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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이녁 Apr 12. 2022

도로변 나무가 사라졌다

그 울창하던 가로수 도시 숲은 어디로 사라졌나


죽은 나무. 사진 | 환경운동연합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플라타너스가 우거진 ,  길가의 스타벅스 DT(드라이브스루) . 작년 10 새로 문을  이곳 앞엔 썩고 병든 나무  그루가 서있다. 흉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자연스레 늙어 죽은 것이 아니라, 독극물로 무참히 살해당한 것이다.


이해할 수 없다. 대체 누가, 어떤 목적으로 나무를 세 그루나 살해한 것일까? 대체 이곳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인구 대비 자영업자 세계 1, 간판으로 돋보여야 하는 시대

간판 공해. 사진 | 중앙일보

경찰에 따르면 ‘북가좌동 나무 살인범 해당 스타벅스가 입주한 건물의 관리인이었다. 사라진 나무는  다섯 그루인데,  중에  그루는 구청의 허가를 받아 제초제 투입  벌목하였고,  그루는 허가 받지 않았지만 말라 죽었다. 해당 건물 관리인은 구청에 나무  그루의 값인 (고작) 780만원을 변상하고, 농약을 부었다는 자필 진술서를 제출했다.


그는 가로수가 스타벅스 간판을 가리고 차량의 드라이브 스루 진입을 방해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해당 나무는 4층 건물의 높이에 필적할 정도로 높고 거대한 나무였으니, 분명 간판을 가리고 차량 진입을 방해할만 하다. 그래서 그는 드라이브 스루 진입로 개설에 필요한 나무 두 그루의 벌목을 서대문구청에 신청해, 허가를 받아 벌목했다. 그런데 다른 세 그루까지 죽여버린 것이다.


대한민국 간판은 모조리 ‘요란하다’고들 한다. 해외에선 서울이 ‘사이버 펑크’(컴퓨터 기술에 의해 지배당하는 억압적인 사회의 무법적인 서브컬처를 기반으로 하는 SF의 한 장르.) 세계를 보는 것 같다고도 한다. 우리나라는 분명 간판이 요란법석하다.


국내 자영업자 현황. 사진 | KB금융그룹

다만 그런데는  이유가 있다. 대한민국의 자영업자 수는 657만명으로, 모든 경제 활동 인구의 4분의 1 모조리 자영업자이다.  세계에서 인구 대비 자영업자 수가 가장 많은 것이다. 그러니 형형색색 가독성 높은 요란한 간판으로 행인들의 시선을 사로 잡아야 하는 것이다.


이번 스타벅스 가로수 살해 사건 또한 스타벅스의 고급스러운 이미지와 아이덴티티가 담긴 간판을 돋보이게 하기 위함이었고, 결국 간판 하나 잘 보이게 하려고 가로수 세 그루를 죽인 꼴이 된다.


비슷한 사례는 과거 지하철 출입구 캐노피 설치 문제를 통해 찾아볼 수 있다. 개통한지 오래된 지하철의 경우 출입구에 지붕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이는 폭우 시 역사 침수를 야기할 수 있고 에너지 효율 면에서도 좋지 못하다. 그래서 서울교통공사(당시 서울메트로, 서울도시철도공사)는 지하철 출입구에 캐노피를 설치하기로 했다.


그러나 문제는 근처 상인들의 반발이었다. 상인들은 지하철의 높은 캐노피가 근처 간판을 가리게 된다는 점을 지적했고, 이로 인해 캐노피를 설치하지 못하거나 단가가  비싼 투명 캐노피를 설치할  밖에 없었다.  또한 간판으로 인해 야기된 갈등인 것이다.


- 우리에게 나무는 어떤 의미인가

가로수. 사진 | 한국일보

‘나무’를 생각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는가? 대체로 이산화탄소 흡수, 산소 배출, 대기질 개선과 같이 환경적으로 긍정적인 면들을 말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집, 우리 점포 앞 나무’에 대해 생각하면 조금 달라진다. 환경적으로 긍정적인 면보다는 조경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먼저 말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혹은 아까 전 사례와 같이 간판을 가리게 한다거나 그늘이 지게 한다는 부정적인 요소들이 떠오를 수도 있다. 두 시선에 커다란 괴리가 있다.


우리는 나무를 조경을 위한 장식물로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인식에 있어서는 과거 6.25 전쟁으로 벗겨진 민둥산이 보기 흉하다며 산에 초록색 페인트를 칠하던 시대와 그리 큰 차이가 없는 듯 싶다. 나무가 예쁘고 보기 좋은 것은 사실이다. 나무 고작 한 두 그루는 대기질 개선에 있어 그리 큰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미적인 부분에만 집중한다면 환경적인 요소를 경시하게 되어, 나무를 하나의 장식품으로만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 나무를 ‘간판을 가린다’는 이유만으로 죽이게 되는 것이다.


- 가로수는 무슨 역할인가


우리가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십중팔구 은행나무를 말할 것이다. 대부분의 거리 가로수는 은행나무이기 때문이다. 가로수는 도시 미관을 아름답게 해줄 뿐만 아니라 도로 차량으로 인한 환경 오염 및 소음을 억제하고 그늘도 만들어준다. 또한 차도와 인도를 구분하는 하나의 볼라드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 가로수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 하나의 기둥 그 이상은 못되는 듯 하다. 가로수가 그저 미적인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건, 뉴욕이라는 도시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뉴욕은 고층 빌딩 사이 좁디 좁은 도로로 이루어져 있어 가로수가 거의 없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뉴욕의 도로가 멋지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우리가 가로수를 심는 건 그저 미적인 효과를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가로수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인식은 북가좌동 스타벅스 가로수 고사 사건 사례 뿐만 아니라, 제주도 비자림로 확장 공사 사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비자림로 도로변 나무는 가로수라기 보단 숲에 가깝긴 하지만…)


제주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라 불리는 비자림로는 왕복 2차선이다. 드라이브 코스를 즐기는 관광객들과 근처 주민을 수용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제주도는 이 ‘제주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를 확장하기 위해 근처 나무들을 베기 시작했다. 흉물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제주도는 괘념치 않았다. 비자림로 확장이 완료되어 멋지게 포장되면 괜찮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그저 ‘못생겨서’ 흉물스럽다 여겼던 것일까? 문제는 자연 생태계이다. 비자림로가 왕복 4차선으로 확장되면 조금 더 쾌적해질진 몰라도 근처 자연 생태계는 무참히 파괴된다. 제주도는 이러한 현실은 외면한 채 나무의 미적인 면에 대해서만 해명한 것이다. 나무에 대한 인식이 처참하기 짝이 없다.


- 그래서

최근 가로수에 대한 무리한 가지치기 문제가 관심을 받고 있다. 정기적인 가지치기라는 명목 하에 근처 가게의 간판을 가리는 나뭇가지들을 모두 쳐내, 나무의 몸통만 남겨놓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두고 ‘몸통치기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동안 나무와 가로수 문제에 관심 없던 사람들이, 무리한 가지치기로 도시미관이 망가지니 이제서야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슬플 뿐이다.


숲을 가꾼다거나 사막화를 막는 행동에 동참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전에, 우리 근처에  고통 받는 가로수들에 관심을 가지는   먼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 황인혁 @gurdl_in_penc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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