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모든 순간의 처음이 있다. 처음으로 말을 하는 순간, 처음으로 일어나서 걷는 순간 등… 모든 순간의 처음 중 오늘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순간은 바로 ‘인내심’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혹시 여러분은 처음으로 인내심을 발휘했던 순간이 언제인지 기억나는가? 혹은 인내심을 발휘하여 무언가를 얻어낸 값진 경험이 있는가? 없어도괜찮다. 여기 아무런 인내심이 없는 사람인 내가 나 자신이 얼마나 즉흥적인 사람인지 알리기 위해 이 자리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다. 나에게는 어린 시절 처음으로 인내심을 발휘했던 기억이 전혀 없다. 인내심을 발휘한 적이 희박하기도 하거니와, 인내심을 발휘한다는 개념조차 머리에 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성인 ADHD의 경우에도 자신이 정말 ADHD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어린 시절을 조사하는 경우가 있는데, 보통 부모님에게 문진표를 보내 체크하는 식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테스트의 만점이 10점이라면 거의 6~8점 정도를 부모님이 기록하신 것 같다. 심지어 우리 부모님은 어린 시절 맞벌이와 부득이한 사정으로 나를 잘 양육하지 못했는데도 그랬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 ADHD는 주로 아동기에 많이 발생하는 장애다. 아동이기에 주의력이 다소 부족하고 산만하다 여기는 행동들 외에도, ADHD만 가지는 몇 가지 증상이 있다. 뇌에서 주의 집중을 조절하는 부분의 구조가 일반인과 다르고, 활성력도 떨어지다 보니 인내심이나 참을성이 필요한 상황임을 아예 인지하지 못하는 때가 있는 것이다.
ADHD의 증상에는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산만하고, 말이 많거나, 집중이 흐트러지는 것 외에도 특이한 증상을 하나 소개하자면 이러하다. 나도 얼마 전에 오랫동안 알고 지낸 한의사 선생님과 상담하다가 알게 된 것인데, ADHD를 가진 아이들은 평소에는 배변을 잘 가리다가도 유독 밤만 되면 밤에 이불에 실례를 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도 꽤 늦은 나이에도. 선생임이 내게도 그런 경험이 있는지 물어보시기에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혹시 몰라서 엄마에게 물어봤는데, 아뿔싸… 내가 바로 그런 아이였다고 하더라. 우리 엄마는 분명히 나는 어린 시절 말을 상당히 일찍 텄고, 배변도 일찍 가리고, 젓가락도 일찍 사용하는 아이였다고 했다. 제법 똘똘한 나를 보고 어른들은 얘는 진짜 야무진 애일 거라고 했다는데... 그런 내가 밤마다 이불에 지도를 그리니까 엄마는 꽤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웃기는 건, 내게는 이불에 실례한 기억이 한두 번 밖에 없다. 그것도 아주아주 어린 시절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엄마 말로는 내가 8살인 초등학교 2학년에 가까울 때까지 실례를 했다는 것이다. (나는 빠른 생일이라 7살에 입학했다.)
내게 이 일을 물어본 한의사 선생님의 말로는 ADHD는 주의 전환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했다. 보통 아이들이나 사람은 자다가 소변이 마려우면, 뇌가 재빨리 응급신호(?)를 인지하고 화장실에 가라고 몸을 깨운다. 그러나 ADHD를 가진 사람들은 뇌의 구조 자체가 이런 변화를 빠르게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밤에 화장실을 가는 간단한 명령조차 소화하지 못하고 실수를 하게 되는 것이다. 좀 황당하긴 한데, 게다가 그 기억은 내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던지 내 머릿속에서 아예 새카맣게 지워져 없어지고 말았다.
당연하게도, 이 글의 주제는 그래서 어릴 때 밤에 이불에 오줌을 싼 내가 자랑스럽다가 아니다. (물론 부끄럽지도 않다.) 실수는 언젠가 잊히고, 나에게는 지금 어느 시간에고 화장실을 잘 가는 나만 남아있다는 것이다. 내가 오늘 말하고 싶은 것은 어제와 오늘의 실수는 ADHD의 뇌로 신나게 잊어버리고, 우리가 예측하지 못하는 미래를 좀 더 선명하게 그려서 잘 먹고 잘 살아보자는 것이다.
