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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은 Nov 28. 2020

급변하는 대만과 <공포분자>

 예술작품은 시대와 독립되어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이 내포하는 사회문화적 텍스트는 현 사회의 위치, 수용자의 존재 양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호를 형성하고 있다. 80년대 이전 대만 영화는 장제스, 장징궈의 세습 통치로 이어지는 일당 독재 체제 유지를 위한 수단이었다. 이후 상업, 오락 영화가 발달했으나 정부의 엄격한 검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1975 장제스의 사망 이후 민주화 물결의 확산과 급속한 경제 발전 속에서 전반적인 예술분야에서 변화가 발생했다. 예술가들은 정부의 억압에서 벗어나 사회의 현실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대만 영화의 뉴웨이브 물결은 이와 같은 상황과 맥락을 같이 한다. 뉴웨이브는 대만 사회의 역사적 상황과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과 우울을 다루었다. 1982 <광음적고사> 시작으로 대만 영화는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중심에는 에드워드 양이 있었다. <공포분자> 에드워드 양의 타이페이 3부작의  번째 작품으로, 경제적, 정치적으로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고독한 인간들의 심리를 담아낸다. 급변하는 사회는 언제나 위험을 수반하고 있으며  속을 살아가는 개인은 해결책도 찾지 못한  불안과 고립에 노출된다. 




 영화 속의 주요 인물은 주울분, 이립중, 슈안, 소강이다. 서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듯한 인물들이 우연적으로 충돌하며 다각적인 전개가 하나의 사건으로 귀결되는 양상을 보인다. 오프닝 시퀀스는 조명 아래서 책을 읽고 있는 여자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총성 소리와 쓰러진 사람, 주요 인물들의 장면이 교차된   모든 것이 소설이라는 듯이 주울분의 나레이션이 들린다. 하지만 나레이션의 문장은 완성되지 않고 이후 보여질 장면들이 실재일 수도, 소설이라는 허구일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기며 서사의  장이 넘겨진다.


서사의 중심이 되는 매개체는 소설, 사진인데, 이는 전근대적인 통치 체제와 대조되는 근대적 매개체로서 균열을 발생시킨다. 소설은 사회의 억압에 구애받지 않고 집필된다는 점에서 근대성을 가진다. 주울분의 소설 <결혼실록> 영화  진실과 허구를 계속 혼란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극 중에서  소설과 실제 영화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이 뒤섞이며 어떤 것이 진실인지 판단을 어렵게 만들어 소설은 현실의 파편을 담아내는 균열이 된다.


 사진은 파편을 만들어내는 균열이다. 소강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찍는다. 촬영 대상이 불분명하기도, 명확하기도 하다. 사진은 있는 그대로를 담아내지만 사진가의 의도, 프레임과 각도에 따라 허구가   있다. 그리고 사진가 소강은 영화  파편을 만드는 존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슈안의 장난 전화를 받고 찾아간 곳에 소강이 있었고, 주울분의 소설이 자신이 겪은 일에 기반했다는 사실을 이립종에게 알렸다. 그가 만든 파편은 소설에 편입되어 허구와 실재를 혼동시키는 균열이 된다. 소설은 허구를 쓰지만 실재일 수도 있고, 사진은 실재를 남기지만 허구일 수도 있다. 근대적 매개체는 모든 경계를 허물어 근대란 혼란으로 가득한 시기라는 점을 보이고 있다.




 영화를 지배하는 정서는 고립감이다. 고립감은 여러 방면으로 변화하는 사회로 인한 혼란으로 읽히지만 당대 외교적으로 고립된 대만의 국제적 위치와도 연결된다. 쟝징궈 집권 당시 대만은 UN에서 추방당하고, 미국  여러 국가와 외교가 단절되어 국제적 고립이 심화되고 있었다. 영화 내에서 사람들은 총성에 쏘인 사람을 보고도 주목하지 않는다. 이는 앞서 말했듯이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현대 사회  개인화되어가는 사람들을 상징하는 동시에 반공체제 하에서 많은 학살을 겪은 대만 국민들에게 총성은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라는 점을 나타낸다.


또한 극 중에는 붉은 조명이 등장한다. 주울분과 이립중의  화장실, 소강의 암실에서 붉은 조명이 사용되는데, 여기서 공산주의를 연상할  있다. 반공국가가 표면적으로 추구한 이상은 자유민주주의였으나, 반공국가를 실제로 통치한 것은 독재 정권이었다. 독재 정권은 공산주의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국가를 수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강압적인 통치를 정당화함으로써 양자 간에는 상호의존적인 관계가 성립하였다. 인물이 자신의 내면이나 가해자성을 드러낼 때 붉은색의 조명이 등장하는데, 이는 공산주의를 타파한다고 말하지만 동시에 공산주의에 의존한 채 체제를 이어가고 있는 현 정권의 폭력성과 내면을 비판하고 있는 텍스트로 해석될 수 있다.




 영화는 사건을 관찰자적 시선으로 조명하지만 관객은 단순히 그것을 관조할 수 없다. 혼돈을 강화하는 극의 전개는 결말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관객이 무엇이 진실인 지 확신할 수 없게 만든다. 진실의 모호한 경계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곱씹게 한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서사를 따라간 끝에는 급속한 성장 이면의 비극적 모습이 있다. 정치적 상황, 현대 도시의 이미지와 연결된 양상은 영화를 현실과 분리된 허구로서 존재할 수 없게 한다. 이렇듯 <공포분자>는 관객이 보고 있는 영화조차 온전한 허구로 만들지 않았으며, 현대 도시의 혼란과 개인의 쓸쓸함을 남긴 채 끝을 맺는다.






참고

김재영, 반공국가의 위기와 민족주의의 부상— 민주화 이후 한국의 대북정책과 대만의 대중정책에 관한 비교


이강인 (2009) 대만 영화의 뉴웨이브 운동과 정치성에 관한 담론: 영화 ‘비정성시’(非情成市)와 ‘음식남녀’(飮食男女)를 중심으로 , 한국시민윤리학회보, 22:1, 169-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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