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글쓰기를 배우기 위한 소비에 척 하니 주머니에 꺼낼 돈은 없다 세아 이를 키우며 외벌이에 내 집 마련을 어떻게 할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커가는 세 딸의 옷을 사야 하는 고민에 머리 쥐어뜯는 월급쟁이 남편의 아내일 뿐이기에 돈벌이 안 되는 나의 글쓰기에 투자할 수가 있을 리 만무였다그렇기에 내겐 공모전이 어쩌면 나에 대한 전문가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 생각했다
두 번째 도전에 나에게 예스라고 대답해주었다
8월의 주제는 사실 기억나는 단어가 "억울함" 밖에 없다
나의 문해력이 문제가 있었을까? 긴 주제 중에 세 글자
"억울함" 가장 억울했던 일이 주제였다 그중 그 세 글자만이 기억에 남았다.
전국에서 수많은 작가들이 (글을 쓰는 사람은 다 작가라고 생각하기에) 도전하는 곳인 예스 4 "나도, 에세이스트"
경쟁률이 정확히 수치화되어 나오지는 않지만 아마 대기업 입사 경쟁률 정도 되지 않을까 어림짐작해본다
그 높은 경쟁률에서 내가 무엇이든 당선이 된다는 것에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100명 일지 1000명 일지 모를 경쟁자들은 분명 나보다 더 나은 글들을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디 내가 글 쓴다고 깝죽거릴 수 있을까 싶다
무조건적인 도전이 아니라 내가 잘 쓸 수 있는 주제가 나오면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써 내려갔고
너무 먼 옛날의 억울함이지만 아직도 가끔 생각나면 이불 킥 하는 이야기를 주제로 잡았다.
단 1% 기대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고 막무가내이지만 꿈같은 일일 수도 있지만 혹시?라는 생각에
당선작 발표에 온 신경을 써보기는 했다.
총 5편의 가작 중 내가 20살 이후 항상 쓰던 나의 낯익은 아이디
그것도 나름 의미를 둘 애쓴 나의 억지스러운 생각
5편의 가작 중 내 아이디가 첫 번째로 쓰여 있었다
어떻게든 좋은 생각 하려고 막 갖다 붙인 듯 하지만 뭐 나쁘지 않았다
가작 중 첫 번째였다고 그래서 난 너무 행운이라고 나를 쓰다듬어 주었다
글을 쓰기 시작한 후 처음 공모전은 지역신문사에서 주최한 "세대공감"이었다
그때는 3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원고지 10장 분량의 긴 글을 써서 보낸 공모전이었고
지금 다 시 읽어봐도 문장에 너무 많은 힘이 들어가서
한참 모자른 글이었는데 그런 글을 가지고 "가작"에 당선되어 상금과 상장을 받았었다
너무 기쁘긴 했지만 한참 모자란 나의 글에 미련이 많이 남은공모전이었다
그래도 첫 가작 당선에 시상식 날 혼자 눈물을 훔쳤던 소중한 기억이었는데
아쉽게도 나의 글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해서 내가 어떻게 글을 쓰는 게 좋은 건지 방향을 잡지 못했었다
그리고 도전한 두 번째 공모전
두 번의 도전에 받아 든 작가 김신회 님의 심사평
내가 원한 것은 심사평이었다 글 쓰는 사람이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건 독자이지만
난 그럴 깜냥도 안되기에 김신회 작가님께 이렇게 공모전을 빌어 심사평을 받는 것만으로도 세상 천운이 아닐까 싶다
내가 평소 글을 쓸때 마지막 문장을 여운이 남듯이 매듭짓는 습관이 있는걸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다
근데 정말이지 그 부분을 김신회 작가님은 콕 찝어주시는게 아닌가!
스스로도 알고 있으면서 고치지 못하고 있는걸 이렇게
펀치를 날려주는 그 예리함에 이런게 심사평이란 것이구나
글만 쓴다고 작가가 아니라 모든 글에서 느낄 줄도 알아야 하는구나
그래야 내 글도 다른이의 글도 이해 할 수 있게 되는것 같다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심사평은 내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다.
아쉽다는 심사평에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내 글이 다른 사람에게 평가받는 걸 이토록 기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을까?
그게 나였다. 이보다 더 가혹한 평이라도 난 기꺼이 행복했을 것 같다 누구도 내게 해주지 못한 말이면서 난 꼭 듣고 싶었던 말들 그런 말을 들었기에 내가 해야 될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드라마틱한 발전이 있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심사평에서 콕! 집어준 것들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며 의식하게 된다
다른 사람의 말과 글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글 쓰는 사람들의 덕목이라 생각해본다 나 역시 글쓰기 를 좋아하는 것을 넘어 다른 사람들의 글과 말에 먼저 눈여겨보고 귀 기울이리라 그것이 곧 내 글을 보고 내 말을 듣는 것과 같을 것이다