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길치로 살기
“오 노! 어떻게... 저 골목에서 들어갔어야 하는데.”
너무 덥다는 아이들 성화에 허둥지둥 에어컨을 조절하려는 순간, 우회전해서 들어가야 할 골목을 지나쳤다. 수십 번을 다닌 길이건만 왜 놓쳤을까. 사실 그리 놀랍지 않다. 태어날 때부터 길을 감지하는 센서가 나에게 없었음을 진작에 알았으니까.
'빨간색 간판 다음에서 왼쪽, 첫 번째 신호등 지나서 파란 지붕 집에서 오른쪽.'
온 정신을 집중해서 외우고자 하면 사실 안 될 것도 없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러한 수고를 굳이 할 필요가 많이 없었다. 엄마, 여동생, 남편, 친한 친구 등 자주 동행하는 사람들이 모두 ‘한번 갔던 길을 절대 안 잊어버리는 휴먼 내비게이션’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듯 그들이 운전했고, 걸을 때도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됐다. 스치는 주변 풍경을 편안히 감상하거나 행여나 그들이 심심할까 입속에 과장 하나씩 넣어주다 보면 어느덧 목표 지점.
문제는 엄마가 되고부터였다. 어딘가를 나설 때마다 길눈은 고사하고 엄마만 잘 따라오면 감사하다. 게다가 말이 많아지는 나이가 되고 나서부터는 행여나 길을 잘 못 들어선 순간 그들의 푸념과 잔소리까지 감당해야 하니 그야말로 '초긴장 운전' 모드에 들어선다. (한국의 지하철을 사랑하는 내가 차 없이는 슈퍼도 못 가는 미국에서 살게 될 줄이야. 역시 인생은 아이러니하다.)
이 와중에 차 안에서 항상 떠들썩한 아이들. 어쩜 이리 말이 많은지. 차멀미로 인해 차만 타면 자기 바빴던 나와는 너무 다르다. 나른한 햇살에 설사 졸기라도 할까 봐 아예 등받이에 등을 대지도 않은 채 반 서있는 상태로 질문공세를 펼친다. 질문은 약과. 행여나 둘이 말다툼을 하며 투닥거리기 시작하면 이때부터는 극기훈련 모드다. 조금이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바로 ‘여기는 어디, 난 누구’ 상황이 되는 것이다.
10여 년의 시간 동안 다행히 강산만큼 아이들도 성장했다. 어쩌면 엄마에게 적응했다고 하는 편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우회전을 못했다는 내 한숨을 들은 큰 아이가 바로 답한다.
“엄마 못 들어갔어? 괜찮아. 길을 다 어떻게든 연결되니까. 언젠가는 도착하겠지.”
그러고 보니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길을 잃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던지던 위안의 말들을 이제는 아이들에게 듣고 있다니 갑자기 웃음이 난다.
“지금 엄마한테 말 시키지 말라니까. 엄마가 여긴 처음 가는 곳이라 했어. 엄마는 내비만 보세요.”
내비게이션이 뚫어져라 째려보는 내 시선을 감지한 센스쟁이 큰 아이. 긴장 상황을 파악하고 질문을 쏟아내는 동생의 입을 알아서 잘도 막아줬다. 키운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나저나 아이들도 변했는데 그런데 나의 운전실력은 왜 그대로일까. 모르는 길을 운전 한 날에는 더없이 피로감이 몰려오고 집에 오자마자 바로 소파에 쓰러진다. 지금껏 안 바뀌었으면 앞으로도 안 바뀔 터. '길치는 내 친구'라 여기며 예뻐해 줄 수밖에. 이 또한 나만의 '인간다움'이리라 뻐근한 허리를 두드리며 스스로를 위안한다.
더불어 장거리 여행에서도 아내에게는 운전대를 맡길 생각이 1도 없는 남편에게, 학교-학원-마트 등 항상 가는 곳만 다니는 단조로운 나의 삶에 더없이 감사해질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