 단순히 공통점을 찾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공통점만을 좇아 이루어진 관계는 결핍에 대한 충족을 주지 못한다. 그들 사이엔 오직 공통점만이 남을 뿐이다. 이는 사랑의 본질도 잊은 형태일뿐더러 인간의 존엄성을 잊은 듯한 양상이다. 동물이 되길 두려워하여 커플이 되었지만 이미 동물처럼 번식, 생존에만 의의를 두어 마치 짝짓기를 보는 듯하다. 

이에 대항하여 만들어진 숲 속 사회도 극단적인 방향으로 구성된다. 어떠한 욕망은 그 자체만으로도 사회 체제에 위협을 가하지만 숲 속 사회는 욕망에 기반을 둔 반항이라기보다는 현 체제에 대한 단순한 반항이다. 사랑하지 않을 권리를 위해 새로운 사회를 만들었다면 기존보다는 더 자유로운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현 사회와 반대되는 방향으로만 체제를 구축하여 사랑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제한하고, 결국 또 다른 결핍을 발생시킨다.


 결핍을 충족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회 체제가 오히려 결핍을 유발하고 있는 역설적인 현실이다. 인간은 결핍을 충족하고자 끊임없는 노력을 해왔지만 결핍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본질적인 감정이라 불리는 사랑도 결핍에서 기인하며, 극단적인 반체제는 또다시 결핍을 유발한다. 인간은 사랑이라는 결핍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영화는 결핍의 충족이 가능한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참고

이정은(2004), 「사랑의 철학」, 『살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