전편에서 시작지연은 미래 예측에 대한 메타인지가 부족하다는 것에서 온다고 했다. 그렇다면 ADHD를 가진 사람이 미래 예측을 선명하게 한 뒤에는 무언가를 꾸준하게 하고, 이어나가는 것이 가능할까? 당연히 불가능하다. 당연히 너무너무 귀찮고 당연히 싫다. 말 그대로 미래 예측은 ‘예측’일 뿐, 현재 주어지는 만족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조금 더 즉각적인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현재의 만족을 미룰 수 없다면, 내가 하는 일을 현재의 만족스러움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성취감을 느낄 수 없다면 성취감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나와 여러분들이 잘 알듯 인생은 호락호락하지 않고, 우리 모두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만큼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다. 바로 지금 무언가를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성실함을 갖기 위해 하루하루 스티커를 붙이며 나의 성실을 확인하였듯, 우리 인생에 주어진 모든 프로젝트에는 칭찬 스티커 같은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일에 표를 그려 스티커를 붙일 순 없는 노릇이므로, 나는 좀 더 실행력을 올리는 스티커로 글쓰기 모임과 이 프로젝트를 생각해 낸 것이다. 나의 글쓰기에 붙는 칭찬 스티커는 한 주 한 주 쌓이는 결과물인 바로 이 글들이다. 지난 편에도 말했듯 즉각적인 결과를 원하는 방향으로 쌓아가는 것이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미래가 보이지 않으면, 보지 말자. 대신 현재의 방향을 잘 잡자. 안 되면 하지 말고, 되는 방법을 할 수 있는 만큼 찾자는 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다. 이렇게만 해도 하지 않아서 0이 될 일들을 0.1로라도 만들 수 있고, 종내에는 원하는 목표를 가져갈 수 있다는 경험과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지난주의 미션을 내가 해냈는지 확인할 시간이다. 지난 시간 나는 글을 다 쓴 후 이 프로젝트의 목차를 정하겠다고 했다. 나는 몹시 놀고 싶었으므로, 당장의 만족인 게임을 따라가고 목차를 짜는 일은 노션 AI를 시켰다.
요즘 유행하는 방식이지만. 아무튼, AI가 짜준 내 책의 목록은 이러하다. 함께 확인해 보자.
목차를 짜는 지난주에는 귀찮아서 잘 보지 않고 창을 꺼버렸는데. 지금 보니 이런 생각이 절로 든다. 뭐라는 거야, 이 미친 AI가???????? 일상생활까지는 그럴싸한데, 사랑과 가족관계??????? 이 무슨 잘 나가다가 이상한 말을 하는 미국 리얼 연애 프로그램 인터뷰 같은 전개지??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어지간하면 첨단 기술인 AI가 써주는 대로 글을 써나가려 했는데,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비혼주의자인 내가 AI가 시키는 대로 결혼까지 할 순 없지 않나. 게다가 내가 ADHD 당사자인데 무슨 자녀 돌봄을 하며 돈을 벌어… ㅋㅋㅋㅋㅋㅋㅋ
위에서 멋지게 즉각적인 만족을 가지고 일을 진행하자고 했는데 이렇게 바로 AI에게 즉각적으로 물을 먹을 줄은 몰랐다. 후, 하지만 나는 숙련된 ADHD 맨 답게 이런 즉각적인 물먹기에도 능숙한 편이다. 위 목차를 아래와 같이 수정했다.
AI가 그다지 해준 게 없다고 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대충이나마 뼈대를 잡아준 게 있다 보니 금방 고쳤다. 감사하게도 기술이 발달한 시대라 나처럼 인내심이나 참을성이 좋지 못한 사람도 이렇게 금방 하고 싶은 말을 조리 있게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런 현대 문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내 인생의 숙제들을 해나가고 있다. 여러분에게도 추천한다. 안 되면 하지 말고 쉽게 할 방법을 찾자.
다음으로, 드라마 단막극에 대한 일정은 놀랍지 않게도 안 짰다. 최근 게임 시나리오 작가인 나는 공부를 한답시고 게임기를 샀는데 거기에 푹 빠져있다. 직장 다니면서 게임 속 마을을 꾸려가고, 다른 게임도 하고, 운동도 하고, 사이드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대충 관심 있는 분야 공부도 하려니 24시간이 정말 정말 모자라서 힘들다. 그래서 이번 주까지는 쿨하게 미루기로 한다. 대충 머릿속에 뭘 해야 할지 들어있기 때문에. 그리고 아직 2달 정도 생각한 해당 프로젝트의 시간이 조금 남아있기 때문이다. 4월부터 힘차게 해 보겠다. 미루는 시간이 있어야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추진력이 붙는 시간도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게 안 좋다는 건 아는데, 아는 맛이 맛있다고 미루기는 언제 하여도 제법 즐겁고 흥겹다.
미션을 확인했으니 다시 본 주제로 돌아와서 책 쓰기에 대해 이야기 하겠다. 지금 현재 나의 글쓰기는 “과연 성실하게 살아지는가” 챕터에 다가와있다. 앞으로는 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글쓰기 전에 간단하게 프로젝트는 진행 여부를 적을 예정이다. 이 콘텐츠를 통해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ADHD가 있어도 건강하게, 남부럽지 않게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요 내용인 나의 ADHD 치료기부터의 여정을 짚어보고자 한다. 난 완벽하지 않으니까 대충대충 되는 만큼만 하려고 하며 ADHD를 극복해 왔다. 내가 지나온 여정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다음 편을 봐주시면 감사하겠다. 다음 편은 불우하던 현대 노동자인 내가 ADHD를 알게 되고 충격을 1도 받지 않고, 자본을 통해 대충 해결해 보려는 초 현실주의적인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