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 전에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어서 그런가. 빈말은 잘 안 한다. 한 번 내뱉은 말에는 책임을 지려하는 성격이다 보니 약속 또한 잘 안 하게 된다. 이는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정직하길 바라면서 한 순간 ‘최고의 엄마’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남발하는 엄마가 되고 싶진 않았다.
반면에 남편은 아이들과 온갖 내기를 하며 약속을 남발하는 아빠다. 그래서 아주 눈엣가시일 때가 많다. 지난주 축구 시합 후 돌아오는 길에 저녁 준비를 하는 나에게 전화하는 아들.
“엄마 저녁 준비 안 해도 돼요. 아빠랑 집에 가는데 치폴레 사갑니다.”
“또? 안돼. 집밥 먹어. 왜 자꾸 치폴레 사 먹어. 몸에 좋지도 않은데.”
갑자기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개인적으로 라면은 물론 인스턴트 음식 자체를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먹으면 이상하게 배가 아프다) 웬만하면 아이들에게 집밥을 먹이고 싶다.
“아빠가 내가 축구시합에서 골 넣으면 치폴레 사준다 했는데 내가 마지막에 골을 넣었다니깐요. 유후!”
아주 신난 아들.
“아빠가 약속을 했다면 지켜야지... 알았어. 사가지고 와.”
30분 뒤 들어오는 남편을 향해 레이저를 쏘며 힘껏 째려본다.
“자기야, 나 진짜 골 못 넣을 줄 알고 내기한 거야. 아니, 이제껏 골을 못 넣다가 오늘은 어떻게 넣은 거지? 그래도 완전 결정골이었어. 잘했으니 좋아하는 것 해줘야지. 다음부터 안 사줄게.”
자기 잘못을 알았는지 꼬리를 내리고 살랑거리는 남편.
입이 찢어져라 큰 함박웃음을 지으며 치폴레를 먹는 아들의 모습을 보니 또 한편 남편이 잘했다 싶기도 하다. ‘고리타분한 엄마하고만 지냈다면 누리지 못할 승리의 기쁨’ 아닌가.
항상 너무 자로 잰 듯한 규칙만을 고집한다면 그 또한 삶이 재미없을 듯. 밉상이긴 했지만 ‘약속 남발꾼’인 남편 덕분에 아이에겐 가장 행복한 에피소드가 생긴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